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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6 09:32 수정 : 2020.01.16 20:55

어머니와 영화관에 갔습니다. 개봉을 앞둔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저만 가려고 했는데, 마침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드리는 길이라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으리으리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도착하니 연예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상영 전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엔 수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처음 영화관에 갔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마 7살 여름이었을 겁니다. 그때도 어머니와 함께였습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아주 작은 영화관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매표소 창구에 고개를 숙이고 인원을 말하니 직원이 얇은 색지로 된 영화표를 건네주었습니다. 지정좌석 같은 것은 없어서 표를 들고 들어가 알아서 자리를 찾아 앉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표를 되는대로 발행하기 때문인지 영화관 안은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앉아 영화를 봐야 했습니다. 영화 시작 전 앞뒤로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일어나야 해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에어컨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저 극장 앞뒤로 커다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그래도 더워 땀이 턱밑으로 똑똑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좋았습니다. 영화 시작 전 불이 꺼지자 뭔가 비밀스러운 세상에 온 것 같았습니다. 사방에 가득한 곰팡내에 섞여든 아이들의 땀 냄새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윽고 스크린이 환해지며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하자 가슴이 두근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무슨 영화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뢰매>거나 <로보트 태권브이> 둘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에게 중요했던 것은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관에 갔다는 점이었습니다. 미처 진정되지 않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집에 돌아온 뒤 동네 꼬맹이들에게 영화관에서의 경험을 몇 번이고 이야기했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겠지요.

이후로도 한동안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을 다녔습니다. 변함없이 좁고 퀴퀴한 영화관에서 <쥬라기 공원> 속 공룡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던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더는 어머니와 영화관을 가지 않게 된 것은 중학교 무렵부터 입니다. 깔끔해진 영화관에서 삼삼오오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슬러시를 마시며 상영 시간을 기다리던 기억이 납니다.

이윽고 시사회 상영 시간이 되어 입장했습니다. 과거의 극장과는 비교가 안 되게 크고, 화려하며, 고급스러운 곳이었습니다만 예전 같은 놀라움이나 설렘은 없었습니다. 이전과 같은 것이라면 옆자리에 어머니가 앉아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다 늙은 아들이랑 영화관에 온 소감이 어떠십니까?”

어머니에게 묻자 “소감은 무슨 소감”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영화는 즐거웠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언젠가, 역시 오늘을 추억하겠지요. 그때 역시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처럼 두근거리는 기억으로 회상하지도 못할 겁니다. 다만, 곁에 앉아 피식거리며 웃던 어머니의 모습만을 내내 떠올리게 되겠지요. 그날을 위해서라도 틈틈이 어머니와 영화관을 많이 가야겠다 싶었습니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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