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통] 여자 프로골퍼 3인의 고충
대회마다 갤러리가 몰린다. 후원사들도 앞다퉈 줄을 선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현실이 그렇다.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무대에서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던 1998년만 해도, 국내 여자투어 대회 수는 7개에 불과했다. ‘박세리와 세리 키즈 열풍’으로 2008년 25개로 한번 정점을 찍더니, 2014년 27개, 2015년 29개로 더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16주 연속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내년엔 30개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름에도 쉼없이 대회는 열린다. 늘어나는 국내 투어와 함께 해외 투어까지 참가하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체계적인 일정 관리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다수 스타급 선수들이 국내외로 강행군을 거듭하느라, 무릎·어깨 등 고질적 부상이 도지고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일부 정상급 스타들은 후원사나 협회의 요구에 못 이겨 부상, 피로 누적 등에도 대회에 불려다녀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차세대 ‘골프여왕’으로까지 꼽히다 다소 주춤하고 있는 김효주(20·롯데)를 비롯해, 그와 함께 올해 미국 무대 데뷔한 백규정(20·씨제이오쇼핑), 올해 한·미·일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등 최고 스타로 떠오른 전인지(21·하이트진로) 등 3인이 최근 겪고 있는 부진이나 어려움은 젊은 골퍼들이 맞닥뜨린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김효주미국무대 초반 우승까지 했지만
당일 귀국해 스폰서대회 참가 등
체력 약한데 국내외 강행군 뒤탈 ■ 김효주 ‘아름다운 스윙’은 왜 무너졌나? “올해 효주가 미국 투어 가서 많이 힘들어했다. 체력이 약한데 이동거리가 많은 투어 뛰려고 강행군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게다가 국내 대회를 뛰려고 한국에도 와야 하니….”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던 ㅎ 감독의 말이다. 자신의 후원사가 지난 4월 둘째 주에 제주도에서 개최한 롯데마트 여자오픈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장거리 비행 이동으로 5개 대회를 치르고 다시 한국에 와서 1~3라운드를 치른 다음 기권했다. 골프계 한 인사는 “효주가 롯데마트 여자오픈 1라운드 당일 오전 제주도에 비행기로 도착해 대회 출전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KLPGA 투어 대회 수 증가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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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무대서 ‘혹독한 신고식’
26개 대회 나서 5번이나 컷오프
“적응 실패가 원인…고독해 보여” ■ 슈퍼루키 백규정은 왜 미국 적응에 실패했나? 백규정은 김효주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다. 2014년 국내 투어에 데뷔한 그는 24개 대회에 출전해 시즌 3승을 올리고, 신인으로 당당히 상금순위 5위(6억1009만1047원)를 차지하며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신인상도 그의 몫이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열리는 유일한 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인 케이이비(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깜짝 우승한 덕에 올해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그러나 시즌 첫 대회(코츠 골프챔피언십)부터 컷을 통과하지 못하는 등 슬럼프에 빠져 있다. 26개 대회에 출전해 마라톤 클래식에서 공동 5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의 성적이다. 5번이나 컷오프를 당했다. 현재 상금순위 56위(32만2032달러)이고, 평균타수는 77위(72.43)이다. 백규정은 지난주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는 극도의 부진 끝에 최종합계 19오버파 307타로 꼴찌(36위)로 밀리기도 했다. ‘슈퍼루키’ 백규정의 부진 이유는 뭘까? 그를 후원하는 기업의 한 인사는 미국 무대 환경적응 실패를 꼽았다. “백규정은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회 때 갤러리가 따라다녀 샷에 집중할 수 있는데, 미국 가보니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선수 혼자 나무랑 풀이랑 러프랑 얘기하며 샷을 한다는 말도 나온다. 게다가 알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 선수와 플레이를 하니…. 결국 고독해서 그런 것이다.” 그는 국내에서 열린 미국 투어에서 깜짝 우승한 뒤 준비 없이 미국으로 진출하는 선수에게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백규정이 시드는 유지했다. 그한테 다른 문제는 없다. 미국 무대 적응의 한 과정”이라고 내다봤다. 전인지
올해 3개국 메이저 우승 ‘유명세’
무리한 일정탓 또다시 어깨 다쳐
내년 미국무대 데뷔 앞두고 우울 ■ 전인지가 아파도 대회에 나와야 하는 이유는? “제가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 같아요.” 올해 국내 투어 5승을 올리며 대상·최저타수상·상금왕 등 4개 타이틀을 석권한 전인지가 최근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요즘 2013년 신인 때도 문제가 됐던 왼쪽 어깨 부상으로 내년 미국 무대 데뷔를 앞두고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번주 열리는 올 시즌 최종전인 시엠이(CME)그룹 투어 챔피언십도 애초 출전하려다 포기했다. 이 대회 뒤 신인교육을 받기로도 한 상황이었다. 전인지는 올해 국내 투어 20개 대회에 출전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열린 메이저대회까지 잇따라 출전하는 등 강행군을 거듭한 끝에 시즌 총 8승 등 최고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으로 피로가 누적된데다가 어깨 부상까지 도지며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 국내 투어에는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최고의 스타가 된 만큼 협회나 힘이 있는 후원사가 부르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심지어 재학중인 고려대의 자선골프대회까지 나오라고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열린 국내 투어 2015 시즌 최종전인 조선일보-포스코 챔피언십에도 출전해야 했다. 디펜딩 챔피언인데다 후원사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부상 여파로 부진한 성적표(56위)를 받았다. 주위의 요구도 있지만 전인지 쪽에서 1년 투어 출전 스케줄 관리를 잘못한 탓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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