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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오디세이-축구와 정치 |
지난해 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68) 이탈리아 총리가 AC밀란 구단주에서 사임했다는 외신이 눈길을 끌었다. 정치가이면서도 18년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문 축구클럽 구단주 자리에 있던 그는 팀의 인기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3개 민영텔레비전 소유자이기도 한 그는 축구를 발판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 덕을 봤는지 1994년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까지 올랐다. 부패 추문에 휘말려 집권 255일 만에 사임했으나, 2001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정치와 축구를 동시에 넘나들며 꿩 먹고 알 먹던 그가 구단주를 내놓은 것은 “대통령, 총리, 장관 및 주요 공직자는 사기업을 소유할 수 없다”는 법률이 새로 제정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초부터 국내외를 막론하고 시끄러운 축구판을 보며, 새삼 ‘축구와 정치’를 곱씹어본다. 요즘 축구를 개인적인 성취나 정치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목표 달성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어떤가?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가 11일 문화연대·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한 축구인은 “한국 축구가 더 이상 정치도구화돼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축구의 정치도구화’라는 말은 2002 한-일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발판으로 대선전에 뛰어들었던 정몽준 회장에게는 가장 뼈아픈 말이다.
이런 점에서 정 회장에 대한 ‘대항마’를 반드시 내세우기로 했던 축구지도자협의회가 13일 불합리한 회장 선거제도를 이유로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상대에 대한 비판을 넘어, ‘축구인 대 정 회장’의 경선을 통해 한국축구의 앞날을 논의할 좋은 기회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지도자협의회의 한 축구인이 여당의 한 의원을 여러차례 찾아가 축구협회 회장 선거에 나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당의 정치인에게 다시 축구협회를 맡긴다? 축구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던 축구인의 이런 행태 또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김경무 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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