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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4 18:33 수정 : 2005.01.24 18:33

자밀 왓킨스(티지 삼보)가 지난해 10월31일 창원에서 열린 엘지와의 경기에서 자유투를 넣고 있다. 케이비엘 제공



자유투의 세계 “빠져봅시다!”

평균 득점의 15% ‥5점차 안팎 경기서 진가
심리에 좌우돼 2구·연장전 성공률 더 높아
임재현 4번 튀긴 뒤 슛·문경은 백보드 맞춰

‘안보이는 보약.’

농구인들은 자유투를 이렇게도 부른다. 3점슛, 가로채기, 튄공잡기 만큼 역동적이고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승부를 가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까?=통상 경기당 12점 정도가 자유투로 얻어진다. 올 시즌 남자 프로농구 경기당 평균 득점이 85점으로, 대략 15%를 차지하는 셈이다. ‘위닝 포인트’(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서 튄공잡기→야투 성공률→도움주기→실책수보다 중요도에서 밀린다. 하지만 5점차 내외 싸움에서 이 ‘반점’짜리 슛은 천금보다 귀하다. 자유투 성공률 1위(93.1%)인 에스케이 임재현은 “종료직전 승패를 가르는 자유투는 무아지경에서 던진다”고 말한다.

잘 넣는 비결이 있나?=자유투 성공률은 1구가 50% 미만이고 2구가 80% 이상이다. 안준호 삼성 감독은 “자유투는 심리에 달렸다”고 단언한다. 임재현은 “꼭 4번 공을 튕긴 뒤 슛을 쏴야 안심이 된다”고 밝힌다. 추승균(KCC)은 “틈날 때마다 거의 50~100개씩 던지며 연습”하는 실력파다. 문경은(전자랜드)은 반드시 백보드를 맞추는데, 백보드는 경기장마다 재질과 탄성이 달라 위험부담이 있지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단다.

고의로 안 넣어도 되나?=공이 림을 스치지 않는 ‘에어볼’은 무조건 반칙이다. 하지만 티 안나게 심판의 눈을 속이는 것까지 어찌 할 수는 없다. 과거 아마추어 시절 경기 종료 3, 4초가 남고 동점일 때 자유투를 얻으면 1개는 넣고 1개는 의도적으로 버리는 경우가 있다. 튄공잡기로 시간을 버는 게 2구가 실패해 상대의 속공을 허용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프로에서도 막판 두번째 자유투를 교묘하게 빗나가게 해 속공을 내주지 않거나, 튄공을 잡아 2점을 더 내려는 시도가 나온다.

자유투가 가른 운명=가장 유명한 것은 ‘문현장 사건’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예선에서 당시 김영기·신동파 등이 뛴 한국은 멕시코에 줄곧 앞섰다. 그러나 멕시코는 경기 막판 투입된 문현장의 자유투가 약한 것을 알고 계속 반칙해 자유투를 떠안겼다. 문현장은 자유투를 모두 실패했고, 한국은 졌다. 당시 성난 팬들은 돌을 던져 문현장의 집 장독대를 부쉈다.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서도 자유투가 한·중 결승전 승부를 갈랐다. 중국은 4쿼터 막판 대표 골잡이 후웨이동이 자유투 2개를 모두 실패해 연장전 빌미를 내준 반면 한국은 연장에서 문경은이 3.1초를 남기고 자유투 2개 가운데 1개를 꽂아 ‘기적’을 이뤘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농구 시작되고 5년뒤 처음 도입

자유투의 역사

1891년 미국서 처음 농구가 시작됐을 때 자유투는 없었다. 반칙을 한 선수는 일단 퇴장당했다가 상대팀이 득점을 한 뒤에야 코트에 들어왔다. 이 규칙은 1894년 3번 이상의 반칙은 무조건 1점을 주는 걸로 바뀌었다.

자유투는 1896년 도입됐다. 그리고 농구 점수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그전까지 1점이던 야투는 자유투 도입으로 인해 2점이 됐다. 자유투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뒤 규칙이 바뀐다. 자유투가 약한 선수만을 골라 반칙하는 팀이 나오면서 경기 종료 3분부터 반칙을 당한 팀은 자유투와 공격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그 뒤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1구가 들어가야만 2구를 던질 기회를 주는 ‘원앤드원’제로 바뀌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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