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21 08:44
수정 : 2016.08.2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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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 20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 4라운드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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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손가락 부상에도 올림픽 출전 의지
발군의 퍼팅, 흔들리지 않는 멘털로 금
“메이저대회 우승보다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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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 20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 4라운드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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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쉬운 길만 걸어오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해낸 적이 많다.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지만 올림픽에서 모든 걸 쏟아붓겠다.”
2016 리우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올림픽 전초전으로 나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사실 지카 바이러스, 치안, 악어 등등 걱정할 게 많은 (올림픽) 대회다. 하지만 내 컨디션에 대한 걱정에 비하면 작은 문제다. 내가 가진 꿈에 비해 그런 문제는 너무 사소하다”고 금메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뒤 다음날 열린 대회에 나섰지만 경기 감각을 찾지 못하고 컷 탈락의 부진을 보여줬다. 1, 2라운드 2오버파. 예상외로 저조했던 성적 때문에 과연 그가 열흘 남짓 남은 올림픽에서 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우려도 나왔다.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그리고 열흘 만에 나선 리우올림픽. ‘침묵의 암살자’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그의 독주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1900 파리올림픽 이후 116년 만에 돌아온 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것이다. 경기 뒤 그는 “그동안 (부상 등) 많은 일이 있었지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메이저대회 우승보다 이번 우승이 특별하다. 나라를 대표해 우승하는 것만큼 특별한 것은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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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의 2008년 유에스(US) 여자오픈, 2013년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엘피지에이 챔피언십, 유에스 여자오픈, 2015년 여자브리티시오픈,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 때 모습들.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골든슬램을 완성한 대회들이다. JNA 제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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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코스(파71·6245야드)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 최종 4라운드에서 박인비는 세계 순위 1위 리디아 고(19·한국 이름 고보경·뉴질랜드), 미국의 저리나 필러(31)와의 챔피언조 대결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는 샷, 환상적인 퍼팅, 강인한 멘털 등 단연 우위를 보이며 사실상 리우올림픽 한국 대표팀에 마지막 금메달을 선사했다.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 리디아 고가 11언더파 273타로 은메달, 중국의 펑산산이 10언더파 274타로 동메달을 가져갔다.
리디아 고는 이날 샷과 퍼팅이 흔들리며 박인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리디아 고와 필러에게 2타 앞서며 4라운드를 시작한 박인비는 초반 5번홀까지 버디 3개를 잡아내며 일찌감치 앞서나가며 승기를 잡았다. 10번홀 티샷이 물에 빠진 게 옥에 티였다. 버디 7개와 보기 2개로 5타를 줄였다. 지난해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우승) 위업을 달성한 박인비는 세계 남녀 골프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까지 차지한 ‘골든 슬램’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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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 경기에 앞선 연습라운드 때 홀인원을 기록하고 찍은 기념사진. 그 홀인원 행운이 이번 금메달 쾌거로 이어졌다. 박인비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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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박세리 키즈’로 박세리를 보고 골프를 시작했던 박인비는 경기 뒤 “남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기분이다. 모든 힘을 다 쏟았다”며 “2020 도쿄올림픽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도전할 수 있다면 좋은 목표가 될 것 같다”고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할 수 있음도 내비쳤다. 그는 부상에도 올림픽 출전을 강행한 뒤 마음고생도 심했음을 털어놨다. “번복하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욕을 먹을까 봐 올림픽을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것으로 판단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을 먹도록 도와준 존재가 가족이다.” 그의 금메달 현장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7승(통산 17승)을 올릴 때처럼 코치인 남편 남기협씨가 있었다.
박인비는 올해 들어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2016 시즌 개막전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 1라운드에서는 80타를 쳤고, 허리 부상까지 이어져 그 대회에서 기권한 뒤 한 달을 쉬어야 했다. 이후 부진을 거듭했다. 왼손 엄지손가락 부상이 더욱 그의 덜미를 잡았다. 그래서 타이의 에리야 쭈타누깐, 캐나다의 브룩 헨더슨 등 20대 초반의 경쟁자들이 잇단 우승으로 랭킹을 2~3위로 끌어올리는 사이, 박인비는 세계 5위까지 추락해 자존심을 구겼다.
이런 와중에도 케이피엠지(KPMG) 위민스 피지에이(PGA) 챔피언십에 출전해 미국여자프로골프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한 마지막 조건(올해 10개 대회 출전)을 채우며 그의 골프 인생에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리우에서 60명 출전 선수 가운데 발군의 기량으로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골프여제임을 입증해 보였다. 박인비는 이번 금메달로 대한골프협회가 내건 포상금 3억원을 받게 됐다. 정부 포상금 6000만원은 덤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연금 혜택도 있다. 연금은 월 100만원이지만 일시불로 받을 경우 672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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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가운데)가 뉴질랜드의 리디아고(왼쪽), 중국의 펑산산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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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출신인 리디아 고는 이날 18번홀(파5)에서 극적으로 2.5m 거리의 버디 퍼팅을 성공시켜 앞조에서 경기를 마친 펑산산을 1타 차로 제치고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선수로는 양희영(27·PNS창호)이 막판 4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 일본의 노무라 하루쿄와 9언더파 275타 공동 4위로 선전했다. 전인지(22·하이트진로)는 5언더파 279타 공동 13위, 김세영(23·미래에셋)은 1언더파 283타 공동 25위로 마쳤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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