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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4 09:34 수정 : 2019.11.14 20:06

클립아트코리아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1 여성 편력과 남성 우월에 찌든 그
문제인 걸 아는데도 아직 그를 사랑해
A1 괴로워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강박적 반복’
자신을 직면하는 과정 피하지 말길

Q2 자존감 떨어지는 와중에 삐걱대는 연애
시간 갖자고 했더니 상처 받았다는 연인
A2 마음 보여주고 그의 결정 따를 수밖에
불안한 채로 타인과 행복할 수 있을까?

클립아트코리아

Q1 저는 28살 여성입니다. 지난해 8월 여행지의 숙소에서 일하는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혼자 여행 온 저를 따뜻하게 챙겨주는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치면 약을 주고, 심심해하면 웃겨주고, 술을 마시면 숙소에 바래다줬습니다. 그렇게 가까워졌지만, 저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이내 저는 또다시 그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다른 여행자를 만나 친구가 됐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도 저와 같은 경험을 했더군요. 그와 함께 별을 보러 갔고, 한 손을 잡고 운전을 했고, 저와 갔던 곳에서 밥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곧 그가 여성 여행자와 데이트를 하고 잠을 자고, 심지어 그 여행자끼리 마주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문제는 그를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바보처럼 직장과 거처를 그가 일하는 곳 근처로 옮겼어요. 그는 저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어딘가 놀러 가고 싶을 때 제가 운전하고 그는 조수석에 누워 잠을 잤고, 함께 잘 상대가 필요할 때 그는 저를 자신의 숙소에 재웠어요. 저는 그의 기사였고, 이불이었고, 어쩔 땐 지갑이었어요. 저는 그가 수많은 여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그를 이해하는 건 나뿐이야’, ‘그는 나와 다를 뿐이야’,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나는 기뻐’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를 그만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의 언행에서 제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여성 편력과 남성 우월이 느껴집니다. 그와 지내면서 편안했던 추억이 떠올라 그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바닥을 다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그와 헤어지고 싶은 여자

A1 우리는 아주 자주, 이것이 나쁜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선택을 감행합니다. 다음 날 힘들 것을 알면서도 과음을 하고, 몸에 나쁜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흡연하는 것처럼 말이죠. 머리로는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감각적으로는 그것이 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일 겁니다. 잠깐의 일탈, 해방감, 다 내려놓는 느낌, 이완하는 느낌, 그 감각적인 것 때문에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쉽사리 끊지 못하죠.

당신의 연애가 바로 이와 같지 않나요. 정말 나쁜 사람이고, 곁에 두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를 찾으니까요. 당신의 이성은 이 관계를 그만두라고 하지만, 당신의 감각은 마치 술과 담배에 중독된 사람처럼 이 관계가 주는 묘한 쾌감과 안락감을 놓지 않으려고 하네요.

당신이 가게 될 길은 사실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길은 계속 그 사람과 만나면서 쾌감과 안락감을 즐기는 거예요. 계속 상처받으시면서, 자존감 상해가면서,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 사람 곁에 머무세요. 온전히 사랑받지 못해도, ‘나는 이 정도면 만족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그 사람과 사귀세요. 아주 긴 시간이 지났을 때, 어느 날 별안간 ‘아,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라는 느낌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압도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까지 그냥 만나면 됩니다. 인생은 많이 낭비되고, 자존감은 더 낮아져 있겠지만,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건지 모르죠.

두 번째 길은, 진심으로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하고 괴로워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동등한 존재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관계를 계속하는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라는 것입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만두지 못하는 것, 괴로운데도 계속 그 길을 가는 것을 ‘강박적 반복’이라 부릅니다. 수많은 여자 중 하나로 취급받고, 제대로 존중을 받지 못하는데도 그 관계를 지속하는 그 마음속 깊은 곳엔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은, 이런 관계에서 익숙함과 편안함, 괴로움과 모멸감을 함께 느껴왔을 수도 있지요. 자신을 진심으로 직면하는 과정 없이는, 이 사람과 헤어진다고 해도 다음에 또 이런 관계를 반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심리 상담을 받으세요. 귀한 인생이 아닙니까? 진심으로 존중받는, 좋은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인생에 미안할 일을 인제 그만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요?

