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챔피언십 우승…데뷔 9년만에 메이저 첫 정상
둘째를 임신한 아내(엘리)가 어린 아들(대시)과 함께 18번홀 그린 주변에서 챔피언 등극을 눈앞에 둔 남편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었다. 긴 버디 퍼팅을 핀 바로 앞에 붙여 그토록 기다리던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필리핀계 호주의 골프 영웅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챔피언 퍼팅을 끝내고는 캐디와 얼싸안고 울음을 쏟아냈다. 그동안 20번 출전해 9번 ‘톱10’뒷심 부족 징크스 드디어 벗어나
20언더파로 우승 ‘신기록’ 달성도
데이 “내가 울 줄은 몰랐다” 감격 필리핀계 호주인으로 어릴적 불우
홀어머니가 빚내 골프 뒷바라지
뇌가 위치신호 혼돈 ‘희귀병’ 앓아
올시즌 현기증으로 쓰러지기도 20대 후반인 그의 골프 인생에서 우여곡절이 그만큼 많았던 탓이리라. 필리핀인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호주인 아버지 사이에서 호주 퀸즐랜드주 보데저트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운했다. 6살 때 골프채를 잡게 만든 아버지는 12살 때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는 집을 두번씩이나 저당 잡히며 친척한테 돈을 빌려 골프 비용을 댔다. 뜨거운 물 탱크가 집에 없자 어머니는 주전자 3~4개에 물을 끓여 아들이 샤워를 하도록 했다. 코치의 권유로 집에서 차로 7시간 거리의 골프아카데미에 들어간 그는 룸메이트로부터 타이거 우즈의 책을 빌려 봐야 했고, 거기서 골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투어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19살의 나이인 2006년 마침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입성했으나 4년 뒤인 2010년이 돼서야 데뷔 첫 우승(바이런 넬슨 챔피언)을 일궈낼 수 있었다. 이후 두번째 우승(2014년 액센추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우승)까지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했다. 특히 메이저대회에서는 지독히도 불운했다. 2011년과 2013년 마스터스와 유에스(US)오픈에서, 그리고 여러 차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4라운드에서 흔들리며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20차례 메이저대회에 출전해 톱10 9회 입상으로 투어가 알아주는 실력파였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심적 상태도 문제였다. 가정사에서도 큰 아픔을 겪었다. 2013년 11월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던 외할머니 등 외가 친척 8명이 태풍 하이옌 때문에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병마와도 싸워야 했다. 2010년부터 ‘양성 발작성 두위현훈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고통을 받아왔는데, 올해 6월 유에스오픈 2라운드 경기 도중에는 현기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일까지 당한 것이다. 몸이 보내주는 위치 신호를 뇌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앞이 캄캄해지고 어지러운 느낌이 드는 그런 병이다. 괴력의 장타자 제이슨 데이(28) 이야기다. 데이가 올 시즌 두차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더니 마침내 메이저 챔피언 꿈을 이뤘다. 16일(현지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파72·7514야드)에서 열린 제97회 피지에이(PGA) 챔피언십(총상금 1000만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다. 데이는 이날 버디 7개와 보기 2개를 묶어 최종합계 20언더파 268타로 정상에 올랐다. ‘아메리칸 슬램’(한해 미국에서 열린 3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노리던 조던 스피스(22·미국)를 3타 차 2위로 따돌렸다. 우승상금 180만달러(21억원). 데이는 경기 뒤 “사실 내가 오늘 울 줄은 몰랐다. 그동안 여러 차례 메이저 우승 기회를 놓치고, 오늘도 스피스를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4대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20언더파로 우승한 것은 데이가 처음이다. 종전 메이저대회 최다 언더파 우승 기록은 타이거 우즈(미국)가 2000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작성한 19언더파였다. 세계랭킹 5위인 데이는 올해 유에스오픈과 브리티시오픈에서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를 달리다가 4라운드에서 우승권에서 밀려난 아픔도 말끔히 씻어냈다. 데이에게 패했지만 조던 스피스는 이날 17위(9언더파)로 마친 로리 매킬로이(26·북아일랜드)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르게 됐다. 올해 마스터스와 유에스오픈 정상에 오른 스피스는 브리티시오픈 4위 등 올해 4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톱5에 들었다. 그러나 1953년 벤 호건, 2000년 타이거 우즈에 이어 세번째로 한해 메이저대회 3승을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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