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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6 20:43 수정 : 2019.11.07 02:43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출장 중에 대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번화가에 숙소를 잡고 산책을 나와 보니 인근의 작은 공원에서 국화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대개의 축제가 그렇듯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공원 입구에 큼지막하게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듬성듬성 국화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걷던 중 야외 족욕장이 있어서 양말을 벗고 앉아 족욕을 했습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더니 그제야 공원 주변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밤하늘 아래 형형색색의 안마시술소 간판들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일이란 자신의 삶을 돈과 바꾸는 행위입니다. 작가는 책상에 앉아 궁리 끝에 글을 써내는 것으로 돈을 벌고, 권투 선수는 링에 올라 시합을 하는 것으로 돈을 법니다. 저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인생을 바쳐 재화와 맞바꿉니다. 그렇게 얻은 돈으로 밥을 사 먹고 잠을 잘 수 있으니 살아가기 위해 삶을 바치는 모습이라서 숭고하면서도 애잔해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일이란 모두에게 동등한 대가를 지불하지는 않습니다. 꼭두새벽에 출근해 종일 일 해도 평생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물려받은 재산을 남에게 빌려주는 것만으로 평생을 굶주릴 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일터에서 같은 업무를 같은 시간 일했음에도 원청이냐 하청이냐에 따라 버는 돈이 다르기도 하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목숨을 걸거나 다치는 걸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지 열심히 일한다고 풍족한 삶을 살기는 힘든 노릇입니다. 더 나은 일을 하려는 자격을 얻고 기회를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경쟁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 와중에 성공신화를 이룬 사람들은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나 거짓말이거나 과장된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나 격차는 존재하고, 에스엔에스(SNS)로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기 쉬운 요즘 그 격차는 점점 더 선명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간극이 더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며 사는 것뿐이겠지요.

공원을 둘러싸고 줄지어 있는 안마시술소를 보며 새삼 그 격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먹고사는 데 쓰고도 돈이 남아 저곳을 방문하겠지요. 또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저곳에 근무할 것입니다. 불법이냐 합법이냐, 윤리적이냐 비윤리적이냐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나날이 깊어지는 것만 같은 격차의 골짜기가 어느 날 기적처럼 좁혀지기 전까진 사라지기 힘든 풍경이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을 뿐입니다.

며칠 전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본인의 생일에 산재로 사망했습니다. 생활고를 겪어오던 네 모녀가 ‘하늘나라로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습니다. 겨울철 강제철거에 맞서던 이주민이 한강에 투신해 사망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어렵사리 탈북해 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에 도착한 새터민 모자가 굶어 죽었습니다. 매일 평균 6명이 일을 하다 죽어가고, 수많은 사람이 빈곤의 구렁텅이에 허덕이고 있으나 이 역시 오래도록 변치 않고 이어질 상황일 테니 매번 슬퍼해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못내 바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람이 돈을 위해 자신의 존엄과 생명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하여 머지않은 미래에 오늘날의 일들이 야만스런 과거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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