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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19 21:43 수정 : 2009.05.19 21:43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박정상 9단의 흑돌백돌 /

18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14회 엘지(LG)배 세계기왕전 32강전. 한국은 15명이 출전해 6명이 승리했고, 9명이 패했다. 나도 일본의 ‘본인방’ 타이틀 보유자 하네 나오키 9단에게 패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바둑은 9시간이 지난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승부는 결국 한순간에 결정이 되곤 한다. 그래서 패한 기사에겐 아쉬움이 더욱 큰 법이다. 딱 한순간에 결정되는 승부이기에 ….

나는 대국이 시작되고 50수 무렵, 한 수에 35분의 장고를 했다. 머릿속에 3가지 길이 그려졌고, 각각의 변화에 대한 수읽기와 형세 판단을 했다. 어느 길을 가야 할지 판단이 너무 어려웠고 승부의 기로였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럴 때 최선의 선택을 위한 고뇌는 괴롭지만, 승부사의 숙명이기도 하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일본의 ‘괴물’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은 1978년 기성전 결승 7번기 제5국에서 도전자 가토 마사오 9단을 상대로 대마를 잡으러 가며 한 수에 2시간57분의 대장고를 한 바 있다. 장고 끝에 일직선으로 대마를 잡으러 간 후지사와 9단은 완벽하게 상대의 돌을 잡아냈고, 국후 2시간57분의 장고에서 그 부분의 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읽었다고 얘기했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3년 패왕전 본선에서 최철한 9단과 홍민표 6단이 붙었다. 중반 대마를 잡으러 간 철한이에 대해 민표는 40분을 장고하며 타개를 고심했다. 장고 끝에 둔 민표의 만만치 않은 응수에 철한이는 1시간을 장고하며 대응책을 찾아내 기어코 대마를 잡아버린 일이 있다.

어려운 장면에서 고심 끝에 최선의 길을 찾는 것은 승부사의 보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이번 LG배 32강전 대국에선 고뇌의 보람도 없이, 우세하던 중반에 한순간의 실수로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바둑과 함께한 지 20년이 돼 가지만 아직도 패배는 너무나도 낯설고 괴로운 일이다. 시합에서 아쉽게 패하면 며칠 동안은 시도 때도 없이 실수했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이세돌 9단도 중국의 강자 쿵제 7단에게 패한 뒤 1시간을 국후 검토에 열중하며 아쉬움을 달랬고, 중국 신인왕 스웨 4단에게 대역전패를 당한 김지석 5단은 너무도 괴로워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괴성’을 지르는 것을 옆방의 홍민표 6단에게 들키고 말았다.

한국랭킹 2위 강동윤 9단도 중국의 추쥔 8단에게 패한 뒤 내내 말이 없었다. 저녁식사 뒤 여럿이 검토를 하며 실수했던 곳을 밝혀내고, 패인을 분석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패배는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나, 패배를 거울삼아 한발 한발 정진하는 것은 참된 승부사의 모습이다.

20일 열리는 16강전에서 한국 기사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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