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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9 19:39 수정 : 2012.01.29 23:30

‘목상감 바둑판’ 제작 22년 외길 배정균씨

“한국 바둑이 세계에선 최강으로 손꼽히지만, 우리 고유의 바둑판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국내 유일의 ‘목상감(木象嵌) 바둑판’ 장인인 배정균(50·사진)씨. 배씨는 고려청자의 상감기법과 전통 목공예기법을 살려 수작업만으로 바둑판을 만드는 일에 22년째 몰두하고 있다. 목상감 바둑판은 먹줄이나 옻줄 대신 상감기법을 빌려 바둑줄을 만든 것이다. 가로·세로 각각 19줄씩 모두를 너비 0.7㎜, 깊이 10㎜의 홈을 판 뒤 여기에 흑단나무를 7㎜ 깊이로 박아 만든다. 이렇게 박힌 나뭇조각이 바둑판의 줄이 되는 셈. 약간 남겨둔 공간은 바둑돌을 놓을 때 울림을 위해서다. “울림통 구실을 해 바둑돌을 놓을 때 공명현상을 일으켜 일반 바둑판보다 훨씬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죠.” 일반 바둑판과 달리 검은 줄이 벗겨지지 않고 갈라짐이 적어 반영구적인 것이 장점이다.

배씨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취미로 즐겨왔던 나무 조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결국 목공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 대학 졸업 뒤 목각 원앙세트를 만들어 항공사 기념품을 만드는 회사에 남품하다 1990년 어느 날 불현듯 목상감 바둑판을 떠올렸다. “당시 조치훈 기사에게 우리 바둑용품이 일본에 뒤져 개발의 여지가 많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거다’ 생각했죠.” 그때부터 고서를 뒤지고 한국기원 등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옛 장롱에 새겨진 태극 문양을 밤새 연구했다. 바둑판 300여개를 망가뜨린 뒤에야 돌을 놓으면 종소리가 나는 목상감 바둑판을 마침내 완성했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았다. 4~5년을 말린 비자나무판에 한달의 수작업을 거쳐야 바둑판 하나가 태어난다. 무늬와 품질에 따라 바둑판 가격은 200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소시민이 사기엔 부담스러운 값이다. 한때는 이창호 9단이 배씨의 바둑판을 즐겨 사용하고, 바둑판의 우수성도 차츰 알려지면서 1년에 몇개씩 팔려 나갔다. 공들여 만든 바둑판이 주인을 찾아갈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요즘 배씨의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다. 임자를 만나지 못해 수북이 먼지만 뒤집어쓴 채 작업장 한편에 쌓여 있는 바둑판만 50여개에 이른다. 더욱이 바둑애호가들이 온라인 바둑으로 옮겨가면서 수요는 더 줄었다.

“그냥 다 집어치울까” 몇번이고 망설였지만 그래도 배씨는 아침이면 다시 사포와 끌을 든다. “이렇게 허무하게 접을 수는 없죠. 힘들지만 전통기법을 살려 명품 바둑판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042)841-7449, www.kmp.co.kr

김연기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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