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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30 20:49 수정 : 2019.10.31 07:59

‘원보 양고기꼬치’는 메뉴가 다양하다. 사진 백문영 제공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원보 양고기꼬치’는 메뉴가 다양하다. 사진 백문영 제공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와 식사하기로 한 날이었다. 마침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에 기분도 좋았다. “날도 좋은데 좀 걷자.” 광화문에서 시작한 우리의 산보가 종로까지 이어지던 참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온 친구의 얼굴은 미묘하게 수척했다. “네가 먹고 싶은 것은 뭐라도 사 주겠다.” 안쓰러워서 그에게 한 말이다. ‘외지에서 오랫동안 있었으니 당연히 얼큰한 한식이 당기겠지.’ 하지만 의외였다. 그는 “한국에서 맛보는 중국의 맛이 궁금하다”고 했다. 얼토당토않은 말에 다소 당황했지만, 서울은 바야흐로 미식의 천국이 아닌가! 웬만한 음식은 서울 시내에 다 있다. 게다가 화교가 많기로 유명한 지하철 동대문역 인근에는 별난 중국집도 많다.

그날은 허름한 마라탕집, 훠궈집, 양고기꼬치 전문점이 눈에 보였지만, 마땅치 않았다. ‘대충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을까’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려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곳이 ‘원보 양고기꼬치’였다.

지하철 동대문역 5번 출구 앞 상가에 있어 눈에 잘 안 띈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왔다. 자신감의 발로인지 식당은 손님 끌기 쉽지 않은 2층에 있었다.

염려보다는 밝고 깔끔해서 놀랐다. 기름때 끈적거리고 연기 자욱한 양고기꼬치 집들과는 달랐다. 메뉴판을 보고 놀란 이는 내가 아니었다. “중국만큼이나 메뉴가 다양하고 그 구색도 훌륭하다”라는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직감했다. ‘오늘도 꽤 멋진 식사를 할 수 있겠군.’ 간판엔 ‘양꼬치’가 적혀있지만, 이곳은 중국 음식 전문점이다. ‘소 양무침’, ‘가상냉채’, ‘단콩볶음’, 잉어요리, ‘홍소명태’ 등 듣도 보도 못한 각종 요리가 가득했다.

친구는 “차가운 채소부터 따뜻한 고기, 뜨거운 국물로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얇게 썬 말린 두부와 오이, 양배추, 얇은 중국 당면을 매콤한 소스에 버무린 가상냉채를 시작으로 길게 썬 돼지고기를 볶은 ‘향라육슬’까지, 쭉 이어지는 코스에 신이 났다.

새콤하고 아삭한 가상냉채에 고수를 잔뜩 얹어 씹었다. 뜨끈한 돼지고기 볶음에도 볶은 고수를 넣어 먹었다. 맵고 짜고 고소하고 기름진 온갖 맛이 입안에서 뒤섞이다 향기로운 고수를 만날 때의 그 짜릿함이란! 음식을 목구멍 뒤로 넘긴 뒤에 털어 넣는 고량주의 명쾌한 느낌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홀린 듯이 씹고 삼키고 들이켜다 마무리로 ‘매운 생선탕’을 먹었다. 진한 빨간색의 국물에 산초 열매와 흰 생선살이 둥둥 떠 있는 모양새가 낯설었다. 용기를 내 떠먹어 본 한입은 그야말로 굉장했다. ‘마라 생선 매운탕’인 듯, 고급스러운 중식 생선찜인 듯했다. 국물은 진하고 뜨거웠고, 잉어 살은 단단하면서도 포실했다. “앉은뱅이 술이 있다면 앉은뱅이 안주도 있겠다.”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새로운 경험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생소한 것을 선택할 때 드는 불안감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낯선 경험이 선사하는 황홀함은 그런 불편함을 없애준다. 불편함을 감수한 뒤에야 쾌락이 온다.

백문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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