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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6 11:21 수정 : 2018.09.16 12:20

[토요판] 김창금의 축구광
공격형 미드필더 이민아

계속 진화하며 이젠 대표팀 간판
‘158㎝ 키’ 딛고 자신 스타일 개척
감각적 패스·움직임·키핑이 장점
한-일전 헤딩골 ‘해결사’ 능력도

“배우려는 의지, 승부욕 강해”
한국서 편한 생활 접고 일본 진출
“일본서 잘해 여자축구 홍보할 것”

지난해 12월 일본 지바 소가 스포츠파크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컵 대회에서 이민아가 북한 선수 사이에서 공을 잡고 드리블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1m58㎝, 50㎏.

몸싸움이 될까? 어떻게 뛰지? 헤딩은 가능한 거야?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첫 축구화 끈을 맨 순간부터 키는 ‘콤플렉스’였다. 아니 엄마는 “축구하면 키 커진다”는 감독의 말을 믿고 축구를 허락했다. 학원 축구부와 실업, 국가대표팀을 거치면서도 키는 확 늘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신의 그는 자기 스타일의 축구를 개척했고, 이제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간판 선수가 됐다. 발재간과 득점력이 좋은 그를 두고 ‘여자축구의 신’이라고 칭송하는 광팬이 나타났고, 지난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 한-일전에서는 통렬한 헤딩 동점골로 큰 경기에 강한 선수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축구는 키가 아니라, 열정으로 한다는 것을 알린 ‘작은 거인’ 이민아(27·고베 아이낙) 이야기다.

몸이 컸으면 좋겠지만…

12일 국제전화로 일본 고베에 있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있으면 구단이 다 알아서 챙겨주겠지만, 일본에서는 혼자 밥해 먹고 빨래하고, 도시락까지 싸 훈련에 나가야 한다. 언어 장벽까지 있어 새로운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 특유의 밝고 차분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놈의 키’ 얘기부터 꺼내자, 그는 “다른 선수를 보면 ‘몸이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몸에서 나만의 축구 스타일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일본 고베 아이낙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이민아.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민아는 감각적인 패스와 영리한 움직임, 공을 빼앗기지 않는 키핑 능력이 장점이다. 여기에 필요할 때 득점해주는 해결사 기질을 갖추면서 날개를 달았다. 2012년 A대표팀에 처음 소집된 이후 미드필더 구실뿐 아니라 공격수의 과제도 떠안은 그는 남자 A대표팀의 이재성(홀슈타인 킬)과 자주 비교된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공을 빼앗기지 않고, 90분 내내 쉴새 없이 움직이면서 종종 결정타를 만들어내는 것이 닮은꼴이다.

일본과의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그런 면모가 드러났다. 그는 후반 23분 측면에서 길게 올라온 어려운 공중볼을 헤딩으로 연결해 천금의 골을 얻어내는 집중력을 보였고, 1-2로 뒤지던 후반 45분에는 골지역 안에서 매우 위협적인 슈팅을 쐈다. 온 힘을 다한 오른발 슛이 수비에 맞고 튕겨 나가자 정강이를 잡고 괴로워했는데, 모든 에너지를 연소시키며 필사의 의지로 뛴 그의 다리 근육이 순간 경직된 것이었다.

뛰어난 선수는 재능을 타고나지만, 노력없이 재능을 꽃피울 수 없다. 열정이나 성실성, 근성, 자세 등은 하늘이 준 품재를 완성하는 필수 요소다. 고등학교 은사인 이성천 포항여전자고의 감독은 “패스 축구를 지향하면서 팀 연습 때도 선수들이 이민아에게 무조건 공을 보낸 뒤 받도록 했다. 당시 이민아는 팀의 게임메이커로 패스 기능을 집중적으로 다듬을 수 있었다. 조금만 공을 잘못 잡으면 내가 거칠게 밀어붙이며 자극을 많이 주었는데, 때로는 이민아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배우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3학년이 되면서 패스 실수는 거의 없었고, 공도 거의 빼앗기지 않는 수준이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민아는 근성이 강하다. 훈련 때와 달리 실전에 들어가면 항상 처절하게 싸운다. 강아지가 호랑이를 만나면 꼬리를 내리지만 이민아는 어떤 상대를 만나든 움츠러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객지에 나간 이민아를 위해 딸이 좋아하는 고들빼기김치 등 밑반찬을 만들어 가끔 일본으로 향하는 어머니는 “우리 딸이 욕심이 많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지는 것을 싫어했다. 초등학교 때도 지면 저 혼자 울었다. 집에 자주 오지도 못하지만 가끔 왔을 때도 ‘쉬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운동해야 한다’며 헬스장에 다니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체력을 단련한다”고 전했다.

