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13 18:40
수정 : 2016.01.1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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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그라운드골프 동호회 회원들이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 인조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그라운드골프는 클럽과 공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으며 복장 또한 자유롭다. 부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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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온]
그라운드골프 동호회 ‘도란도란’
“간다, 간다, 간다.”
“어~. 들어가겠다.”
(공이 홀 깃대에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굴러나오자)
“아이고, 아까워라.”
“거참~, 아하하하.”
한겨울인데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위치한 범박산 옆 인조잔디구장에 어르신들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한 손에는 끝이 뭉뚝한 골프클럽을 잡고 테니스공 크기만한 공을 깃발이 꽂힌 홀 깃대로 굴린다. 게이트볼? 파크볼? 아니다. 그라운드골프다.
1983년 일본에서 시작된 그라운드골프는 골프와 게이트볼의 장점만 따온 생활체육으로, 규칙이 간단해서 잠깐 배우면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다. 50m, 30m, 25m, 15m 거리에서 골프처럼 퍼팅을 하지만 지름 6㎝, 무게 75~95g의 공을 홀컵에 집어넣는 게 아니라 잔디 위에 세워져 있는 지름 36㎝의 홀 깃대 안에 넣는다. 골프 샷처럼 공을 띄우지 않고 게이트볼처럼 굴리기만 되기 때문에 별다른 타격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다. 한국에는 1993년 처음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생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2002년 63명에 불과했던 그라운드골프 동호인 수는 2015년 말 현재 4만1457명(1195개 팀)으로 늘었다. 클럽 한 개와 공 한 개만으로 4~5년 이상 즐길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이 적고 잔디 손상도 거의 없기 때문에 학교 운동장이나 일반 공원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축구장 크기의 공간에서는 한 번에 최대 200명까지도 경기할 수 있다.
공을 띄우지 않고 굴리기만 허용
지름 36㎝ 홀 깃대 안에 넣는 경기
특별한 퍼팅 기술 필요하지 않아
남녀노소 동호인수 4만여명 달해
10여명이 4년 전 ‘도란도란’ 결성
영하추위 아니면 매일 모여 운동
건강 좋아지고 우울증 치유까지
“잘쳐도 웃고 못쳐도 마냥 웃어요”
경기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8홀씩 2라운드를 돌아 최소 타수로 경기를 끝낸 사람(조)이 이긴다. 공이 한 번에 들어가면 홀인원으로 -2, 두 번에 성공할 때는 버디라 해서 +2로 계산된다. 보통 6인 1조로 경기를 하지만 대회가 아니라면 사람 수는 굳이 관계없다. 스트로크 매치는 물론이고 홀 매치, 파 플레이 매치, 포섬 등도 가능하고 남녀 성대결도 할 수 있다. “공이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10㎝ 거리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동호인들의 귀띔이다. 경기 장비는 클럽, 공 외에 스타트매트와 홀 깃대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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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골프 장비 (1) 그라운드골프 클럽과 공: 공은 합성수지로 만든 지름 6㎝, 무게 75~95g의 공인구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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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골프 장비 (2) 스타트매트: 공을 맨 처음 굴릴 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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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골프 장비 (3) 홀 깃대: 공을 쳐서 들어갈 수 있는 방향으로 홀깃대의 다리를 열린 형태로 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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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박산 인조잔디구장에 모여 운동하는 ‘도란도란’ 그라운드골프 동호회는 2012년 6월 10여명으로 시작됐다. 교육계에 있다가 은퇴한 뒤 시인·수필가로 활동 중인 박인희(78)씨는 “‘도란도란 재미있게 지내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도란도란’으로 지었다”고 했다. 원년 멤버로 부천시니어체육회 그라운드골프 사무국장도 역임 중인 이신행(74)씨는 “운동이라고는 등산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라운드골프를 시작한 첫날에 50m 홀인원을 했다. 그날 너무 기분이 좋아서 16명 식사값을 다 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라운드골프는 어린이부터 100살까지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아내도 운동이라는 것을 지금껏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인데 그라운드골프는 매일 참석한다”고 했다. 도란도란 팀에는 이 사무국장처럼 부부 동반으로 함께 운동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팀 창단 초기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 고생도 했다. 부천동중학교 운동장을 빌려 새벽 5시부터 홀마다 랜턴을 켜놓고 운동을 하기도 했다. 지난여름 범박산 인조잔디구장이 생기면서 여유가 생겼다. 곽명근(73) 회장은 “장소가 좋으니까 참석률이 좋아졌다”고 했다. 겨울이어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아침, 점심 틈나는 대로 모여 운동을 한다. 김동자(72)씨는 “매일 만나니까 서로 친해질 수밖에 없다. 잘 쳐도 웃고, 못 쳐도 웃게 되니까 웃음보가 그냥 터진다”며 “심보들이 고약해서 그런지 남이 못 치면 더 크게 웃는다”고 눙을 쳤다. 김철정(76)씨와 홍순정(78)씨도 “전에는 집에서 숨쉬기 운동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가 와도 우산 쓰고 나와서 운동한다”며 웃었다. 회원 중에는 운동 4개월 만에 혈압약을 줄인 이도 있고, 남편과 사별 후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치유한 이도 있다. 박성필(80)씨는 “운동을 시작하고 질병이 싹 다 나았다. 기분도 좋고 마음까지 넓어진다”고 했다.
공을 굴릴 때마다 홀인원에 온 신경을 집중해 걸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게 된다. 1시간30분 운동시간이 아쉬울 때가 많다. 이신행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50m 홀인원을 할 때마다 만원씩 받았는데 하다 보니 너무 자주 나왔다. 이젠 홀인원과 버디 10개 할 때마다 500원씩 회비로 낸다”며 “모은 회비는 나중에 회원들끼리 나눠 갖기도 하고 지역사회에 기부하기도 한다”고 했다. 재작년에는 운동장을 빌려 썼던 동중학교에 50만원 상당의 책을 기부했다. 지금도 회원들은 ‘재미있게 운동을 해서 모은 돈을 어떻게 기부하면 좋을까’ 고민한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니어 운동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바깥운동을 하려는 의지가 강한 어르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박인희씨는 “그라운드골프가 운동이 꽤 되기 때문에 신체 상태가 좋아져서 병원에 가는 횟수가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 국가가 노인들 체육을 후원하는 데 인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도란도란’ 웃음소리가 범박산 밖으로 점점 퍼져나간 한겨울의 오후였다.
부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경기 방식
경기장은 50m, 30m, 25m, 15m짜리를 각각 2홀씩 총 8홀로 구성하는데 골프와 달리 지름 36㎝의 홀깃대를 설치해 경기. 스타트매트에서 공을 굴려 한 번에 들어가면 홀인원으로 점수가 -2점, 두 번에 들어가면 +2점, 세 번은 +3점 식으로 점점 올라감. 1번 홀에서 8번 홀까지 2라운드 합계 최저 타수를 기준으로 순위 결정. 개인전과 단체전이 따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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