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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6 20:41 수정 : 2019.11.07 02:41

분화구 안팎으로 억새 파도가 이는 따라비오름. 사진 한병걸 제공

커버스토리┃오름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368개 오름
용눈이오름 등은 인산인해 스타덤 오른 곳도 있어
화산이 만든 풍경 따스한 위로 선물해
제주 제2공항 건설 추진으로 위기 맞기도

분화구 안팎으로 억새 파도가 이는 따라비오름. 사진 한병걸 제공

오, 름…. 가만히 소리 내 천천히 읽어 본다. 제주 오름은 내내 거기 있었지만, 그 누구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한라산과 섬 둘레의 바다만이 제주의 전부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제주를 그저 훑지 않고, 차분히 밟으며 그 안에 숨 쉬던 사람들은 운명이었는지 숙명이었는지 모를 인연을 이어갔다. 오름과의 인연을. 제주 중산간 지역의 오름을 카메라로 담아낸 김영갑 사진가와 330여개 오름을 샅샅이 오르고 기록한 <오름 나그네>를 남긴 김종철 작가. 그들은 이제 모두 세상에 없다. 그러나 김영갑의 사진과 김종철의 글을 보면, 그들은 제주 오름 어딘가에 깃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름은 항상 거기 있는데, 오름을 둘러싼 사실이라고 알려진 정보들은 바뀌곤 한다. 오름은 기생화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규모가 큰 화산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최근 지질학계에서는 오름을 ‘단성화산’이라 한다. 큰 화산의 활동과 관계없이 독립적인 작은 화산체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오름의 개수는 300여개부터 400여개까지 설왕설래했는데, 최근에는 모두 ‘368개’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과학적 사실을 알면 알수록 호기심이 커지지만, 설문대할망(제주의 오름과 섬을 만들었다고 전해오는 신)의 이야기는 귀를 더욱 쫑긋 세우게 만든다. “설문대할망이 밭일을 하다가 발톱에 낀 흙을 떼어 툭 던졌는데 그 자리에 오름들이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저지오름 곁에서 평생을 산 김영숙 자연환경 해설가의 이야기다.

수십만년 전에서 수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오름. 그 오름을 여행자들은 이제야 알아보고 있다. 용눈이오름은 주말이면 그 아래 주차장과 그 주변 길가까지 차들이 빼곡하고, 정상에 오르는 길에는 인파가 가득하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오름은 출연한 연예인들처럼 어느새 스타덤에 오른다. 오름은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시각적인 것)한 여행지가 되어 간다.

그래서 아쉽다. 오름이 내어주는 풍경과 따뜻한 능선의 위로를 사람은 받기만 한다.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고, 아랑곳하지 않고 식물을 짓밟는다. 나아가 인간은 이제 그 오름을 깎아내릴 기세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에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할 것이라는 국토부 발표가 2015년 11월 있었다. 용눈이오름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솟은 오름들 여럿이 깎여나갈 위기에 처했다. 제주 동쪽의 오름에 올라 바다와 오름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면 탁 트였던 가슴이 옥죄어 온다. 4년째, 깎여나갈 가능성이 있는 그 오름들 곁에 터전을 마련한 마을 사람 여럿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오름 위에 올라선 여행자들에게는 미처 가닿지 않는다.

ESC가 늦가을로 접어든 오름으로 갔다. 오름 ‘여행’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름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지만, 외면하지 않아야 할 사실들도 담았다. 더 늦기 전에, 오름이 등을 내어 선물한 아름다움을 영영 잃어버리기 전에 꼭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들이다.

제주/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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