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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4 15:24 수정 : 2019.10.04 15:30

지난 26일 제주탐나라공화국 현무암 ‘돌빌레’ 골에 매달린 강우현(66) 대표. 김선식 기자

커버스토리 제주 & 별난 여행지
찔레와 잡초만 무성한 3만평 황무지
6년째 돌파고 쌓아 올리고 문양 새겨
‘거대한 현무암’서 탄생한 ‘제주탐나라공화국’
커피 생두를 화산수에 발효해 화산송이로 숙성
‘볶고 내리는’ 고정관념 깬 ‘제주커피수목원’

지난 26일 제주탐나라공화국 현무암 ‘돌빌레’ 골에 매달린 강우현(66) 대표. 김선식 기자
제주는 화산섬이다. 제주 바다와 숲, 올레길을 누비면서도 제주가 화산으로 태어난 섬이란 걸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화산이 만든 돌에서 일궈 낸 실험실 같은 제주 여행지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섰다. 지난 26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탐나라공화국’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제주커피수목원’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고사리 따러 갔다가 뱀 나오면 도망치던 땅”이었다. 제주 한림읍 금악리, 용암이 굳어 버린 중산간 3만평 땅엔 찔레와 잡초만 무성했다. 2001년 9월부터 13년간 남이섬을 일궈 국내외에 널리 알린 강우현(66) 대표는 그 자리에서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거나 하지 뭐.” 먼저 밟고 서 있는 돌을 보며 상상했다. “일단 한 번 파보자.” 그가 신조로 삼는 ‘투석문로’(돌을 먼저 던지고 길을 묻다)가 ‘채석문로’(일단 파고 보자)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2014년 2월21일부터 허구한 날 현무암 덩어리인 땅을 파기만 했다. 파도 파도 나오는 돌덩어리들은 옆에 쌓아 돌성과 기암 조형물을 세웠다. 돌에 문양을 새겨 넣고 동물과 오름 형상을 만들어 냈다. 구덩이에는 방수포를 깔아 빗물을 받았다. 80여개 연못이 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간. 5년이 지나자 황무지에도 연못과 돌무더기 사이로 길이 생겼다. 4개의 오름(돌오름, 당오름, 정물오름, 도너리오름)이 병풍처럼 둘러싼 버려진 땅은 그렇게 새로 태어났다. 탐나라공화국은 지난 5월 개국했다. 방문객들에게 여권과 비자를 발급한다. 일종의 이용권이다. 남이섬에 세운 ‘나미나라공화국’처럼 상상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강우현 대표는 일찌감치 제주탐나라공화국에 유언을 새긴 비석을 놓았다. 김선식 기자
탐나라공화국은 “돌을 디자인한 나라”다. 입국심사대를 지나면 10여개 원뿔 모양 돌성이 언덕에 줄지어 있다. 그 아랜 ‘황금지’라는 연못이다. 현무암 돌빌레(땅에 묻힌 넓적한 바위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를 포크레인, 삽, 호미로 파내다 나오는 한 줌의 흙들을 모아 언덕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황금지 맞은편 단풍나무 1000그루를 심은 천풍토성이 탄생했다. 돌을 쌓아 당오름 능선 굴곡을 그대로 재현한 ‘천인합일문’, 기암괴석을 쌓아 돌 토끼, 거북이, 공룡을 만든 ‘하동물원’, 술병 모양 바위에서 폭포수가 흘러나오는 ‘주당 폭포’, 200m 길이 거대한 용 모양 바위에 눈알을 새겨 넣은 ‘와룡’ 등. 돌이 예술로 재탄생한 길목마다 바위에는 글귀와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강 대표가 바위에 그림을 그려놓으면 석공이 그대로 팠다. 꼭 돌의 물성을 고집하진 않는다. 현무암 무늬대로 철판을 딴 ‘마그마캐년’, 써도 써도 남아도는 돌을 녹여 도자기 무늬로 입히는 ‘라바 스튜디오’ 등 돌에서 시작해 한 가지, 한 가지씩 나무처럼 피어났다.

