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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8 18:14 수정 : 2019.08.09 14:33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노인이 있다. 그는 51만원의 생계급여와 14만원의 주거급여를 받는다. 한달 35만원의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30만원. 휴대전화 요금과 교통비, 공과금과 식대를 모두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원래 살던 집은 28만원이었는데 더위와 추위가 고통스러워 집을 옮겼다고 한다. 새로 이사 온 원룸은 월세는 비싸지만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에 수월하다. 상대적으로 안락한 집을 얻은 대가로 7만원어치 식대를 줄여야 했다. 아파서 병원에 간다면, 대중교통이 없어 택시를 탄다면 월세를 밀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렇듯 수급자의 일상은 하나를 얻으면 고스란히 하나를 잃는, 승리 없는 협상의 연속이다.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이 2.94% 인상으로 마무리되었다. 기준 중위소득은 70여개 복지제도의 선정기준선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필요한 복지제도를 신청하려 했으나 터무니없이 낮은 소득 기준 때문에 황망했던 경험이 있는가? 바로 그 선이 기준 중위소득이다. 핵심적으로 기준 중위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선정 기준이자 보장 수준이 된다. 누가 가난한지(수급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구분하는 기준이자, 수급자의 한달 생계비가 2.94% 인상되었다는 의미다. 박근혜 정부는 낮은 최저생계비의 문제점을 극복하겠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편하였지만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은 2015년 이전 평균 3.9%에서 오히려 떨어졌다.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인상률은 지난 3년간 평균 2.09%에 그쳤다. 연일 확인되는 빈곤가구 소득하락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은 빈곤정책에 심각한 소극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왜 이런 결정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럴듯한 객관적 지표를 동원한 설명은 많지만 그 숫자들이 객관성이나 민주적 절차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2.94%는 ‘가계동향조사와 가계금융·복지조사 3년 평균 인상률의 중간값’이며, 이 결정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사실 불가능하다.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를 비롯한 행정부와 전문가, 민간위원이 함께 논의하지만 수급자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경로는 없다. 회의와 회의록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공론의 장에 정보를 게시하지 않는다. 투명하게 정보를 얻고 참여할 길이 도무지 없다. 전 국민의 복지 문턱을 정하는 기준 중위소득 논의 과정이 이렇게 폐쇄적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에 따른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보장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은 이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지난해 ‘기초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이 진행한 전국 30곳 수급가구의 가계부를 보면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은 ‘관계’였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교통비, 함께 하는 식사 비용이 부담스러워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는 것이 빈곤층의 삶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기준 중위소득’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누구에게 적절하다는 것일까? 가난한 이들은 이 정도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일까?

폭염에 따라 빈곤층에게 에너지 바우처를 실시한다는 홍보는 연일 넘친다. 그러나 대부분이 1인가구인 기초생활수급자가 이 에너지 바우처로 받을 수 있는 돈은 여름내 총 5천원이다. 생색내기에 불과한 5천원은 선언만 난무하고 실천 없는 이 정부의 ‘빈곤한’ 빈곤정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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