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11 09:47 수정 : 2020.01.11 09:47

‘접짝뼈국’(좁짝빼국). 사진 양용진 제공

여행객에게 덜 알려진 진짜 제주 국밥
몸국·제주 육개장·접짝뼈국 등
전통식으로 제대로 하는 집 알려주마

‘접짝뼈국’(좁짝빼국). 사진 양용진 제공
우리는 한식을 흔히 ‘탕반’(湯飯)문화라고 말한다. 직역하면 ‘국밥’이다. 밥상의 기본인 밥은 전국적으로 동질성을 띤다. 제주도와 이북, 강원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쌀을 주곡으로 밥을 짓는다. 그러나 ‘국’은 다양한 식재료가 어우러져서 맛을 내는 음식이라서 계절과 환경에 따라 그 풍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 메뉴를 선택할 때 “어떤 밥을 먹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탕국을 고를까 고민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축축한 날에는 따스한 탕국이 그리운 법이다.

탕의 재료로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은 ‘소’이다. 대한민국의 각 지역에는 고유의 ‘탕국’이 존재한다. 서울의 설렁탕, 경기도의 소머리국밥, 대구의 따로국밥, 전남 나주의 곰탕 등이 유명하다. 소고기 육수 외에도 지역별로 다른 재료를 이용하기도 한다. 부산·경남은 돼지국밥, 강원도는 황태탕, 한반도 전체의 해안 마을에는 잡히는 생선에 따라 다양한 매운탕도 존재한다.

하지만 제주의 탕국은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워낙 독특한 생활문화를 유지해온 도서지역이다 보니 육지와 유사한 탕국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제주의 전통 음식 가운데 진짜 ‘제주’스러운 제주만의 탕국이 존재한다. 하지만 의외로 제주 여행객 중에선 이들 음식을 제대로 경험한 이가 적다.

대표적인 제주의 탕국에는 ‘몸국’이 있다. 몸국이 변형된 스타일의 ‘제주 육개장’과 ‘제주식 갈비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접짝뼈국’(좁짝빼국)도 있다. 모두 돼지고기 육수가 기본이다. 이 탕국들은 혼례나 장례를 치를 때 온 마을이 함께 끓여 먹었던 전통 음식들이다.

제주도 척박한 밭을 경작하기 위해 소를 키우긴 했다. 그러나 소를 잡아먹을 만큼 여유롭게 사육하진 못했다. 1년에 한두번 명절 때나 제수용으로 추렴했고, 이때도 한 집당 한, 두 근 정도 나누고 산적을 만들어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렸기 때문에 국물을 내서 탕국을 만들진 않았다.

그러나 돼지는 퇴비를 생산할 목적으로 집마다 가둬 길렀는데, 재래종 흑돼지, 그 유명한 제주도 똥돼지가 그것이다. 특히나 돼지는 번식력이 좋아서 한 번에 새끼를 십여마리까지 생산하니 집안 대소사에는 늘 돼지고기가 등장했다. 돼지를 도축해서 행사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혼례를 예로 들면 돼지를 보통 2~3마리 이상을 잡아 부위별로 삶아낸다. 순대까지 삶아내면 국물은 진국이 되는데, 이 육수를 이용해 제주만의 탕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육수를 보통 사흘 정도 동네 사람들이 나눠 먹어야 했기에 무엇인가를 더 넣어서 양을 불려야 했다. 제주 바닷속 갯바위에 지천으로 뿌리 내린 모자반을 걷어다가 짠물은 빨아버리고 넣어 끓였다. 그것이 바로 몸국이다. ‘몸’은 모자반의 제주 방언이다. 얼핏 고기 육수와 해초의 궁합이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쇠고기 미역국 또한 고기와 해초의 조합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는 국이다. 다만 돼지는 지방이 많아서 느끼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이 탕국을 맛보는 장애물일 뿐이다.

몸국. 사진 양용진 제공

제주의 돼지는 누린내가 나지 않기로 유명하다. 특히 비계가 탄력이 있어서 육수에 기름기가 많이 돌지 않는다. 그래서 깔끔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몸국의 조합이 단순히 돼지고기 육수와 모자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다. 바로 내장의 사용 유무이다.

