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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7 18:42 수정 : 2005.06.27 18:42

김주연이 27일(한국시각) 유에스여자오픈골프대회 4라운드 18번홀에서 벙커샷으로 환상적인 버디를 성공한 뒤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다. 체리힐스빌리지/AP 연합

김주연 18번홀 벙커샷 거짓말처럼 ‘쏙’

“골프사 남을 명장면” 기립박수 환호

벙커 턱이 키보다 높다. 공이 들어갈 홀은 물론 그린도 보이지 않는다.

한 조에서 경기를 했지만 별 말이 없던 미셸 위(15)가 굳은 표정을 하고 먼저 벙커에 섰다. 우승이 예상됐던 미셸 위는 심리적 중압감을 극복하지 못해 이미 12오버파로 무너진 상태.

김주연(24·KTF)은 고개를 돌려 두번째 샷을 한 지점을 야속한 듯 바라다 보았다. 왼쪽에 커다란 연못을 끼고 있는 18번홀은 파4이지만, 무려 459야드로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리는 것이 어렵다. 원래 파5홀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파4홀로 바뀌었다. 게다가 왼쪽으로 휘어지는 도그레그홀. 많은 선수들이 이 홀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 대회 4라운드 내내 이 홀에서는 고작 4개의 버디가 나온 사실이 이를 증명했다.

17번홀부터 뒷조의 모건 프레셀에 공동선두를 허용한 김주연은 눈앞에 온 우승을 위해서는 최소한 파를 해야 했다. 드라이버로 힘껏 티샷을 해 공을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떨궜으나 홀까지 남은 거리는 무려 193야드. 그린에 올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5번우드로 샷을 했으나 그린 왼쪽의 벙커에 먹히고 만 것이다.


가슴이 뛴다. 눈앞에 온 우승은 달아나는 것일까…. 먼저 벙커 탈출을 시도한 미셸 위는 가볍게 공을 홀 2m 가까이 붙혀 놓았다. 공을 떨어뜨릴 지점을 정한 김주연은 두 세차례 가볍게 스윙을 한 뒤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욕심을 버리자. 홀 가까이 붙여 파 세이브를 하자’. 아마추어 시절 19승을 하면서 다져진 심장이지만 승부가 걸린 샷은 언제나 두렵기만 하다. 그린 가장자리까지는 10m. 그리고 내리막 그린. 깊게 심호흡한 김주연은 샌드 페이스를 활짝 열어 부드럽게 백스윙을 하고, 공 2~3㎝ 뒤 모래를 향해 자신감있게 클럽을 내리쳤다. 공은 모래포말과 함께 공중으로 이륙을 시작했다. 그리고 높은 벙커 턱을 가볍게 올라 그린 끝에 떨어졌다. 방향과 비거리 모두 정확했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이제부터는 공 마음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홀까지는 7m. 김주연은 이미 벙커 턱위로 뛰어 올라 있었다. 공이 힘차게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깃대가 꽂혀 있는 홀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리고, ‘탁’ 소리를 내곤 제 모습을 감췄다. 그 좁아 보이기만한 지름 12.5㎝의 어둠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 것이다.

거짓말 같은 버디였다. 순간 박세리(28·CJ) 박지은(26·나이키골프)에 이어 엘피지에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세번째 한국 선수를 향해 환호성이 터졌다. 세계 최고의 60회 유에스여자오픈골프대회의 우승자를 결정짓는 환상의 버디 벙커샷에 모두들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환호 소리가 김주연 때문이라는 것을 안 프레셀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패배를 예감해야 했다.

부끄러운 듯이 홀 안에 들어가 있는 공을 꺼내 손을 높이 든 김주연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세계 골프사에 길이 남을 마술같은 벙커샷은 이렇게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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