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1.06 20:41 수정 : 2019.11.07 02:41

따라비오름은 분화구 안에 3개의 분화구가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커버스토리┃오름

가을 여행지로 오름만한 곳 없어
따라비오름에 이르는 길도 정상도 절경
오름학교 교장 “가을엔 따라비오름이 최고”
‘오름 파도’ 감상할 수 있는 백약이오름
제주 제2공항 건설되면 사라질 위기의 오름들

따라비오름은 분화구 안에 3개의 분화구가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가을의 오름은 옳다. 어느 때고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는 오름이지만, 가을 오름을 올라본 사람은 안다. 제주에는 바다에만 파도가 이는 게 아니다. 다른 파도가 밀려와 마음을 두드린다. 따라비오름 위에서는 격정적인 억새 파도를, 백약이오름 위에서는 사라질까 두렵고 슬픈 오름 파도를 만날 수 있다. 가을 제주에서 오르기 좋은 그리고 꼭 올라봤으면 좋겠는 오름을 ESC가 소개한다.

억새 파도 이는 따라비오름 위에 앉아

지난 10월29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녹산로. 길 양옆으로 곱게 흙이 갈려있다. 표지판에는 ‘유채 종자를 파종했으니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이곳은 봄이면 벚꽃과 유채꽃이 동시에 핀다. 꽃만큼이나 인파도 빽빽해지는 시기다. 그러나 평일, 가을의 녹산로는 인적이 드물다. 길가 옆 봉긋하게 솟은 오름들이 비로소 보인다. 어느 오름이든 저마다의 특색과 풍경을 자랑하지만, 따라비오름과 그 일대만큼 늦가을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따라비오름만 오르고자 하는 여행자는 가시리 사거리에서 2.8㎞가량 진입하면 도착하는 따라비오름 아래 주차장에서 여정을 시작하면 된다. 조랑말체험공원이나 유채꽃프라자에서 따라비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데, 각각 거리가 1㎞ 이상씩 떨어져 있어 시간이 촉박한 여행자들은 오름 바로 아래 주차장에서 일정을 시작하면 된다. 주차장에 내려 따라비오름으로 이어지는 길도 놓쳐서는 안 된다. 억새 바다가 바로 펼쳐진다. 오름에 오르기 어려운 여행자들은 이 아래 억새 바다에 풍덩 빠져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숲길은 나무 계단으로 잘 정돈되어 있다. 경사가 없는 편은 아니지만, 천천히 숨을 고르면 크게 어렵지 않은 코스다. 이 길을 걷는 내내 숲에 가려 주변 경관은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들이 바람도 막아줘 계단 길을 걷다 보면 포근해지고, 조금 더 오르면 땀이 훅 난다. 그래서 따라비오름 정상의 느낌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20여분 오르막을 걷다 보면 당도하는 따라비오름의 분화구. 분화구 바깥 언덕의 바람과 억새 파도가 먼저 여행객을 향해 손짓한다. 모자를 쓰고 있다면 강하게 온몸을 감싸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 분화구 언덕에서 분화구 능선으로 난 마지막 가파른 오솔길에 올라서면 “와!”하는 외마디가 터져 나온다. 따라비오름 분화구 안에는 또 다른 3개의 분화구가 자리 잡고 있다. 오름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는 따라비오름이다. 분화구 안 낮은 돌담 안에는 봉분이 하나 있다. 제주 오름 안팎에는 이처럼 그 주변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따라비오름 정상에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이더라도 그저 아쉽다. 분화구 안팎의 억새 파도에 안겨 언제까지고 헤엄치거나 그 위에 떠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세찬 바람은 가슴과 머리를 씻는다. 천천히 분화구 능선을 걸으면 제주 동쪽 모두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서쪽으로는 한라산과 그 아래 오름들이, 남쪽으로는 멀리 표선 앞바다가…. 단 한 곳도 빼놓을 수 없는, 그런 경관이다. ‘오름학교’를 2017년 11월부터 열어 제주의 오름을 여행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이승태 교장은 “따라비오름은 가을에 가면 가장 좋은 오름으로 꼽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의 확신에 찬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따라비오름 아래에도 억새가 빼곡하다. 사진 한병걸 제공

여행자가 따라비오름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1시간 정도 걸려 따라비오름만 오를 수 있고, 4시간 정도를 들여 따라비오름에서 졸븐갑마장길, 큰사슴이오름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걸을 수도 있다. 이승태 교장은 “졸븐갑마장길은 돌담과 나무로 싸인 길을 걸을 수 있고, 큰사슴이오름에서는 아름다운 숲길을 걸을 수 있어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이 구간을 다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가슴을 치는 오름 파도 앞에 서서