제주탐나라공화국에 있는 길이 200m ‘와룡’ 머리 위에 오른 여행객. 김선식 기자
“내버리면 사라지고 써버리면 살아난다.” 현무암이 재탄생했듯, 여기선 온갖 버려진 것들이 되살아난다. 연회장으로 쓰는 ‘호롱궁’은 볼링핀, 볼링공, 당구공, 돌 저금통, 불에 녹인 소주병, 버려진 송판 등으로 디자인했다. “폐업하는 업체마다 자꾸 이곳에 물건을 갖다 준다”. 한 크리스털 업체는 폐업하면서 수정을 무더기로 보냈다. 돌에 수정을 입힌 ‘수정굴’이 탄생했다. 쓰고 살려내니 ‘길’이 생겼고 그 길에서 ‘도’를 발견했다. 엉겁결에 중국 허난성 문화청에 달려가 노자 책 500권을 기증받아 왔다. 노자예술관을 세웠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전국에서 헌책 30만권을 알음알음 기증받아 헌책 도서관을 만들었다.

제주탐나라공화국 ‘노자예술관’ 내부. 김선식 기자
돌을 파서 다시 쌓아 올리고, 용암이 굳은 돌을 다시 녹이는 탐나라공화국은 ‘주객전도’를 꿈꾼다. 여기선 여행자가 주인이 되고 이방인이 국민이 된다. 부혜사 무비 스님은 이곳을 다녀간 뒤에 목각 불상을 기증하면서 연못에 물고기 200마리를 방생하고 갔다. 물고기들은 청둥오리와 황새를 연못에 불러 들였다. 한림읍 한 주민은 키우던 소철 200그루를, 또 다른 주민은 담팔수를 기증했다. 탐나라공화국은 그곳에 ‘철 드는 길’, ‘홍원’ 등 이름을 붙여줬다. 여러 제주도민은 이곳에 놀러 와 금계국과 루드베키아 꽃씨를 공화국 전역에 뿌렸다. 연못에 있는 ‘오리배’는 사람이 아닌 오리가 탄다. 오리 두 마리가 족제비에 잡혀먹히자 오리배를 놓아 숨을 곳을 마련해 줬다.

탐나라공화국을 둘러보는 약 2시간여. 태고의 속살이 인간의 손길을 만나 자연과 예술로 재탄생한 현장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제주커피수목원’ 야외 카페에 앉아 있는 김영한(71) 대표. 김선식 기자
탐나라공화국에서 남쪽으로 약 13㎞ 거리에도 제주 화산석을 백배 활용한 여행지가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제주커피수목원이다. 김영한(71) 대표는 2013년부터 여기서 커피 농사를 짓고 있다. 삼성전자, 한국휴렛팩커드(HP) 출신 마케팅 전문가인 그는 서울에서 대기업 마케팅 컨설팅을 하며 관련 책 70권가량을 펴냈다. 2011년 그가 제주 이주를 결심한 건 도저히 디지털 환경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풍광 좋은 사계리에 웨딩사진관을 차렸고 석 달 만에 폐업했다. 그 자리에 카페를 차리자 손님이 몰렸다. 카페는 성황이었지만 원천기술을 갖고 싶었다. 태국, 미얀마, 중국, 베트남, 미국 등을 돌며 커피를 공부했다. 문득 제주에서 커피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커피 재배에 성공한 그는 “제주도의 가치는 화산문화”라며 “그 가치를 가장 잘 아는 게 식물”이라고 했다. 자양분을 화산수에서 얻기 때문이란다. 커피나무는 뿌리가 깊고 넓게 자라 물과 배수가 잘되는 땅을 좋아한다. 물이 고이지 않는 화산지대는 커피나무 재배 최적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김영한 대표는 커피를 볶아 내리는 대신 생두를 발효해 ‘커피 와인’과 ‘커피 코냑’을 개발했다. 제주커피수목원 카페에서 ‘커피 와인’이 발효되고 있는 스테인리스 통. 김선식 기자
그는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커피만 보면 볶으려고 하고, 볶은 걸 보면 왜 내리려고만 할까?’ 찰나의 의문은 발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커피 생두를 볶아 내리는 대신 화산수에 담갔다. 제주산과 콜롬비아산을 절반씩 섞은 생두를 냉동건조하고 분쇄해 효모와 물에 섞어 발효했다. 발효한 커피를 그는 ‘제주 몬순’이라 이름 지었다. ‘제주 몬순’을 항아리에 ‘화산송이’와 함께 넣고 숙성하자 2017년 ‘커피 와인’이 탄생했다. 화산송이는 화산이 분출하면서 공기에 닿아 굳은 가벼운 돌이다. 초고열에 있다가 바로 굳은 물질로, 분자 진동과 발열을 유발하는 원적외선을 뿜어 숙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커피 와인을 증류해 같은 방법으로 숙성한 ‘커피 코냑’(일명 ‘한라산 코냑’) 제조에도 성공했다. 화산수와 화산송이에 빚진 그는 “내 모든 기술은 화산문화에서 왔다”고 말했다.

