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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1 08:01 수정 : 2019.11.01 22:41

남아공 럭비대표팀의 주장 시야 콜리시(오른쪽)가 지난 27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2019 럭비월드컵 4강전에서 웨일즈를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 요코하마/AFP 연합

11월2일 2019 럭비월드컵 결승 잉글랜드전 출전
‘스프링복스’ 최초 흑인 주장으로 정상 노려
세계 1위 잉글랜드 최근 전적 우세 각축 예상

남아공 럭비대표팀의 주장 시야 콜리시(오른쪽)가 지난 27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2019 럭비월드컵 4강전에서 웨일즈를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 요코하마/AFP 연합

시야 콜리시(28)는 새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대표팀의 흑인 최초의 주장 콜리시가 2일 오후 6시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열리는 2019 럭비월드컵 결승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두 가지 도전에 나선다. 남아공 럭비대표팀의 흑인 주장으로 우승 트로피 ‘웹 엘리스컵’을 들어올리는 것과, 예선 1패를 기록한 팀의 사상 첫 정상 등극 이변 연출이다.

영국의 <비비시(BBC)>는 31일(한국시각) “만약 콜리시가 우승컵을 차지한다면 1995년 만델라 대통령 시절 첫 우승 때보다 훨씬 파괴력이 클 것”이라는 전 남아공 대표팀 주장 존 스미트의 말을 전했다. 남아공은 1995년, 2007년 두 차례 우승한 바 있다. 이 매체는 “럭비는 전 세계에서 중요하지만 특별히 남아공에서는 럭비가 나라를 바꿀 수 있다. 주장과 대통령, 정치와 권력, 꿈과 상처들”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스프링복스’로 불리는 남아공 럭비대표팀 사상 127년만의 흑인 주장이 된 콜리시는 포트엘리자베스 외곽의 빈민촌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키우기 어려워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12살 때 고급 사립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스카우트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남아공 20살 이하 럭비팀 대표(2010)에 이어 프로 입단(2011~)을 일궜고, 2013년엔 대표팀에 합류했다. 비비시는 “극기와 자기 믿음”이 콜리시 성공 스토리의 배경이라고 전했다.

남아공은 이번 럭비월드컵에서 조별리그 B조 3승1패로 8강에 올라 일본을 이겼고(26-3), 4강전에서는 웨일즈(19-16)를 제쳤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올 블랙스’ 별칭의 뉴질랜드에 졌다. 1987년 출범 뒤 4년마다 열리는 럭비월드컵에서 모든 우승팀들은 전승을 기록했다.

이런 전통에 비추면 4강 뉴질랜드전까지 무패행진을 벌여온 잉글랜드가 통산 2회 우승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잉글랜드는 최근 5차례 남아공과의 맞대결에서 3승2패로 우위였고, 세계 랭킹에서도 1위로 남아공(2위)에 앞선다.

하지만 흑인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뒤 흑백을 묶는 상징으로 작용했던 1995년 럭비월드컵 우승의 기억은 남아공의 자산이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럭비를 통해 흑백 갈등의 종식과 화해의 미래를 추구하는 모습은 영화 ‘인빅터스’로 제작되기도 했다. 남아공 럭비대표팀의 베스트 15 가운데 흑인 선수는 1995년 1명, 2007년 2명에서 이번엔 6명으로 늘었다. 남아공은 잉글랜드를 상대로 통산 맞전적 25승2무15패, 럭비월드컵 맞전적 3승1패를 기록 중이다. 물론 양 팀 선수들 모두가 느낄 엄청난 압박감은 변수다.

백넘버 6번의 플랭크 자리를 맡은 콜리시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하다. 통산 3회 럭비월드컵 우승 의욕이 강렬하다. 비비시는 “콜리시는 과거 남아공 흑인들이 가질 수 없었던 기회와 꿈을 살려가고 있다. 대표팀에 뽑힌 이후에도 그는 늘 변함이 없다. 럭비를 사랑하고 팀은 그를 사랑한다”는 전 남아공 국가대표 하냐니 쉬만지의 말을 전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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