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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2 13:57 수정 : 2019.12.12 20:41

요리사 유재덕씨. 박미향 기자



30년 가까운 경력의 요리사 유재덕
요리사로는 특이한 책 출간
음식 관련 책 39권 골라 쓴 서평
“여러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지켜주는 게 책”
지난 9월엔 대한제국 황실 만찬 재현도

요리사 유재덕씨. 박미향 기자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를 칠레산 농어로 이름을 바꾸자 판매량이 10배 늘었다. 이 얘기는 <왜 맛있을까>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요리사 유재덕(52)씨는 20년 훌쩍 넘게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주방에서 일했다.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얘기가 책에 있었다. 읽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저 줄곧 식재료를 다듬고, 맛을 창조하고, 먹음직스럽게 담는 데 온힘을 쏟은 그다. 그때부터였다. 4년 전, 그는 음식 서적을 요리 스승으로 모셨다. 내친김에 자신도 몇 달 전 <독서주방>을 출간했다. 그동안 읽은 60~70권 음식 책 중 39권을 골랐다. 자신의 얘기와 고른 책을 마요네즈소스 만들 듯 잘 버무렸다. 조리하는 데 레시피 북도 아닌 요리 인문 서적이 도움이 됐을까? 주방 칼잡이가 ‘칼보다 강한 펜’을 들었다. 지난달 29일 그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정갈하다. 소담하다. 클래식하다. 그가 내민 요리 두 가지의 첫인상이다. ‘미디엄 레어’(medium rare)로 익혀 적당히 붉은 스테이크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양과 맛이었다. 그는 저서에서 ‘간이 부족하거나 덜 익은 것은 금방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넘칠 때다’라고 적었다. 먹거리에서 얻은 혜안은 그의 인생 철학에도 스며들었다. ‘세상을 망치는 것들은 모두 부족함보다는 과도한 욕망’이라고 적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독서를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 책이 없었다면 내 생각도 단단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재덕씨가 만든 스테이크. 박미향 기자

요리사의 일상은 1초도 진득하게 앉아있을 수 없는, 육체노동에 가까운 생활이다. 동트기 전에 새벽시장을 돌고, 밤 11시면 마지막 손님의 접시를 치우는 일이 반복된다. 주말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더 바쁘다. 특별한 날 제일 먼저 찾는 게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노곤하고 물 먹은 솜뭉치 같은 몸 상태에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여건에서도 그는 책을 들었다.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를 읽어보라고 추천받았는데, 정말 재밌게 읽었다. 세상에 이런 재밌는 책이 있구나, 요리도 놀이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엔 주로 빨리 잘 만드는 조리법을 담은 기술서만 봤다. 신세계였다.”

전분을 몇 분 풀어야 맛있는 콘지(광둥식 죽)가 되는지만 살폈던 그가 콘지의 탄생 배경에 거대한 중국 역사가 스며있다는 걸 깨닫는 일이 많아졌다.

그가 책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36년 만에 모인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김성신 출판평론가와의 대화였다.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를 읽어보라고 권한 이가 김 평론가다. “중년 남자들이 모이면 ‘몇 평 사느냐?’ ‘직급은?’ ‘아이들은 대학 졸업했느냐?’ 같은 얘기나 나눈다. 그런데 그 친구(김성신)와는 자연스럽게 요리와 책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됐다.” 그날로 김 평론가는 유씨의 ‘독서 스승’이 됐다.

유재덕씨가 만든 샐러드. 박미향 기자

책을 읽는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본분을 더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매우 중요하다. 음식에는 요리사의 생각이 당연히 스며든다. 싼 재료를 사서 수익을 내고 싶은 유혹은 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외식업이 힘든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요리사가 단단한 자기 철학이 있으면 그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철학은 오로지 책에서만 얻을 수 있다.”

