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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1 20:48 수정 : 2019.12.13 14:29

대중목욕탕 욕조 수도꼭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커버스토리 ㅣ 세신 문화
한때 김장철 배추 절이는 통 역할이었던 욕조
아파트에나 있던 공간…1인가구에겐 언감생심
한국의 목욕탕은 여러 버전으로 변신 중
대한민국 대중목욕탕의 문화사

대중목욕탕 욕조 수도꼭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엠비시>(MBC) 예능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를 보던 중이었다. 월세 100만원을 예산으로 잡은 1인 가구 의뢰인을 위해 연예인 세 팀이 발품을 팔았다. 근사한 복층, 넓은 조리 공간, 여유 있는 수납장. 각기 다른 장점을 지닌 여러 집의 공통적인 단점은 욕실이었다. 매물 중 가장 옹색한 욕실은 양변기 옆에 있는 샤워기를 끌어다 세면대 앞에서 간신히 씻어야 하는 구조였다. 샤워 호스 길이도 짧아 변기에 앉아서 씻어야 할 판이다. 의뢰인의 표정이 굳었다. 나 또한 좁은 욕실이 불만인 1인 가구 생활자다. 월세나 보증금을 올리면 주방과 방이 분리된 문과 베란다가 있는 집에 거주할 수 있다. 하지만 욕조는 어렵다.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 생활자에게 욕조란 ‘가질 수 없는 너’다.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목욕탕은 손님을 기다린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제일목욕탕.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욕조는 대개 아파트 욕실에 설치되어 있다. 욕조가 있다면, 더운물을 받아 몸을 푹 담그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을 텐데! 찰랑찰랑 차오르는 욕망이 욕조를 낭만화한다. 하지만 내 기억의 끝에 욕조란 ‘배추’에 닿아 있다. 11월에서 12월 사이. 욕조의 주인은 배추였다. 김장용 절인 배추 말이다. 지금의 위생 관념으론 납득이 어렵다. 어째서 변기가 있는 욕실에서 식재료를 다뤘던 걸까?

과거 주택에 욕실이 따로 없던 시절에는 부엌을 목욕 공간으로 이용했다. 부엌에는 간이 물받이 통이 있었다. 초창기 아파트 거주자들은 부엌에서 목욕과 세탁을 함께 했다. 주거공간에 욕실이 들어오면서 세면기보다 욕조가 먼저 자리를 잡은 것도 이 같은 생활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욕조는 물을 받아두는 용도였고, 목욕이나 세안은 욕조의 물을 퍼서 끼얹거나 대아에 담아 욕실 바닥에서 하는 식이었다. 1980년대 중반 아파트에 거주하는 도시 중산층의 욕실 사용 행태를 연구한 논문을 보면, 당시 욕실은 물을 사용하는 모든 행위를 수용하는 공간이었다. 욕조는 김장철 배추를 절이는 데도 유용한 시설인 셈이었다. 다용도 욕실에서 목욕의 여유와 휴식을 찾기는 어려웠을 터. 대중목욕탕은 오로지 목욕 용도로 손님을 기다렸다.

대중목욕탕 원통형 간판.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대중목욕탕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자료를 인용한 기사들을 통해 우리나라 목욕탕 숫자의 변화를 알아보았다. 1960년께 전국 770개였던 목욕탕은 1980년에 이르러 3천352개로 늘어났다. 4천개를 넘어선 1981년엔 지역에 따라 300~500m 사이에는 신규 허가를 불허한 거리제한이 풀렸다. 이때부터 주택가 곳곳에 목욕탕이 들어섰다. 1989년 전국 6천500여개였던 대중목욕탕은 1999년에 이르러 9천200여개까지 증가했다. 10년 만에 거의 3천여개가 늘어난 것이다. 이용, 미용, 수면실, 한증막 등의 시설이 더해진 대중목욕탕은 휴게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기세가 꺾인 때는 200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유가 인상 여파와 대형 찜질방의 인기에 밀린 탓인지 7천8백여곳으로 숫자가 크게 줄었다. 올해 12월 초 기준, 행정안전부 로컬데이터 업종조회에서 ‘목욕장업’으로 영업 중인 업소는 전국에 6천761개다. 이중 목욕 시설을 갖춘 피트니스센터나 리조트 시설 등을 제외한 일반 목욕탕과 사우나는 대략 5천200여개다.

여유롭게 씻을 시간은 줄고, 다른 생활공간에 밀려 욕실은 점점 좁아진다. 그래도 샤워로 해결되지 않는 갈망이 있다. 목까지 물에 푹 담그고 싶다! 묵은 때를 실컷 벗겨 내고 2020년을 맞을 때다.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힘차게 탕 문을 여니 벌거벗은 몸들의 생기가 훅 끼쳤다. 욕조는 가질 수 없어도, 여기에 뜨끈한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탕이 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참고 자료 <집: 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아파트의 욕실공간과 입욕방식과의 관계>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5권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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