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12 13:52 수정 : 2019.12.12 20:44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크리스마스 만찬 준비는 스트레스
일본은 프라이드치킨 주문한다는데
왜 칠면조가 성탄절 만찬 단골인지 의문
조리하는 데 드는 노고 탈출하면 어떨까
제철인 송로버섯 활용하면 좋을 듯
간편하게 만든 오믈렛 위에 뿌리기만

유럽과 미국,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지역에서 크리스마스 만찬이란 아마도 한 해의 가장 중요한 만남의 자리일 거다. 그 한 끼 식사(크리스마스이브에 저녁 식사를 하든 25일에 한 끼를 함께 먹든 그건 당신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터)에 너무나 많은 돈과 신경을 써야 하지만, 결국 그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 실망으로 점철된 하루일 뿐이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크리스마스에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사다 먹는다는 일본의 ‘전통’을 진심 부러워하게 됐다. 이 전통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다는데, 어쩌다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포장용 버킷 한가득 담긴 바삭바삭한 치킨과 감자튀김은 정녕 심플함의 끝판왕이다. 신성모독이라면 신성모독일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깔끔하고 심플한 것, 그 자체라는 것만은 인정!

내가 서양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만찬에 불만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노력 대비 성과가 기운 빠질 정도로 형편없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만찬 준비는 엄청난 프로젝트다. 긴 준비 과정과 수고로움을 필요로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렇게 준비하고 근심하며 해오던 이 일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신문에 실리는 특집 기사들은 크리스마스 만찬 계획과 준비를 거의 무슨 융프라우의 아이거봉 정복을 준비하는 수준으로 느끼게 하곤 한다. 그런 기사를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생각하게 되는 거다. 대체 뭐하려고 이런 감정 노동과 수고를? 결국은 평범한 여느 일요일처럼 커다란 새 한 마리를 오븐에 집어넣고 채소 껍질이나 벗기고 있게 될 것을.

그리고 하고많은 지상의 새 중에 왜 우리는 하필이면 번번이 칠면조를 선택하는 걸까? 1년 365일의 평범한 나날 중에 칠면조를 먹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적어도 한 마리를 통째로 요리하는 경우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한 해의 가장 중요한 때를 기념하는 식사에 꼭 칠면조를 고집하는 걸까?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고, 가장 신경도 많이 쓰이는 중요한 자리에? 그리고 대체 왜 그 커다란 걸 통째로 구워서 내놓는 걸까? 정녕 칠면조를 달리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은 세상에 없는 걸까? 아니, 진짜로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비행기에 가지고 타려고 했다가는 항공사 직원이 분명 너무 커서 기내 반입 금지라고, 수하물로 부치라고 할 정도의 크기이지 않는가.

우리는 이제 서양의 크리스마스든 동양의 민족 대명절이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날에는 뭔가 좀 참신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하자. 휴일에 제일 하기 싫은 건 뭐다? 스트레스랑 노역. 휴일엔 스트레스도 사절이고 힘든 일은 더더욱 사절이지 않은가. 물론 만찬 자체를 아예 패스하고 일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치킨이나 사다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거나 특별히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뼛속까지 시려 오는 한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떨쳐버리기 위해 돈도 좀 펑펑 쓰고 기분을 내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한 해 중 우리를 가장 위축시키는 계절에 터닝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훈훈하고 기분 좋은 일 아닐까? 어쨌거나 크리스마스의 유래를 찾아보면 처음에는 이교도의 겨울 축제로 시작된 기념일이라고 하던데, 그런 면으로 봐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 만찬이라는 전통을 아예 폐지해버리자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내가 12월25일에 치킨만 딸랑 주문하고 말면 우리 식구들부터 당장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러나 한 해 걸러 한 번만이라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내가 감히 크리스마스 만찬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바는 바로 이거다. 칠면조와 함께 해먹곤 하던 모든 요리를 다른 거로 싹 대체하자는 건 아니지만, 한 해 걸러 한 번 정도는 간단하면서도 무언가 기대하고 기다려지는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해 보는 거다.

나는 트뤼프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초콜릿 트뤼프 말고 고급 식자재인 송로버섯 트뤼프 말이다. (물론 초콜릿 트뤼프도 없어서 못 먹지 엄청 좋아한다.) 그리고 12월은 반박의 여지 없이 송로버섯의 풍미가 절정에 달하는 시즌이다. 그러니 현금을 유기농 동물 복지 방사 칠면조(아무리 비싼 칠면조라도 결국은 아스텍 미라를 씹는 식감일 테니)에 쏟아붓지 말고 그 대신 믿을 만한 공급업자로부터 까만색 송로버섯 몇 개를 사는 건 어떨까? 크리스마스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모두가 칠면조 요리를 시작할 타이밍을 고민하며 육질이 조금이라도 덜 마르게 하기 위해 엄청 큰 양동이에 넣어야 하나 어째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당신이 해야 하는 준비라곤 그저 송로버섯을 밀폐된 지퍼백에 넣어두고 손님 한 사람당 계란을 두 개씩만 마련해두는 것이다. 어떤가? 준비 과정부터 이미 어깨가 한결 가볍지 않은가. 그러다가 마침내 그날이 도래하면 계란으로는 오믈렛을 뚝딱 만들고 손님상에 내가기 직전에 송로버섯을 강판에 살살 갈아 그 위에 올리면 끝!

그 외에 축제 기분을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샴페인을 무제한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여러 병 쟁여두고,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싸고 맛있는 고급 초콜릿도 좀 준비해두고, 누구든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감자 칩을 놓아두는 거다. 그렇게만 해두면 그 자리의 주최자인 당신도 편안하게 선물이나 뜯어보고, 손님들과 크리스마스 크래커 당기기 게임(영국 크리스마스의 전통으로 캔디 모양으로 포장한 선물을 양쪽에서 한 사람씩 잡아당겨서 포장의 큰 쪽이 본인에게 딸려온 사람이 포장 안의 알맹이까지 갖는 놀이)을 하고, 크리스마스 때면 티브이(TV)에서 단골로 방송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를 보다가 스르르 잠들만큼 여유롭게 하루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 장담한다. 그리고 치킨 배달 다음으로 일거리가 없을 거라는 건 안 비밀!

글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일리스트 이민혜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