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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7 09:17 수정 : 2019.11.07 20:46

리스본행 야간열차. 박미향 기자

헐~

리스본행 야간열차. 박미향 기자

“왜 문 열쇠가 없죠?” “글쎄요. 찾아볼게요.” 짙은 밤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포르투갈 역무원이 짧게 말하고 사라졌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얼마나 꿈에 그린 열차란 말인가. 지난 9월26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차마르틴역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포르투갈 기차 여행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늦은 밤 9시 넘어 올라탄 1인실 침대칸. 내 방만 열쇠가 없었다. 샤워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 하는데. 그가 돌아왔다. “열쇠가 없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어쩌란 말인가! 만약 누군가 꽂혀 있던 열쇠를 미리 가져간 거라면? 아무리 문을 꽉 잠가도 그 열쇠를 가져간 흉악한 놈이 열어 달려든다면? 모두가 잠든 야간열차가 아닌가. 기차조차 숨죽이면 달려가는데, 봉변이라도 당한다면?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따질 엄두가 안 났다.

밤새 마음을 졸였다. 샤워할 때도 물소리보다 밖에서 슬쩍슬쩍 들리는 소음에 예민해졌다. 열차에서 벌어진 미궁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가 떠올랐다. 나는 약자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가녀린 주인공이었다. 다크서클이 축축 내려앉았다. 포수의 총을 맞고 피 흘린 채 겨우 도망친 부엉이 꼴이 돼 갔다.

똑딱똑딱…. 새벽 3시. 기차가 잠시 정차했다. 조심스럽게 복도에 나갔다. 직사각형의 커다란 창이 보였다. 옆방 사람들은 쌔근쌔근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창에 얼굴을 갖다 대고 밖을 봤다. 심약한 정거장의 불빛이 조금씩 번져 들어왔다.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그는 건장했다. 격투기 선수 같았다. 반가웠다. 뭔가 든든한 우군을 만난 것 같았다. 그에게 웃었다. 손도 흔들었다. 배시시 더 친근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가 사색이 되더니 외마디를 지른다. “!@#$#$%$%” 뭔 말인지 모르는 소리였다. 내 몰골을 살폈다. 하얀 소복 같은 잠옷을 입은 나. 치렁치렁 늘어진 까만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그가 본 것은 새벽녘 정차한 기차 안에서 히히히 웃으며 손 흔드는 낯선 구조(동양 여자)의 괴생물체였던 것이다. 피해자가 될까 두려웠던 내가 가해자가 된 것이다. 이런 젠장!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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