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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6 20:43 수정 : 2019.11.07 02:42

저지오름은 마을이 감싸고 있는 드문 오름이다. 사진 저지리생태관광마을협의체 제공

커버스토리┃오름

생태관광마을로 거듭나는 저지리
오름 곁에서 나고 자란 해설사들
깊이 있는 설명에 눈과 귀가 뜨여
“마을과 오름은 공존하며 살았죠”

저지오름은 마을이 감싸고 있는 드문 오름이다. 사진 저지리생태관광마을협의체 제공

호젓하게 오름을 오른다. 오름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그러나 미처 오름을 충분히 알게 됐다는 느낌을 얻기는 어렵다. 이런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자연환경 해설사의 오름과 오름의 자연환경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오름을.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 오름을 오르는 데 머리까지 꽉 차오르는 느낌이다.

여기 마을과 오름이 서로 기대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름의 도움을 받고, 오름은 사람들의 손길은 타 아름다운 숲으로 변해갔다.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저지오름과 그 아래 마을의 이야기다. 자연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닐진대, 이곳은 특별하다. 김동철 저지리 이장은 “저지오름은 제주에서 마을을 품고 있는 거의 유일한 오름”이라고 강조한다. 저지리는 문화예술인이 모여 사는 마을로 10여년 전부터 이름이 알려졌는데, 여기에 더해 2018년 4월부터 생태관광마을로 거듭나는 중이다.

“저지생태관광마을에는 10명의 해설사가 있다. 마을 해설사와 자연환경 해설사가 있고, 생태체험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박오순 저지리생태관광마을협의체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지난달 28일 오전 저지리생태관광마을 10명의 해설사 가운데 김영숙 자연환경 해설사와 함께 저지오름을 올랐다. 올해 60살인 그는 저지리에서 나고 자랐다. 단 3년을 떠나있었을 뿐이다. 저지오름 들머리에 서자마자 그의 차지고 흥겨운 해설이 시작됐다. “1970년대까지는 새(띠의 제주 사투리) 비러(베러)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새를 엮어서 지붕을 덮었으니까. 봄 소풍으로 이곳으로 왔다.” 김영숙 해설사의 눈앞에는 50여년 전 저지리와 저지오름이 펼쳐지는 듯했다. 이제 새는 오간 데 없고 눈앞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나무가 울창하다. 1970년대 이후 10여년에 걸쳐 마을 사람들이 저지오름에 나무를 빼곡하게 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새들이 다양한 식물의 씨앗을 날라 220여종의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수십년이 지나 푸르러진 오름은 2007년 산림청이 뽑은 ‘전국 가장 아름다운 숲’ 대상에 선정되기에 이른다.

저지오름은 중간 허리께 오름을 한 바퀴 도는 길이 나 있고, 정상에 또 하나의 둘린 길이 나 있다. “숲이 워낙 좋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둘레길이 2개나 나 있어 제주 현지인들이 산책을 위해 즐겨 찾는 오름이다. 여기에 있는 돌계단 하나하나도 마을 사람들이 올려 쌓았다.” 김영숙 해설사는 자랑스레 소개했다. 저지오름 중간에 나 있는 푹신한 길을 걸으며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오름과 마을이 정말 가깝다. 어렸을 때 새(띠)를 다 베면 집에 있는 가족들을 소리쳐 부를 정도였다. 그러면 칡넝쿨로 단단하게 묶은 새를 오름 아래로 굴려 보냈다.(웃음) 새뿐만 아니라 이 오름은 우리에게 더덕도 내어주고, 상동나무 열매도 내줬다. 상동나무 열매는 요새 듣자 하니 블루베리보다 좋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맛도 워낙 좋아서 열매를 따다가 집에 가져가야 하는데, 한번 입으로 가져가면 정말 맛있어서 먹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웃음)” 옛날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저지오름 전망대에서 본 한라산. 사진 이정연 기자

저지오름은 단언컨대 서쪽 제주 최고의 전망대로 꼽을 만하다. 전망대에 오르니 360도 전체 풍광이 벅찰 정도다. 동쪽에는 한라산과 그 아래 오름들이, 남동쪽에는 산방산과 송악산 그리고 그 아래 바다가 펼쳐져 있다. 남서쪽에는 차귀도가 북서쪽에는 비양도가 내다보인다. 웃음을 감추지 못했더니 가만히 바라보던 김영숙 해설사는 “저지오름은 일출과 일몰 때 정말 장관이다. 일출 때는 한라산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볼 수 있고, 일몰 때는 서해로 넘어가는 태양이 남기는 노을이 말도 못하게 멋지다”라고 말했다. 전망대 밑으로 난 계단은 저지오름 분화구로 이어진다. “옛날 육지에서 제주로 건너와 살던 사람이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이곳 분화구까지 와서 작은 밭을 일구기도 했다. 지금은 농사짓는 사람은 없고, 왕복 20여분 거리의 계단길이 나 있다”고 김 해설사는 덧붙였다.

평생을 저지오름 곁에서 보낸 김영숙 자연환경해설사. 사진 이정연 기자

저지오름 아래 1300여명이 모여 살지만, 사람이 살기에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오름 정상에서 아래에 펼쳐진 마을과 밭을 보며 김영숙 해설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이상하게 비가 적은 곳이다. 그래서 물도 적었다. 옛날이야기 중에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가 마을 사람들에게 물 한잔을 청했는데, 물 대신 술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게 또 전화위복이 됐다. 비가 적으니 귤 당도가 높은 거다. 최근에서야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귤나무뿐만 아니라 비트나 브로콜리, 콜라비 같은 작물도 아주 잘 자라는 땅이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오름 아래 지천인 귤나무에서 귤을 따다 입에 가득 넣고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저지리생태관광마을협의체가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에서 먹어볼 수 있는 좁짝뼈국(제주 전통 음식으로 돼지 갈비로 만든 탕). 사진 저지리생태관광마을협의체 제공

저지오름 아래 마을 길의 돌담은 단단하다. 저지마을 역시 쇠락한 느낌 없이 단단한 느낌이다. 오름과 곶자왈(용암이흘렀던 지대에 나무·덩굴식물·암석이 뒤섞인 숲)이라는 든든한 생태 환경의 영향인 것일까? 현명한 저지리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 마구잡이식 관광지 개발이 아닌 생태 관광지로의 도약을 시작했다. 여행자들에게 마을 문화와 자연환경을 소개하는 생태체험관광 프로그램을 내놓기도 했다. 10명 이상의 여행자가 모이면 1박2일 일정의 생태관광 코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저지오름과 저지곶자왈 여행이 포함되어 있고, 저지리 부녀회가 만들어 내놓는 좁짝뼈국(제주 전통 음식으로 돼지 갈비로 만든 탕) 등을 먹을 수 있다. 여기에 감귤 따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더 할 수 있다. 문의는 저지리생태관광마을협의체(064-773-1948)에 하면 된다. 국내 첫 람사르습지로 선정된 서귀포시 남원읍 물영아리오름에도 자연환경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환경청 영산강유역 제주사무소에 전화(064-728-6200~5)로 예약하면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해설사로부터 습지 자연환경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제주/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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