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부스의 먹는 인류
전 세계 식음업계는 박테리아가 이슈
우리 뇌와도 연결돼 있어 판단에 영향
마이크로바이옴 개념 정립되는 중
요구르트·된장 등 발효식이 건강에 중요
발효식 외면하는 젊은 층은 늘어나 걱정
‘분변 미생물군 이식’ 통해 치료하는 곳도
|
일러스트 이민혜
|
지금 지구촌 식음업계를 달구고 있는 가장 뜨거운 화두는 신개발 요리도, 무슨 슈퍼 푸드도, 혜성처럼 등장한 셰프도, 핫 플레이스 레스토랑도 아니다. 케일도 아니고, 토르티야도 아니고, 데이비드 창도 아니다. 그것은 반짝 관심을 끌다가 지나가는 유행보다 중대하고,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 오늘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러분 위장 안에 살고 계신 박테리아 되시겠다.
자, 먼저 놀라운 사실을 하나 말하련다. 여러분의 소화기관에 있는 약 100조개에 달하는 박테리아와 미생물의 숫자는 여러분 몸 전체의 세포 수를 넘어선다. 숫자의 비율이 10대 1쯤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을 규정하는 세포보다 대략 몇십조나 더 많은 박테리아 세포를 지니고 다닌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누가 기생충일까? 당신의 세포일까, 아니면 수십조에 육박하는 박테리아일까? 대체 누가 누구를 데리고 다닌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
현대 과학이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바로는 장내 박테리아는 우리 뇌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가끔 어떤 일에 대해 강력한 육감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때가 바로 당신의 ‘생각하는 위장’이 활동하고 있는 순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영어에서는 육감, 직감을 ‘gut(소화관·내장) feeling’이라 표현한다.
나는 내 판단과 결정 대부분이 위장의 명령 때문에 결정된다고 종종 농담을 했는데, 알고 보니 농담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팩트였다.
과학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박테리아는 유전자 교환을 위한 수많은 메커니즘을 지녔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홑유전자 단위까지 접근 가능하고, 이에 따라 전체 박테리아 왕국의 적응 메커니즘까지도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유전적 유연성은 물론, 박테리아는 세포 간 소통을 위해서 정교한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심지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기보다 ‘고등’ 생명체인 식물과 동물의 세포 활동에까지 간여하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음식 칼럼에서 박테리아나 내장 얘기 같은 걸 기대하지 않았을 테고, 이런 것들이 음식 칼럼에 과연 적절한 주제인지 의아해할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몸속에 조 단위로 존재하는 유기체로서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 훨씬 더 많은 세간의 관심을 집중하게 하였다. 인체에 서식하는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를 합쳐 만든 용어로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과 그 유전정보를 일컫는다. 원한다면 마이크로바이옴은 ‘장내 식물군’(gut flora)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리고 항생물질, 예를 들어 염소로 소독한 물이나 화학 첨가물 범벅인 가공식품이 우리의 장내 식물군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계속 밝혀지는 중이다. 우리가 키우는 식물에게도 주지 않는 것들을 왜 우리의 위장 식물군에게는 강제로 먹이는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소위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프로바이오틱스라 하면 딱 봐도 양도 안 차게 생긴 자그마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채 공장에서 생산돼 나오는 달곰한 요구르트 얘기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게 아니라 우리 소화기관에 살아 있는 유익한 장내 유산균 혹은 락트산 균의 보호와 증식에 도움이 되는 전통적인 발효 식품 얘기다. 사우어크라우트(잘게 썬 양배추에 식초를 쳐서 만드는 독일식 김치), 혹은 한국의 김치, 사우어도 빵(발효시킨 반죽으로 시큼한 맛이 나는 빵), 심지어 초콜릿이나 치즈(단, 초콜릿은 설탕이 거의 들어 있지 않아야 하고 치즈는 비살균처리 우유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같은 식품은 우울증에서부터 비만, 당뇨에 이르는 다양한 질병과의 전쟁에 훌륭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국가대표인 ‘된장’을 필두로 콩으로 만든 여러 식품을 비롯한 한국 전통 음식과 식재료(김치는 물론이고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맛깔스러운 다양한 젓갈)의 열혈 팬들에게는 특히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음식에는 우리 몸과 마음이 균형 잡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장내에 필요한 유산균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이런 식품의 섭취는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발달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선호도와 취향이란 것이 일단 한번 자리 잡으면 평생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장내 박테리아께서 우리가 어릴 때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짓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나는 아이들을 구슬려서 먹기 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먹게 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부모 노릇이 아니라는 얘기를 줄기차게 들어왔다. 그러나 가혹한 진실을 말하자면, 자식들에게 가능한 한 다양한 전통 음식과 자연식품을 먹도록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엄연한 의무다. 왜냐하면 어릴 때 이런 음식을 시도해 보고 즐기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성인이 된 후에 그런 음식에 애착을 갖게 되기란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맛은 생경할 테고, 그러니 자연히 그것을 먹을 때 그들의 ‘생각하는 위장’이 막강한 맛의 추억을 소환할 리도 만무하다.
삭힌 생선의 맛이 어떻게 누군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는 사실 나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홍어회는 절대절대 먹고 싶지 않다. 한국인들이 그걸 권했을 때 나는 울고 싶었다), 한국인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건 모두 자식들이 그 맛을 알 수 있도록 설득하고, 뇌물을 먹이고, 공갈 협박도 불사하지 않은 부모들 덕분이다. 물론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나 가엾은 내장 박테리아에게나 그편이 훨씬 나은 길이라는 건 내가 이 자리에서 장담할 수 있다.
미국의 어느 모험심 충만한 병원에서는 건강한 개인의 분변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질환이 있는 사람의 장에 이식하는 ‘분변 미생물군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이라는 방법도 이미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변 주입 등을 통해 건강한 세균 군집을 도입해서 장내 미생물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건강한 공여자에게서 확보한 대변을 동결 건조시킨 다음 사용하거나 캡슐의 형태로 투여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말을 믿으시라, 이런 얘기야말로 음식 칼럼에 매우 부적절한 주제가 아니겠는가? 내장 박테리아 정도는 완전 약과다.
마이클 부스(푸드 저널리스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