당돌한 이민아는 한 학년 선배인 지소연 등에 비하면 뒤늦게 축구팬들한테 알려졌다.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도 2015년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아컵 대회 즈음이었다. 당시 지소연과 공격수 유영아 등이 빠진 자리에서 그는 중원의 패스 마스터로 팀 활력을 끌어 올렸다. 비록 골을 얻지는 못했지만 발군의 능력과 화사한 미소로 중국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인도네시아 겔로라 스리위자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민아가 대만의 골문을 향해 슈팅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민아는 대구 상인초등하교 시절부터 상비군에 뽑힌 유망주였다. 2008년 17살 이하 월드컵에도 합류했고, 2010년 20살 이하 독일 월드컵 사상 첫 동메달의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소연, 김나래, 김혜리, 정설빈, 권은솜, 강유미 등에게 언론의 초점이 쏠리는 바람에 눈길을 끌지 못했다. 2011년말 드래프트를 거쳐, 이듬해 명문 인천현대제철에서 활약하면서 A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지만 2013년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다. 이민아는 “많이 속상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기회는 올 것이고, 그땐 꼭 나의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더 열심히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고교 시절 이성천 감독, 영진대의 백종철 감독에 이어 인천현대제철에 입단하면서 최인철 감독을 만난 것은 전환점이었다. 청소년대표팀 사령탑 시절부터 이민아를 지켜봐 온 최인철 감독은 몸싸움과 헤딩, 결정력 등 새로운 능력을 이민아에게 장착시켰고, 이런 과정을 거쳐 이민아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최 감독은 “체구가 작기 때문에 몸싸움할 때도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돌파해야 하는 것이 필요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면서 타고 들어가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민아는 “이성천 감독님이 패스와 공 컨트롤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지금도 패스와 공 컨트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인철 감독님은 6년 동안 헤딩과 드리블, 패스의 길목을 찾아가는 법을 알려줬다. 모든 분이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그는 2015년 동아시아컵 대표팀에 승선한 이래 팀의 중핵으로 부상했다. 윤덕여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훈련을 해보면 운동장에서 가장 바지런하게 뛰는 게 이민아다. 지피에스(GPS) 장치를 통해 뛰는 거리를 측정하면 이민아의 활동량은 늘 상위권이다. 기술이 뛰어난 데다 판단 능력이 좋기 때문에 신체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아시안게임 4강 일본전에서도 이민아가 일본 선수들의 성향을 알고 있어서 영리하게 위치를 선점하면서 골을 넣었다”고 칭찬했다.

