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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5 20:36 수정 : 2019.12.26 02:38

남원 광한루에서 관광객을 맞는, <춘향전>의 방자와 향단이 탈을 쓴 이들. 박미향 기자

향이네 식탁

남원 광한루에서 관광객을 맞는, <춘향전>의 방자와 향단이 탈을 쓴 이들. 박미향 기자

# 2050년. 3디(D) 프린터 아티스트 케이(K)는 일어나자마자 탈부터 고르기 시작했다. 새로 출시된 ‘스티브 잡스’ 탈은 피부와 거의 같은 두께로 매우 얇아 착용감이 좋다. 복고 바람이 불어 출시된 펭수 탈은 잡스 탈보다는 두껍지만, 트렌드세터들이 열광하는 아이템이다. 벽에 부착된 화면에서 뉴스가 나온다. “탈 안 쓴 이가 거리를 활보해 시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세상에! 탈을 안 쓰다니!” 그는 오늘 파티엔 잡스 탈을 쓰고 가 신나게 놀 생각이다.

지난주 금요일 전북 남원에 있는 광한루에 갔다가 춘향이, 이도령, 향단이, 방자 탈을 쓴 이를 보고 2050년 세상을 상상해봤습니다. 그들은 펭수처럼 커다란 탈을 뒤집어쓰고 관광객들을 맞이하더군요. 펭수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어쩌면 30년 뒤 미래엔 우리도 탈을 쓰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또 다른 자아가 되겠지요.

며칠 지나면 2020년이라는 ‘미래’에 도착합니다. ‘미래’가 코앞이면 누구나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과 이루지 못한 소망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저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가슴이 답답합니다. 하지만 금세 기분이 좋아졌지요. ‘미래’에 하기로 한 일들이 저를 또 다른 ‘박미향’에 이르게 할 테니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ESC도 지난 시간을 돌아봤습니다. 참으로 많은 일을 했더군요. 매호 커버스토리는 대박을 쳤고요,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담은 우리의 콘텐츠는 광활한 에스엔에스(SNS) 바다에서 불멸의 생명력을 얻어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2019년 마지막 호 커버 기획도 누구도 상상 못 할 정도로 창의적이랍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울고 갈 판입니다. 전삼혜 작가의 따스한 에스에프(SF) 소설과 들개이빨이 그린 놀라운 만화, 덴마크에 거주하는 푸드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가 전하는 미래 푸드 트렌드까지 어느 하나 놓칠 게 없습니다.

2019년 마지막 호에 우리가 그린 것은 2050년 미래의 삶입니다. 내년은 2020년인데, 왜 30년 뒤를 그렸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우리는 2020년을 그린 30년 전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KBS)를 유튜브에서 보고 반했습니다. 지금 우리 생활과 비슷하더군요. 지구를 흔들 예언이 뭐 별거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 애니메이션처럼 해보자고 결의했답니다. 30년 뒤 ‘미래’인 2050년에 펴보는 ESC, 재밌지 않을까요.

자랑을 너무 했군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ESC도 요즘 트렌드를 좇아 ‘플렉스’(flex) 해봤습니다. 10~30대를 중심으로 플렉스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면서 산 고급 가방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플렉스해버렸지뭐야’ 같은 해시태그를 다는 겁니다. ‘만수르 세트 대령이오~’라는 제목의 영상에 ‘만수르 김밥 세트 플렉스 어때요’라고 댓글을 달기도 하고, 거창하고 화려한 성탄 만찬식을 차리고는 ‘내가 만들었는데 맛있네. 체력을 플렉스해버렸지뭐야’라는 글을 다는 거죠. 은퇴한 이세돌 9단도 ‘플렉스 해버렸으니’ 말해 뭐합니까. 그는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SBS)에 출연해 “바둑에선 나는 천재”라는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해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끌어냈습니다.

플렉스의 사전적 의미는 ‘근육에 힘을 주다’지만, 지금 그 뜻은 ‘뽐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무례한 자기 자랑이 아니라 웃음 짓게 하는 자화자찬인 거죠. 1990년대 미국의 힙합 가수가 가사 등에 사용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흑인 래퍼의 성공이 녹아있는 이 용어엔 반전의 아우라가 스며있지요. 묘하게 지금 우리 시대 청년들의 감성을 반영하고 있답니다.

2020년엔 우리 모두 타인을 배려하는 ‘플렉스’를 위해 달려보아요. 2019년 ESC를 사랑해주신 독자님께 지구의 모든 평화가 함께하시길. 감사합니다. 꾸벅!

박미향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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