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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0 18:13 수정 : 2005.07.10 18:13

“눈물 젖은 고등어찌개 잊지 못하죠”

얼큰한 고등어 찌개였다.

로스앤젤레스를 떠날 때 생고등어 한마리를 샀다. 미니밴으로 3시간을 달려 골프장 근처의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한국을 떠난 지 1년. 딸은 가끔 집에서 엄마가 끓여주던 고등어 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 호텔에선 취사를 할 수 없지만 이번엔 꼭 고향의 맛이 있는 찌개를 끓여주고 싶었다.

미국 2부 투어 참가한 딸 4년간 직접 뒷바라지
미니밴 빌려 낯선 땅 돌며 영어 못해 숱한 고생
“가장 많이 쓴 영어가 ‘NO English’였어요

화장실에서 가스버너를 조심스럽게 켜고 요리를 시작했다. 고등어를 토막내 냄비에 넣고, 약간 신 김치, 그리고 된장도 조금 풀었다. 물론 냄새가 나갈까봐 창문을 닫아 놓았다.

방 한가운데 트렁크를 눕혀 놓고 그 위에 상을 차렸다.

“어때, 아빠 요리 솜씨가?”

“정말 맛있어, 아빠. 고마워. 이번 대회에 꼭 우승할께.”

두 숟가락 정도 먹었을까. 누군가 방문을 두들긴다. 가슴이 철렁. 딸이 문을 빠끔히 열었다.

호텔 지배인이었다. 당장 호텔에서 나가라는 요청이었다. 비린 생선 냄새와 김치 냄새가 풍기며 항의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짐을 챙겼다. 그리고 미니밴에 짐을 옮긴 뒤 차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흐린 시야 속에 마주 앉은 딸의 볼에도 눈물이 흐른다.

‘눈물의 고등어 찌개’

딸 주연(24)이는 얼큰한 찌개 탓이었는지, 아니면 눈물의 식사 탓이었는지 다음날 열린 미국 2부 투어 대회(2001년 5월)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달 28일 환상의 버디 벙커샷으로 유에스 여자 오픈 우승을 차지한 김주연의 영광 뒤에는 딸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밑바닥 투어 생활을 한 아버지 김용진(50)씨의 사랑과 열정이 있었다.

김씨는 영어를 거의 못한다. 가장 자주 쓰는 영어는 ‘노 잉글리쉬(No English)’. 누가 말을 붙이면 “난 영어를 못한다”는 뜻으로 김씨가 만든 말인데 잘 통한다.

2004년 2월의 일이다. 올랜도에서 2부 투어 대회가 열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차로 가려면 2박3일. 미국을 동서 횡단하는 거리이다. 주연이 비행기 표만 샀다. 그 거리를 차를 타고 가면 몸이 피곤해 경기를 망치기 때문이다. 주연이는 떠나기 전날 인터넷을 통해 도로 정보를 알아내 A4 용지 두장 빽빽히 차를 몰고 오는 요령을 적어 줬다. 김씨는 이정표의 영어가 주연이가 써 준 것과 같은 ‘모양’임을 확인하며 운전해 갔다. 김씨는 2박3일 동안 혼자 그 수백개의 이정표 알파벳 모양을 확인하며 운전해 간 것이다.

주연이 없이 혼자 호텔에 가 방을 예약할 때도 방법은 있었다. 호텔 프론트에 가 일단 ‘노 잉글리쉬’를 외친 뒤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영어 잘하는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핸드폰을 호텔 관계자에게 넘기면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석재업을 하던 김씨가 지난 2000년 여름, 한국 국가대표 출신의 딸과 함께 미국의 2부 투어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모든 이들이 말렸다.

2부 투어는 상금도 얼마 되지 않고, 미국 변두리에서 열려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대회가 열리더라도 갤러리가 거의 없다. 더욱이 영어를 못하는 김씨가 미니밴을 빌려 미국 전역을 직접 운전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던졌어요. 올인이라고 하나요. 딸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말이죠.” 김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다 큰 딸과 나이 든 아버지의 어색한 동행은 4년만인 지난해 여름 끝났다. “이젠 네가 다 알아서 해라. 넌 더이상 아이가 아니니까.” 김씨는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귀국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딸은 세계 최고가 됐다. 4년간 아버지의 정성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지난주 미국에 온 아버지에게 딸은 ‘무려’ 500달러짜리 명품 구두를 선물했다. 10달러 쓰는 데도 벌벌 떨던 딸이 큰 돈을 쓴 것이다. 아버지는 아직 그 구두를 신지 않고 모셔두고 있다.

김씨는 올해 복이 터졌다. 4자매 맏딸인 주연이의 메이저대회 우승과 함께 지난 1월에는 나이 50에 ‘늦동이’ 외아들을 본 것이다.

충청도 청주가 고향인 김씨는 “그 까이꺼 뭐, 잘 키우면 돼죠. 뭐.”라며 멋적어한다.

주연이의 잠재력을 알아내고 일찍부터 스폰서 역할을 한 케이티에프(KTF)에 고마움을 표시한 김씨는 “주연이는 이미 미국에서 5년간 슬럼프를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슬럼프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글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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