화산송이는 와인과 코냑 숙성에 좋지만 ‘숙성’ 항아리 뚜껑을 닫아놓을 때도 쓴다. 김선식 기자
제주커피수목원은 올해 ‘커피 모히토 만들기’ 체험장을 열었다. 커피를 재배하는 약 360평(1190㎡) 넓이 비닐하우스 8동 가운데 한 동을 체험장으로 쓰고 있다. 체험은 쉽다. 100㎖ 비커에 커피 액을 넣고 청귤 차 또는 한라봉 꿀차를 두 스푼 넣은 뒤, 애플민트를 따서 으깨 넣은 다음, 얼음을 넣고 진저 에일을 붓는다. 커피, 청귤, 애플민트 향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코냑을 넣으면 ‘코냑 모히토’가 된다. 기묘하게도 흑맥주 맛이 난다. 깔끔하고 부드럽다. 김 대표는 최근 중국, 일본, 베트남 업체와 ‘커피 와인’과 ‘커피 코냑’ 수출 계약을 맺었다. 베트남 호찌민엔 연내에 현지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비닐하우스 옆 카페에선 15개 스테인리스 통에 담긴 ‘제주 몬순’ 커피가 발효 중이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라고 말했다.

제주엔 60~70대 나이에도 간헐천처럼 심장이 헐떡이는 ‘마그마 보이’들이 있다. 강우현과 김영한, 그들이 화산석 위에서 무턱대고 벌이는 실험이 옛날 옛적 그 용암들처럼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제주/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제주 별난 여행 수첩

이용 정보 탐나라공화국(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81-9)은 여권(2만원) 또는 비자(1만원)를 발급받아 입장한다. 여권은 1년 이용권, 비자는 당일 이용권이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제주도민은 무료입장할 수 있다. 문의 064-772-2878.(누리집 jejutamnara.com) 제주커피수목원(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3136)은 커피 모히토 또는 코냑 모히토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각각 1만3000원, 1만5000원(용기 포함·약 200㎖). ‘커피 와인’과 ‘커피 코냑’ 제품을 판매하며 실내외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해 마실 수 있다. 문의 064-792-5554.(누리집 coffeewine.kr)

축제 제18회 제주국제실험예술제가 10월9~20일 탐나라공화국,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협재해변, 취다선리조트, 홍익제주호텔에서 열린다. 2002~2013년 서울 홍익대 앞에서 펼쳐진 축제는 2014년부터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주제는 ‘생태와 만나는 예술의 울림’이다. 전 세계 30개국 80여명 예술가들이 생태를 주제로 퍼포먼스, 설치미술전, 춤과 음악 공연, 놀이터, 캠프 등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10월12일 오후 3~6시 탐나라공화국에선 생태 춤, 생태 퍼포먼스, 생태 음악 공연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생태 설치미술, 생태 미디어 전은 탐나라공화국,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제주홍익호텔에서 축제 기간 내내 이어진다. 워크숍을 제외한 전 일정은 참가비가 없다. 구체적인 일정과 내용은 누리집(jieaf.com) 참고.

김선식 기자

제주탐나라공화국에 있는 정자 ‘그리운 남이섬’에 오른 강우현 대표. 김선식 기자
[%%IMAGE11%%] 제주/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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