제주 이주민이자 <오름오름 트레킹 맵>의 저자 박선정씨는 오름에 아주 푹 빠졌다. 1년이 될 줄 알았던 제주살이는 7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에게 가을에 꼭 가보면 좋을 오름을 물었다. 억새밭이나 제주에서는 귀한 단풍을 볼 수 있는 오름을 추천해줄까 싶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제주에 제2공항 건설을 두고 논란이 많다. 실제로 건설되면 공항 예정부지에 속한 오름들이 깎여나간다. 오름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많은데, 그렇게 사라지거나 훼손될 수도 있는 오름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머릿속이 울렸다. 오름에 올라 보는 풍경을 좋아하기만 했지, 그 오름들의 소리 없는 외침은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사람을 물건처럼 여기는 게 잘못인 듯, 자연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 생각은 외면했다. 그저 멋진 사진을 찍는 배경으로 ‘소비’하고 말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향했다. 10월30일 오전 백약이오름으로 향했다. 제주 제2공항이 건설되면 훼손될 위기에 처한 오름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오름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금백조로에 있는 백약이오름은 오름에 100가지 약초가 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백약이오름 인근으로는 좌보미오름, 동검은이오름, 문석이오름 등이 있어 반나절 가량 오름 걷기 여행을 하기 알맞은 곳이다. 백약이오름 정상에 오르는 길은 진한 갈색의 친환경 야자 매트가 말끔하게 깔려 있다. 15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이날 정상엔 4살 된 어린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만큼 오르내리기가 어렵지 않은 오름이다.

백약이오름에서 내려다 본 성산읍 일대. 제주 제2공항을 실제로 건설하면 사진 속 오름들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 이정연 기자

백약이오름 분화구의 능선은 평탄하게 이어지다 동남쪽을 향해 비죽 솟은 부분이 있다. 그 위에 올라서면 비로소 보인다. 물결치는 제주 동쪽의 ‘오름 파도’가. 바로 앞 뒤꾸부니오름(후곡악)이 빠끔히 보이고, 평탄한 낭끼오름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동남쪽으로 눈을 옮기면 유건에오름, 나시리오름, 모구리오름이 오손도손 모여 있다. 대왕산(산이라고 표현하지만 이곳 역시 오름이다)은 성산읍 수산리 마을을 품고 있다. 그 밖에 은월봉, 대수산봉, 통오름, 독자봉이 있다. 오름 파도를 이루는 10개의 오름은 40~100m가량 깎여나갈 위기에 처해있다. 그 숫자들을 떠올렸더니 가슴이 자꾸 답답해진다. 그 오름이 품고 있는 생명도 한순간 사라질까 걱정이 앞선다.

그저 한낱 여행자의 감상으로 슬퍼하고 말 일이 아니다. 오름 파도 아래 삶의 터전을 이루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창현 수산1리 청년회장은 기자가 제주를 찾았을 때 서울에 있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시위를 하기 위해 서울에 와 있던 차였다. 일터와 삶터를 두고 열흘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는 “오름이 정말 사라질까 무섭다”고 했다. “정말 공항이 세워지면 그 부지 안은 허허벌판이 된다고 한다. 새들이 날아들 수 있는 귤밭 같은 건 아예 사라진다. 게다가 오름은 우리 속에 있는 삶인데, 그게 떨어져 나가고 깎여나간다고 생각하면 살점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오름은 인간에게 많은 걸 내어줬다. 오창현 청년회장은 말했다. “어렸을 때는 오름에서 고사리 꺾고, 산더덕 캐다 팔아서 용돈을 마련하곤 했다. 소풍도 매번 오름으로 가곤 했다. 그런데 이 오름들을 훼손한다고 하니….” 그는 옛 추억을 말하며 웃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당부했다. “많은 여행자가 이 지역의 오름들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 마을에 와서 직접 오름을 올라보면 알 거다. 이 오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소중한지.”

[ESC] 오름 여행자를 위한 안내

■ 안내서 최근에는 진입로가 잘 정돈된 오름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입구조차 찾기 어려운 오름들이 여럿이다. 오름 여행 초보자라면 무리해서 도전하지 말자. 친절한 오름 여행 안내서의 도움을 받는 건 하나의 방법이다. 제주 이주민 박선정 작가가 오름을 탐방하고 직접 그린 걷기 여행 지도를 담은 <오름오름 트레킹 맵>은 갖고 다니기에도 좋은 크기다. 오름 도보여행을 하며 오름 공부도 하고 싶다면 인문학습원이 운영하는 ‘오름학교’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겠다. 13번째 강의가 11월22~23일 열린다.

준비물 되도록 양말을 신고, 긴 상·하의를 갖춰 입는 게 좋다. 수풀이 우거진 진입로를 지나야 할 때도 있다. 5~10월에는 뱀이나 진드기를 조심해야 한다. 벌레기피제도 챙기자. 따라비오름 같은 곳은 입구에 벌레기피제를 비치해 뒀다. 식수와 약간의 간식도 필수. 인적과 상가가 드문 오름이 많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쓰레기는 다시 챙겨와 꼭 정해진 곳에 버리도록 하자.

이정연 기자

제주/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