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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0 20:33 수정 : 2017.11.21 00:19

박성현, 올해의 선수·상금왕·신인상
낸시 로페즈 이후 39년 만의 3관왕
외환위기 때 데뷔해 감동 준 박세리
‘골든그랜드슬램’ 달성 박인비에 이어
LPGA 진출 첫해에 골프역사 새로 써
박 “굉장한 영광…더 열심히 하겠다”
유소연, 올해의 선수 공동 수상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온 국민이 신음하던 1998년 7월7일 새벽(이하 한국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런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유에스(US)여자오픈. 만 21살이던 투어 1년차 박세리는 동갑내기 타이계 미국인 제니 추아시리폰과 18홀 연장전을 치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서든데스 두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고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자신이 친 공이 워터해저드에 빠지자 박세리가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물에 들어가 트러블샷을 하던 장면, 그리고 질긴 연장전 끝에 그가 극적으로 우승하던 순간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스포츠적 의미를 넘어, 암담했던 경제위기에 희망을 보여준 인물로 박세리를 기억했다. 박세리는 그렇게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의 최고 대회 한국인 첫 챔피언이 됐고, 이른바 ‘세리키즈’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박성현이 2017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올해의 선수 트로피를 들고 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3박’으로 이어져온 한국여자프로골프의 힘 그로부터 19년4개월 하고도 13일이 지난 2017년 11월20일 새벽. 이번엔 ‘남달라’ 박성현(24·KEB하나은행)이, 지난해 은퇴 전까지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통산 25승을 올리며 2007년 명예의 전당까지 입회한 박세리, 그리고 지난해 8월 2016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커리어 골든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세번째로 세계 여자골프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골프클럽(파72·6570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2017 시즌 최종전인 ‘시엠이(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250만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1978년 낸시 로페즈(미국) 이후 39년 만에 시즌 3관왕(신인상, 올해의 선수, 상금왕)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시즌 상금은 233만5883달러로 홀로 200만달러를 넘었다. 1966년 시상을 시작한 올해의 선수에 한국 선수가 오른 건, 2013년 박인비(29)가 최초였고 이번이 4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톰슨의 30㎝ 퍼트 실수가 가져다준 행운 박성현은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며 시즌 4관왕(최저타수상인 베어트로피)까지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부진해 공동 5위로 처진 뒤 4라운드에서 버디 3개를 잡아내며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 공동 6위로 마쳐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유소연(27)과 공동수상한 ‘올해의 선수’도 놓칠 뻔했다. 그러나 행운이 뒤따랐다. 선두를 달리던 미국의 장타자 렉시 톰슨이 마지막 18번홀에서 30㎝가량의 짧은 파 퍼트에 실패해 1타 차이로 결국 에리야 쭈타누깐(타이)한테 우승(15언더파 273타)을 내줬기 때문이다.

신인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내게 된 박성현은 “경기 끝나고 나서도 올해의 선수상에 대해 전혀 생각을 안 하게 됐는데, 데이비드(캐디)가 공동으로 수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를 해줬다. 굉장히 얼떨떨하고, 한편으로는 타이틀을 하나 더 얻게 돼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극적으로 이 상을 얻기는 했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말하며 좋아했다. 그는 또 낸시 로페즈와 유일하게 어깨를 나란히 한 것에 대해 “일단은 굉장히 영광스럽다. 대단한 분과 같은 길을 걷게 돼서 선수 인생에 있어서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한 일이라는 그 얘기가 지금 가장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박성현과 유소연이 올해의 선수 트로피를 함께 들고 웃고 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박세리, 신지애, 박인비, 박성현까지…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한국인 개척자는 박세리이지만 그의 영향으로 숱한 스타들이 탄생하며 한국 여자골프의 힘을 보여줬다. 1999년 신인상을 탄 뒤 박세리와 함께 한국인 전성시대를 연 ‘슈퍼땅콩’ 김미현, 2000년부터 2004년까지 6차례 우승한 박지은이 있었다. 2005년 유에스여자오픈에서 깜짝 우승한 김주연, 2009년 데뷔해 신인상과 함께 상금왕을 거머쥔 신지애가 뒤를 이어 돌풍을 이어갔다.

가장 최고의 영예를 누린 선수는 역시 박인비다. 2008년 유에스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5년 남짓 부진했다가 2013년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에 올랐고, 2016년에는 박세리에 이어 한국인 두번째로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013년 여자브리티시오픈을 뺀 3개 메이저대회 우승을 휩쓸었고, 2015년 여자브리티시오픈까지 우승한 뒤 2016 리우올림픽을 제패해 더는 정복할 것이 없는 당대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 밖에 2015 유에스여자오픈과 2016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전인지, 2017 여자브리티시오픈 챔피언 김인경 등이 있다. 유소연은 올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에이엔에이(ANA) 인스퍼레이션 우승을 포함해 시즌 2승을 올렸다.

임경빈 골프 해설위원(JTBC)은 한국 여자골프 강세에 대해 “다른 나라 선수들과 달리 우리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학업부담을 덜고 골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여기에 부모의 열성에다 한국인 특유의 악착같은 근성과 성실함까지 겹쳐져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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