이민아는 한국에서는 대구 집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이름이 알려져 있다. 지난해말 도쿄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컵 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고, 이번 아시안게임 4강 한-일전이 일본에 생중계되면서 다시 한 번 일본 팬들에게 ‘이민아 파워’를 실감시켰다. 이민아는 “일본에서 경기하면 아무래도 관중이 한국보다는 많다. 나를 응원하기 위해 17번 유니폼을 일부러 입고 와서 응원하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을 보면 기분이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고베 아이낙은 나카지마 에미 등 다수의 일본 대표팀 선수들을 보유한, 일본 여자축구 ‘나데시코 리그’의 강팀이다. 14일 현재 10개 팀 가운데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5월 이후 두 달간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이민아는 “팀에서 미드필더와 사이드 공격수를 맡고 있는데 이제는 적응이 끝났다. 앞으로는 잘할 일만 남았다. 팀 우승을 위해 골도 넣고 도움도 많이 배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민아의 꿈은 더 넓은 세상에 있다. 이미 지소연과 조소현이 고베 아이낙을 거쳐 영국의 첼시, 노르웨이의 아발드스네스로 진출했다. 한국의 여자축구는 약간 기형적이어서, 스타급 선수라면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인기와 연봉을 챙기면서 편안하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전체 선수 풀이 작아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지소연이나 조소현, 이민아는 다른 길을 택했다. 더 거칠고 험난한 세계로 자신들을 몰아넣으며 부딪히고 깨진다. 들판의 비바람이 거셀수록 야생의 풀은 더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다. 이민아는 “한국 여자축구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머리에 있다. 일본에서 잘 해서 후배들에게 여자축구를 더 많이 홍보하고, 좋은 경험을 쌓아 대표팀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은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하다. 10일 저녁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WK리그 21라운드 서울시청과 보은 상무의 경기는 무료임에도 순수 관중이 20명 안쪽이었다. 대회 진행을 돕기 위해 고용한 이벤트사의 직원이 더 많았다. 북을 쳐주며 선수들의 사기를 돕는 최동환(27)씨는 “여자축구는 남자보다 단순하게 경기해 처음 보는 사람은 더 이해하기가 쉽다. 공격 횟수도 훨씬 많고 아기자기하다. 관중이 없는 게 정말 아쉽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겔로라 스리위자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4강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이민아(7번)가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성장 가능성이 큰 여자축구가 이륙하지 못하는 데에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대한축구협회 등록 여자선수는 2017년말(1646명)이나 2011년말(1629명)이나 차이가 없는 정체 상태에 빠졌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이 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지난 10년 가까이 WK리그가 내리막길을 걸어왔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2009년부터 여자축구연맹을 맡아온 현 집행부의 전략 부재는 가장 큰 문제로 꼽히지만 책임지는 모습은 없다. 그나마 여자축구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반짝 성적을 내는 것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숨통 구실을 하는 형편이다.

아시안게임 4강전 일본과의 경기 뒤 눈물을 흘렸던 이민아와 고생하며 뛴 대표팀 선수들이 그나마 여자축구의 불씨를 살려내고 있는 셈이다. 비록 3~4위전에 밀려 대만을 꺾고 동메달을 걸었지만 활짝 웃는 그들에게서 축구팬은 희망을 본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금메달보다 더 값진 동메달, 너무 너무 고생많았고 어느 대회보다 더 뜻깊었고 행복했다. 대한민국 여자축구 화이팅”이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것은 여자축구 팬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일본전 패배의 아쉬움을 털고 다음을 기약하는 그의 각오는 다부지다. 그는 “어떤 팀을 만나도 꼭 이기고 싶지만 특히 일본 여자축구팀은 좋은 팀이어서 더 이기고 싶다. 앞으로도 많이 만나고, 많이 이기고 싶다”라고 의욕을 불태웠다.

“일본 꼭 이기고 싶어”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개인교습으로 일본어를 배운다. 좀더 많이 축구를 배우고 느끼기 위해서는 언어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팀 연습 훈련 때는 과감하게 뛰면서 외로움을 잊는다. 그는 “축구는 두려워하면 다친다. 몸싸움이나 헤딩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마음먹고 강하게 부딪히면 오히려 부상도 덜 당한다”고 했다. 시간이 나면 집에서 푹 쉬고 충전하면서 에너지를 보충한다. 부모님과 수시로 통화하고, 때로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팬들의 응원을 접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왼발 오른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테크니션 이민아는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판단의 속도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 힘으로 A매치 51경기(14골)를 뛰면서 매 순간 임팩트 있는 모습을 팬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밥을 많이 먹지 않아 늘 빼빼했고, 고교 시절엔 감독한테 ‘멸치’처럼 말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를 위해 대양으로 나가는 ‘고래’처럼 성장한 것도 항상 생각하는 축구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헛다리짚기 기술인 스텝오버 등 개인기를 벼리는 데도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다양한 영상을 통해 경기를 읽고 관리하는 초특급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그는 “기술적으로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려면 멀었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또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와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 모드리치를 좋아한다”며 롤모델로 제시했다. 내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그의 첫 월드컵은 진짜 장대 선수들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부모님은 둥글둥글한 성격이시지만 저는 승부욕이 강하다”고 말한 그가 ‘여자 모드리치’로 불리면서, 덩치 큰 유럽 선수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팬들의 바람일 것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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