지금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회상하기를 “우린 몸국이랜 고라본 적 엇다. 돝배설국이랜 고랐주!(우리는 몸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돼지 내장국이라고 말했지!)”라고 일러준다. 돼지 내장이 들어가야 진짜 몸국이라는 증언인 것이다. 여기에 손질하다 남는 자투리 고기와 터진 순대 꼬투리, 수육으로 먹지 않는 모든 부위도 알뜰하게 국물에 투여된다. 모자반을 잔뜩 집어넣고 한껏 양을 불린 육수에서 진한 고기 향이나 맛이 날 리가 없건만 잘 끓인 몸국은 고기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노하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고기국수가 인기를 얻으면서 고기국수 전문점에서 몸국을 끼워 파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띈다. 국밥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간혹 호기심에 사 먹고는 십중팔구 실망하고 만다. 왜냐하면 고기국수용으로 뽑은 돼지 사골 육수에 조미료와 모자반 몇 가닥을 띄워주기 때문이다. 돼지를 부위별로 모두 삶아낸 육수와 사골육수가 같은 맛을 낼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모자반을 많이 넣지도 않는다. 몸국은 모자반을 씹는 맛으로 먹는 탕국이다. 특히 제주산 ‘참몸’은 억세서 씹는 질감이 다르다. 몸국에는 전통적으로 메밀가루를 풀어 넣는데, 육수가 더 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국물도 진득하다. 그래야 진짜 ‘제주 몸국’이다. 몸국이라고 메뉴판에 올리고 파는 집은 많으나 실제 옛 맛에 가깝게 재현하는 식당은 불과 서너 집에 불과하다.

‘제주 육개장’. 사진 양용진 제공

‘제주 육개장’은 돼지고기 육수에 한라산 먹고사리와 돼지 살코기를 넣은 다음 고사리가 다 흐물흐물할 때까지 푹 끓여낸 탕국이다. 흔히 ‘고사리 육개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필자는 오직 제주에만 있는 음식 스타일이기 때문에 ‘제주 육개장’으로 통일해서 불리기를 소망한다. 사실 제주 육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진 않다. 고기국수와 비슷한 100여년 정도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해조류를 수탈해 가는 바람에 몸국 대체 식품으로 제주민들이 끓여 먹은 탕국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제주 육개장을 끓여 파는 식당이 늘기는 하는데 제맛을 내는 곳은 많지 않다. 제대로 된 식당의 주인은 매년 4월께 한라산 일대를 뒤져 고사리를 장만한 후 저장했다가 육개장을 끓여낸다. 제대로 말린 한라산 먹고사리가 아니면 그 맛이 안 난다. 그래서 제주 육개장 맛집이 드문 것이다.

접짝뼈국의 재료인 접짝뼈는 사전엔 없는 제주 말인데, 돼지의 앞다리 사이에 낀 흉골 부위를 말한다. 1번에서 3번 정도의 갈비뼈가 포함되는 부위이다. 특정 부위이다 보니 많은 양을 끓일 수 없다. 이 국은 혼례식에 지친 신부를 위해 별도로 끓이는 탕국이다. 접짝뼈를 따로 삶아 맑은 육수를 내고 무를 나박나박 썰어 함께 끓인 후 고기를 넣는다. 쪽파와 소금으로 간하고 마지막에 메밀가루를 풀어넣기도 한다. 중요한 조리 포인트는 물과 접짝뼈의 비율이다. 마치 싱가포르나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인 바쿠테와 흡사한 맛이 난다.”

몸국. 사진 양용진 제공

몸국이 유명한 제주의 맛집 중에서 토박이들이 많이 가는 오래된 집은 ‘신설오름’과 ‘호근동’, 그리고 ‘자연몸국’ 정도다. 신설오름은 제주시의 동쪽인 인화동, 고마로에 자리 잡은 지 30년 넘은 식당이다. 담백한 국물 맛에 많이 들어간 메밀가루가 특징이다. 이 집 단골 술꾼들은 돔베고기(돼지고기) 수육을 몸국에 담가 먹기를 좋아한다.

호근동은 지명인 동시에 이 집의 상호다. 이 집은 순대로도 유명하다. 그 옛날 ‘돌배설국’ 맛이 묻어난다는 평이다. 제주식 순대 육수로 몸국을 말아주기에 토박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자연몸국은 동문재래시장 서쪽 초입 골목에 숨어 있는 대폿집이다. 사실 소개한 두 집에 견주면 몸국이 훌륭하다고 평하기 어렵지만, 세월이 주는 포근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집이다. 제주의 문인과 예술인들이 자주 찾는 집이다. 최근 제주 연동으로 이전한 ‘낭푼밥상’도 제주 전통식 몸국을 끓여내는 곳이다.

‘낭푼밥상’의 몸국 밥상. 사진 양용진 제공

제주 육개장은 ‘우진해장국’이 유명하다. 보통 1시간 줄 서는 건 기본이라는 후문이다. 최근에는 이도2동의 골목에서 영업 중인 ‘훈이네 고사리육개장’이 약진하고 있다. 접짝뼈국도 최근 판매하는 식당이 늘고 있지만, 특별히 잘 끓이는 식당이 많지 않다. 오래전부터 소문난 ‘화성식당’이 토박이들에게 인기 있다.

양용진(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원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