처음엔 김 평론가의 추천서 위주로 읽었다고 한다. 한 권씩 읽은 책이 쌓여갈 때마다 서서히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겨났다. 서점에 가 둘러보고, 인터넷도 뒤졌다. 그러다가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요리하는 것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같다는 것”을 말이다. 요리사가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살피면서 머릿속에서 맛을 구현하는 일은 서점에서 책을 훑어보면서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본래 조리학교 출신이 아니다. 대학 친구들은 오뚜기 등 식품회사 메뉴개발팀 등에서 일한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그가 요리사가 된 데는 ‘반하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성격’이 한몫했다. “구매팀에서 일하는데, 어느 날 주방을 지나게 됐다. 구운 케이크의 고소한 향이 났다. 호기심 생겨 살짝 들여다봤더니 외국인 셰프가 케이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완전히 반했다.” 창고 정리하고 수기로 구매 목록 정리하는 일보다 맛을 창조하는 그 일이 더 좋아 보였다. 그 길로 인사과에 찾아갔다. 요리하고 싶다고, 주방팀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조르고 졸랐다.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자기 맘 같겠는가! 일언지하 거절당했지만, 그의 구애는 계속됐다. 결국 ‘6개월 안에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면’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5개월 만에 자격증을 딴 그는 드디어 20대 후반에 포부도 당당하게 주방에 입성했다. 하지만 고생길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저씨는 왜 맨날 벽 보고 서 있어요?” 당시 그가 자주 듣던 말이다. 그때 총주방장은 독일계 이탈리아인이었다. 점심때 주방은 엄청난 속도로 주문서가 날아온다. 1분에 거의 20~30개 주문서가 한겨울 눈송이처럼 막내 요리사에게 떨어진다. 빨리 정확히 읽고 선배 요리사에게 전달해야 한다. 각종 심부름도 그가 해야 일이다. “총주방장님이 자꾸 ‘실팬’을 가져오라고 했다. ‘실팬’이 뭐지?’ ‘실패를 말하는 건가’ 했다. 결국 내가 제대로 심부름을 못 하니 일이 꼬이는 날이 많아졌다. 총주방장은 나를 벽에 세웠다. 마치 혼나는 유치원생처럼 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실팬은 ‘시트팬’(sheet pan·주방에서 식기 등을 담는 넓은 쇠 쟁반)을 말하는 거였다. 조리를 공부한 이라면 다 아는 용어였다.”

이를 악물고 주문서를 외웠다. ‘곧 떠날 사람’이라는 동료들의 편견도 깼다. ‘스시조’의 일식 장인과 “요리 스승으로 모신” 선배 조형학 요리사를 거의 매일 찾아가 모르는 것을 물었다. 버틴 세월은 좋은 결과로 보답했다. 지금 그는 호텔 주방의 총책임자다.

유재덕씨가 개발한 수박빙수. 사진 신세게조선호텔 제공

“최근 호텔의 여러 가지 이벤트 중에 보람 있는 것을 했다.” 대한제국 황실의 외국 사절단 접대 만찬을 재현한 것이다. 당시 접대 담당을 맡았던 엠마 크뢰벨의 저서 <내가 어떻게 조선의 궁정에 들어가게 되었는가>를 참고하고 연구해 만찬을 재현했다. 지난 9월께 문화재청이 주관한 프로젝트에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조리팀에 합류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고서를 읽고 그때를 상상하며 음식을 만드는 가슴 벅찬 과정이었다.”

지난 9월께 재현한 대한제국 외국사절단 접대 만찬. 박미향 기자

1905년 9월20일 고종의 초청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 당시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1884~1980)가 관료 18명을 이끌고 대한제국을 방문했다. 총 17종의 한식이 차려졌다고 한다. 당시 식탁에 오른 열구자탕, 수어증, 편육, 전유어, 전복초, 화양적, 약식 등은 유씨의 진두지휘 하에 호텔 조리팀이 완성했다. <진연의궤>, <조리요리제법>, <시의전서>, <규합총서>, <부인필지> 등의 우리 요리 고서적도 참고했다고 말한다. 2년 전 대한제국 황실의 서양식 연회 음식 재현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 시대의 계량 기준이 잘 알려지지 않아 객관적인 기준을 잡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그는 “기록과 책의 소중함을 또다시 알았다”고 말한다.

그는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라고 말한다. “요리사 몸이 건강해야 간도 잘 맞추고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긴다.” 비단 몸만이 아니다. 정신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 건강을 챙기는 데 책만한 게 없다. “모든 답은 책에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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