Q2 직장생활 4년하고 이직 준비 중인 백수인데요, 이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30살을 앞둔 지금 조급하고 하루하루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5년째 만나는 남자친구와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일이 바빠 연락도 잘 안 되고 만나기도 어려워요. 속상한 저는 남자친구에게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서로 그러자고 한 뒤 일주일 뒤 제 생각을 정리해 그와 잘 만나고 싶다는 진심을 표현했지만, 남자친구는 시간을 더 달라더군요. 그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 보니 ‘정말 끝을 생각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잠도 못 잤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다 결국 전화를 했는데, 남자친구는 제 전화를 모두 안 받고, ‘연락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상처가 됐지만, 5년이란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야 하나 싶고, 전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긴 메시지를 보냈어요. 하지만 답이 없었고, 저는 전화를 계속했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메시지를 다시 보냈어요. 그는 ‘나도 모르겠다. 일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 기다려 달라. 미안하고, 고맙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다 남자친구의 친구가 이야기를 전해주길, 남자친구는 회사에서 막중한 프로젝트를 맡아 열심히 해보고 싶은데, 제가 ‘만나자, 연락이 왜 안 되냐’ 하면서 이해를 못 해주고 시간을 갖자는 말만 한다면서, 그게 큰 상처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저도 그런 상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제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건 몰랐고,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기다려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네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은 여자

A2 서른, 여러 가지로 갈림길에 서는 나이이지요. 20대가 지나가 버렸다는 서글픔을 느낄 즈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불안함에 젖어드는 나이,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도달했다는 생각 때문에 더 조급해지는 나이잖아요. ‘이 나이에는 이걸 해야지’라는 무언의 압박이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공기처럼 자리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그저 단순한 숫자일 수 없습니다. 때로 조바심을 폭발시키는 근원이 되고, 때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이유가 되지요. 서른이라는 나이를 관통할 때는 저도 그 이유를 몰라 힘들었는데, 그 나이의 불안함이라는 건 그 나이를 훌쩍 지나야 비로소 반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중요하고 불안정한 서른이라는 나이에, ‘일하는 나’를 잘 유지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적어도 ‘일하는 나’는 불안함이 적어지니까요. 하필이면 이 시기에 일을 쉬게 되면서, 당신은 자신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크게 느꼈던 것이죠. 함께 바빴다면 괜찮았을 텐데, 상대적으로 그가 바빠지면서 당신은 더 마음이 급해졌을 겁니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도 괴로웠겠죠. 당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나에게 좀 더 애정과 관심을 쏟아줘’였겠지만, 그 말 대신 ‘시간을 갖자’는 말을 한 것이고요.

이 세상의 연인은 둘 중 하나로 나눌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한 사람이 별안간 ‘시간을 갖자’고 했을 때 결국 헤어지게 되는 사이, 혹은 그 말을 계기로 더 단단해지고 친밀해지는 사이로요. 한 사람이 자신의 불안을 감당하지 못해 그런 식으로 충동적인 말을 했을 때, 다른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굳건하다면 그사이는 그런 식으로 종료되지 않습니다. 혹여 상처가 되었더라도 관계의 회복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겠죠. 소리는 손바닥을 마주쳐야 나는 법입니다. 당신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먼저 한 것은 애석하지만, 그도 당신을 딱 그만큼 생각하고 있을 뿐이죠. 한때는 미래를 생각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그의 결정을 따르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먼저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지요. 하지만 걱정입니다. ‘더 기다려 보겠다’는 당신의 다짐에는 여전히 조급함이 느껴져요. 다시 만나게 되면, 당신은 그가 또 연락이 늦고 만나기가 힘들어도 평온할 수 있나요? 진짜 중요한 건 5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의 문제가 아닐까요? 묻고 싶습니다. 내 인생이 불안한 채로, 타인과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까?

곽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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