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8.01 19:03 수정 : 2005.08.02 01:45

브리티시여자오픈서 6년 무관 한풀이
선두 안내주고 소렌스탐 등 따돌려

그는 결코 울지 않았다. 당당하고 의젓했다.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골프코스에서 열린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는데도 울지 않았다. 2000년 데뷔 이후 6년간 한번도 우승을 못한 그를 불편한 몸으로 그림자 같이 도와준 아버지와 뜨거운 포옹을 하면서도 울지 않았다.

고향에서 음식점을 하며 손 마를 날이 없었던 어머니가 딸의 믿기 어려운 우승에 목메어 할 때도 그는 울지 않았다. 두 손으로 들기에도 힘든 우승 트로피를 가슴에 안으면서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마치 우승을 여러번 한 노장 같았다.

같은 조였던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그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내공에 밀려 휘청거렸다. 첫날부터 단독선두를 달린 그를 수많은 저격수들이 날카로운 샷으로 겨냥했으나 조금도 흔들리게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약한 골퍼였다. 우승 문턱에서 좌절할 때마다 방구석에 처박혀 “나는 정말 못난이야” “나는 골프를 못치는 바보야”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1일(한국시각)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버크데일골프링크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상금 28만208달러)을 차지한 ‘슈퍼 울트라 땅콩’ 장정(25). 그는 첫날부터 당당하고 의젓하고 여유있는 몸짓으로 선두자리를 한번도 내놓지 않아 전세계 골프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1m52의 작은 키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샷을 구사하며, 추격자들의 거센 숨소리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침착함에 모두가 감동했다.

장정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다가 3년 전 명예은퇴한 장석중(60)씨의 세 딸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아들이길 바라 이미 ‘정’이라는 남자 이름이 지어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똘망똘망했다. 마치 남자 아이처럼 운동도 잘했다. 이웃집 아저씨들은 얼굴이 하도 귀엽고 통통해 ‘금복주’라고 부르며 귀여워했다. 박세리와 이웃집에 살았고, 아버지가 골프를 좋아해 대전 중앙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1997년 여고생 신분으로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당찬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98년에는, 올해 유에스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김주연과 함께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 단체전 은메달과 개인전 동메달을 따냈다.

1999년 말 아버지와 둘이 미국에 건너갔다. 세계무대가 좁아 보였다. 그러나 우승은 쉽지 않았다. 2002년에는 급성 B형 간염에 걸려 쓰러지기도 했다. 당황한 아버지가 딸의 팔뚝에 링거 주사를 꽂은채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조금만 늦었다면 생명도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투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명예퇴직을 한 아버지는 3년전 갑자기 쓰러졌다. 원인은 아직 모른다. 그 이후 방향 감각이 어두어졌고, 어지러워 운전을 못하게 됐다. 그래서 큰 언니 미경(31)씨가 매니저 역할을 하러 미국에 갔다.

장정의 우승 순간, 마침 어머니 이경숙(53·한정식집 운영)씨도 그린 근처에서 남편과 함께 막내딸의 의젓하고 자랑스런 모습을 지켜 보았다. 바로 그 순간, 대전시 유성구 장대동 고향집에서 그를 대신해 눈물을 흘린 둘째 언니 은경(28)씨는 “정이가 우승해 울 줄 알았는데 웃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며 “아마도 호텔에 돌아가 실컷 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