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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4 20:45 수정 : 2019.12.05 02:41

김영씨가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자신이 완성한 컬러링 북을 들고 웃고 있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커버스토리 한겨울 방구석 취미

유방암 판정 후 알게 된 컬러링
치료하면서 직장도 그만두게 돼
색칠하다 보면 고통도 사라져
이젠 새로운 꿈도 키우는 중

김영씨가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자신이 완성한 컬러링 북을 들고 웃고 있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손으로 하는 취미에도 ‘레벨’이 있다. 강의로 배워야 하는 게 있는가 하면, 독학으로 충분한 것도 많다. 김영(44·송파구 문정동)씨가 유방암 판정 이후 해온 ‘컬러링’은 후자다. 인쇄된 그림에 색깔을 입히는 ‘컬러링’은 강의를 들을 필요도, 공방에 갈 필요도 없다. “비용이 많이 드는 편도 아니어서 집에서 짬 날 때마다 했어요.”

김씨가 유방암 2기 말 진단은 받은 건 2017년 9월께였다. 수술은 그해 10월 말에 했고, 2018년 7월 중순까지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는 항암 치료 내내 컬러링을 했다. “아프니까 책도 잘 안 읽히더라고요.” 활자가 제대로 입력되지도 않았고,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독’이었다. “현실이 중할수록 단순한 걸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잡념이 없어지니까요.”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카페에서 만난 그가 말했다.

김영씨가 완성한 컬러링 북 일부.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가벼운 수술은 아니었다. 암이 림프샘까지 전이돼 겨드랑이를 절개한 후 림프샘에서 종양을 긁어내야 했다. 다행히 잘 끝났고, 예후(치료 경과)도 좋았다. 남은 건 일상을 ‘관리’하는 일이다. 식습관 조심하기, 운동 매일 하기, 긍정적인 생각만 하기 등은 그가 늘 실천하는 것들이다. 재발과 전이가 많은 유방암은 ‘완치’ 개념이 거의 없다. 앞으로 3년은 재발과 전이 여부를 관찰해야 하고, 수술 후 10년까지는 호르몬 약도 먹어야 한다. “그래도 (병원에 있을 때보다) 훨씬 여유롭고 자유로워져서 좋아요.”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그는 암 발병 후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워낙 낙천적인 편이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이건 암인데요?” 했을 때도 ‘되게 담담했다’고 한다. 다만, ‘먹고 살 일’은 걱정이었다. 원래 직업은 수학 강사였다. 2002년부터 15년 넘게 학원에서 중학교 수학을 가르쳤다. “치료 기간에는 커리어가 끊길 수밖에 없는데, 40대 중반의 강사는 중등강사로 잘 안 쓰거든요.” 치료가 끝나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김영씨의 작업 도구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그때 친동생이 컬러링을 제안했다. 프리랜서 광고디자이너인 동생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미리 걱정하느냐”며 “컬러링이 고민과 걱정을 덜어줄 것”이라고 했다. 병시중을 들어준 이도 친동생이었다. “1살 터울 여동생인데, 거의 엄마처럼 돌봐줬어요.” 동생 덕분에 그는 컬러링‘만’ 하면서 회복에 전념할 수 있었다.

자매는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둘도 없이 막역한 사이다. 부모에게서 독립한 15년 전부터 함께 살았으니 그 우애가 오죽할까. “영화 보러 다니고, 밥 먹으러 다니고, 쇼핑 다니고…. 너무 둘만 붙어 다니니 아무것도(연애나 결혼) 못한다고 엄마가 못마땅해하시기도 했어요(웃음).” 숱한 ‘현실 자매’와 마찬가지로 다툴 때도 많았지만,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동생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김영씨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그토록 아끼고 고마운 동생임에도, 컬러링에 순위가 ‘밀린’ 적이 있다. 항암 치료가 한창일 때였다. 장난치던 동생이 컬러링 북에 물을 쏟고 말았다. “엉엉 울어버렸지 뭐예요. 지금 ‘내 것’은 이거밖에 없는데 너무 소홀히 여기는 거 아니냐며….(웃음)” 그렇게 정성과 애정을 쏟아 완성한 컬러링 북이 어느새 3권. 권당 80쪽짜리다. 책을 펼쳐 넘기다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와, 이걸 직접 칠한 거라고? 모르고 보면 일반그림책으로 보일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타인의 작품을 검색했다. “다양한 작품을 비교하면서 ‘이런 표현은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다 보니 조금씩 늘더라고요.” 색 조합도 바꿔보고, 이런저런 도구도 써보고, 배경에 무늬도 넣어봤다. 좀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 해내고 난 뒤의 성취감. 그런 것들이 투병 생활을 견디게 해주었다. “길고 지루한 투병 생활에서 컬러링은 제일 좋은 친구였어요.” 실제로 유방암 환우 카페나 커뮤니티에는 김씨 외에도 컬러링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김영씨. 사진 경지은(스튜디오 어댑터)

컬러링을 하지 않던 시절의 고민은 어찌 됐을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 중이에요.” 호르몬 약을 먹자 갱년기 증세가 왔고, 시도 때도 없이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바깥생활을 하면 위축되는 순간도 생겼다. “저처럼 건강을 잃고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그가 택한 건 학점은행제로, 4년제 수업을 10개월 만에 끝내야 한다. 상당히 빡빡한 과정이다. 중간고사가 다음 주라 연말 계획이라고는 ‘열공’뿐.

“치료할 땐 컬러링 북을 끼고 살았는데, 요즘엔 공부한다는 이유로 이 ‘친구’(컬러링)와 자주 못 만나는 게 아쉬워요. 그래도 자격증은 얼른 따는 게 좋겠죠? 활기차게 일하면서 다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요.” 내년 5월, 사계절 중 가장 다채롭고 활력이 넘치는 시기. 아마도 그의 공부가 끝나 있을 시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때조차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니, 모쪼록 ‘열공’하여 찬란한 봄 맞으시기를. 그 ‘친구’도 기뻐할 겁니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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