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오픈 첫 우승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4개조 경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18번홀 버디로 사실상 브리티시오픈 우승이 굳어진 순간, 필 미켈슨(43·미국)은 클럽하우스 주변에서 세 딸과 부인을 얼싸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14살 큰딸 어맨다를 비롯해, 소피아, 에번, 그리고 오랫동안 유방암과 싸워온 아내 에이미. 지난 2주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함께하며 아버지와 남편의 우승을 고대했던 가족들은 함박웃음을 떠뜨리며 좋아했다. 21년 동안 캐디백을 메고 동고동락한 짐 본스 매카이는 경기 뒤 미켈슨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오히려 더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그를 향해 미켈슨은 미소 지으며 “내가 해냈어”라고 속삭였다. 마지막 6개홀서 버디 4개5타차 뒤집는 역전 드라마 “골프보다 가족” 원칙 지켜와
암투병 아내 위해 투어 멈추고
대회중 딸 졸업식 참석한 적도 늘 “골프보다 가족이 먼저”라는 원칙을 지키며 세계 골프팬들에게 탁월한 왼손골퍼(레프티)의 정교한 샷과 마법 같은 퍼팅 실력, 그리고 뜨거운 가족애를 동시에 전파했던 미켈슨. 2009년 브리티시오픈을 앞두고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자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3개월 동안 극진하게 아내를 돌봤던 그였다. 지난 6월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유에스(US)오픈 때는 큰딸 졸업식 참석을 위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자택에서 하루 자고 1라운드 경기 당일 새벽 비행기로 펜실베이니아주 아드모어로 이동하는 등 남다른 자식사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생애 처음으로 ‘클라레 저그’(은으로 만든 술주전자)의 주인공이 됐다. 1992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해 무려 20차례의 도전 끝에 이룬 쾌거였다. ■ 13~18번홀 4개 버디로 대역전극 21일(현지시각) 영국 스코틀랜드 걸레인의 뮤어필드 링크스(파71·7192야드)에서 열린 142회 브리티시오픈(공식 명칭 The open championship) 최종 4라운드. 미켈슨은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69+74+72+66)로 우승을 일궈냈다. 3라운드까지 공동선두이던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 등과의 5타 차 열세를 뒤집은 역전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13번홀부터 18번홀까지 후반 6홀에서 보기 하나 없이 버디만 4개 잡아낸 것이 우승 원동력이었다. 우승 상금 95만4000파운드(16억2000만원). 메이저대회 통산 5승째. 이전까지 메이저대회에서는 마스터스에서 3승(2004, 2006, 2010년), 피지에이(PGA) 챔피언십에서 1승(2005년)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유에스오픈과 브리티시오픈과는 우승 인연이 없었다. 브리티시오픈 제패로 앞으로 유에스오픈만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이번 우승으로 미국프로골프 투어 통산 42승 고지에 올랐다.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이 2위(이븐파), 웨스트우드와 애덤 스콧(호주), 이언 폴터(잉글랜드)가 공동 3위(1오버파). ■ ‘연인’ 동반 우즈 2인자 미켈슨에 참패 이번 대회에서는 통산 1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노리는 타이거 우즈(38·미국)가 연인인 ‘스키 여제’ 린지 본(미국)을 동반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우즈는 4라운드에서 샷 난조로 고전하며 결국 2오버파 286타(69+71+72+74) 공동 6위로 마쳤다. 버디 3개에 보기 6개로 들쭉날쭉했다. 샷이 흔들린 것은 물론 퍼팅도 안 됐다. 미국 <이에스피엔>(ESPN) 뉴욕닷컴의 칼럼니스트인 이언 오코너는 “세계랭킹 1위 우즈의 약점은 게임이 아니라 멘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우즈는 경기 내내 표정이 굳어 있었고, 샷 뒤 짜증을 내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애덤 스콧과 동반플레이한 것도 독이 됐다. 자신과 결별한 뒤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비방했던 전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가 스콧의 캐디로 나섰기 때문이다. ■ 우즈 그늘 벗어나다 미국에서 미켈슨은 늘 2인자였다. 1인자 우즈의 그늘에 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2주 동안 스코틀랜드오픈과 브리티시오픈을 연이어 제패해 유럽 징크스까지 깨며 미국의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미켈슨은 “그동안 링크스코스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샷을 날렸다”고 좋아했다. 이번 우승으로 미켈슨은 세계랭킹 5위에서 2위로 도약했다. 이런 상승세라면 조만간 우즈를 넘어설 수도 있다. 미켈슨은 올해부터 로프트 2도짜리 오디세이 퍼터(캘러웨이골프)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보통 선수들이 4~5도의 퍼터를 쓰는 것과 달리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18번홀(파4·470야드) 3m 거리의 내리막 라이에서 그가 버디 퍼팅을 성공시킨 것은 이번 대회의 ‘백미’였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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