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6 20:43
수정 : 2019.11.07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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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함박스텍의 함박스테이크.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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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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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함박스텍의 함박스테이크. 사진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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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와 닿지 않는 행사이자 미리 하는 연말 모임이었다. 어쨌든 연말 모임인지라 취한 이도, 취하고 싶은 이도 많았다. 덕분에 같이 놀다 우연히 ‘건진’ 식당이었다. “마지막은 그래도 정상인처럼 배만 채우고 가자”고 우리 모두 다짐한 터였다. 많이 먹고 마셨는데도 뭔가 허전했다. 늦게까지 제대로 된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기사식당’이라는 훌륭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곳이 한국 말고 또 있을까. 기사님들만큼이나 가성비 따지는 미식가가 없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빨래골’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기사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해장국부터 육개장, 다양한 분식까지 선택의 폭은 넓지만, 그래도 역시 기사식당계의 클래식은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다. 경양식도 분식도 아닌 이 애매한 식사야말로 기사식당의 디엔에이(DNA)이고 자부심이다.
‘다래함박스텍’은 여러모로 고맙고 신기한 곳이다. 스테이크가 아닌 ‘스텍’이라고 쓴 요상한 간판부터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3종으로 구성된 뚝심 있는 메뉴까지 경이롭다. 이른 아침부터 여는 뚝심, 5500원이라는 가성비 좋은 가격은 자연스럽게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다.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모두 주세요.” 외쳤다. 그 옛날에 먹던 경양식 수프가 먼저 나왔다. 묽은 듯, 슴슴한 듯 익숙한 수프의 맛이야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훈훈했다. 후추를 잔뜩 뿌려 떠먹으면 그저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이어 밥과 주문한 음식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소스를 넉넉히 뿌리고 달걀프라이까지 얹어 나온 함박스테이크는 일본식도, 양식도 아니었다. 엄마가 집에서 해 준 것만 같은 푸근한 모양새와 큼지막한 크기가 정겨웠다. 나이프를 굳이 댈 필요 없이 부드럽게 잘려 나가는 결, 입에 넣었을 때 씹히는 뭉근함에 새콤한 소스가 더해지니 ‘파인 다이닝’(고급 정찬)이 따로 없다. 바삭한 생선가스도 비슷했다. 적당히 바삭하고 제대로 촉촉한 튀김옷이었다. 타르타르 소스에 찍어 크게 한입, 돈가스 소스에 찍어 또 한 입을 베어 먹고 흰 쌀밥을 먹었다. 케첩 뿌린 양배추 샐러드 한입, 아삭한 깍두기 한입이면 느끼해지려던 입안도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시 시작이다.
비싸고 좋은 음식은 많고 가봐야 할 식당도 많다. 피로감이 쌓이는 모임과 의무감으로 가는 식당을 다녀오면 영락없이 이런 식당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무엇을 주문해도 맛있을 것이라는 보장, 어떻게든 배가 부를 것이라는 믿음, 그 포만감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더해진 맛은 포근하고 따뜻하다. 결국 내가 편하고 즐거워야 음식에도 의미가 생긴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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