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9.29 17:34 수정 : 2019.09.30 13:01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교육문제를 대입제도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하다. 왜냐면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면 쉽게 해결된다. 행복한 상상을 해보자. 시간당 최저임금이 3만원으로 인상되면 하루 8시간 노동의 대가는 24만원이다. 주말 빼고 한달 22일 일하면 월급이 528만원이다. 이런 사회라면 대학 진학을 목표로 모두가 살인적인 경쟁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대학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 반영 폐지도 검토한다는 교육부 입장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교과 외 다양한 활동의 교육적 순기능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더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 고추장, 된장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학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학교는 사교육 기관이 아니다. 학교는 교과지식만 잘 가르치면 되고 학생들은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신호가 현장에 전달되어선 곤란하다. 공교육이 그래선 안 된다.

지난한 논의과정을 거쳐 현재의 학종 전형까지 발전해온 사회적 합의의 역사를 부정해선 곤란하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보완하면 된다. 예컨대 봉사활동 관련 부작용은 연간 요구하는 20시간을 기준으로 ‘이수’ 혹은 ‘미이수’만 기록하면 된다. 학생들이 봉사활동확인증명서를 제출하면 내용, 영역, 기간 등은 입력할 필요가 없다. 연간 누계 시간이 20시간 이상만 되면 ‘이수’라고 입력하고, 모자라면 ‘미이수’라고만 입력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작동하지 않는다. 나머지 영역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되는 지점을 보완하면 된다.

어떤 대입 전형을 선택해도 특정 계층과 지역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 다만 가장 불공정한 전형을 제외하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공정한 전형을 찾아 불공정한 면을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미치는 전형은 첫째가 ‘논술’이고, 둘째가 ‘수능’이다. 다음이 ‘학종’이고, 그나마 가장 적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학생부교과전형’이다. 올해 대입에서 학생부교과전형 선발비율은 42%이다. 그런데 정작 서울권 주요 15개 대학의 학생부교과전형 선발 규모는 6%에 지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3%에 불과하다. 그만큼 일반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학생부교과전형 비율이 심각하게 축소됐다. 교육격차가 소득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선 학생부교과전형 비율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기초생활수급 가정과 차상위 가정 등 소외계층 가정 자녀들을 위한 기회균형선발 비중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에 비해 학종이 공정하지 않다는 편견이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환산점수 0.01점 차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수능이 과연 공정하다고 인정할까. 기회와 과정의 공정함이 훼손되는 정도는 수능이 다른 전형보다 심각하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전형이 얼마나 계층 이동의 통로를 막고 있는지 그 실상을 서울대학교 입학본부장이 공개했다. “(학종 도입 후 매년)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는 고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전국 800개교에서 실적을 냈다.(2017년 기준) 최근 3년간 합격생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일반고 중 90개 고교가 새롭게 합격생을 배출했다. 3년간 합격생이 단 한 명도 없었던 6개 군 지역에서도 합격생을 배출했다. 섬 지역에서도 2개교가 합격생을 배출했다. 수능 위주 정시 중심이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기 힘들다.” “정시는 사교육과 재수에 부담 없는 교육 특구에서 실적을 내고 있다. 서울대 정시를 50%까지 확대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오히려 실적을 내는 일반고가 전국에서 517개교 줄어들어 일반고에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

더욱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대입제도와 관련해 여론 형성에 다양한 채널로 의사를 표출하는 특정 계층과 달리 농어촌이나 지방 소도시 학부모들은 여론 형성에 참여하는 것조차 소외되어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누가 대변하는가.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그만큼 절실하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