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0.02 20:52 수정 : 2019.10.03 11:40

고양이와 집게 손가락 인사를 했다. 박미향 기자

박세회의 사람 참 어려워

고양이와 집게 손가락 인사를 했다. 박미향 기자
“휴지야! 휴지야!” 얼마 전 본가에 가서 우리 고양이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결혼해 분가한 후부터 휴지는 옛 반려인이자 룸메이트인 내게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녀석이 숨어 있을 법한 곳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더니 아버지가 “애 스트레스받는다”며 “나도 얼굴 보기 힘든데, 집 나간 너를 보러 나오겠느냐”고 다그쳤다. 이후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내 행동이 얼마나 몰지각한 짓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아닌 게 아니라 아버지 말이 맞았다. 낯을 가리는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큰 소리로 찾는 행동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다. 얼굴 보기 싫어서 숨었는데, 자기 덩치의 수십배나 되는 잡식동물이 자기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면서 수색 작업을 벌인다면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

친구네 방문했을 때 그 집 고양이가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냥바냥’(냥이 바이 냥이)이라고 고양이의 성격도 사람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어떤 냥이들은 처음 본 인간이 자기 영역에 들어와도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다가와 사람의 다리에 자기 냄새를 묻히며 러빙(rubbing·문지름)을 한다. 첫 대면부터 눈을 맞추고 배를 보여주며 놀아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러나 냥이 대부분은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심을 드러낸다. 친구네에 어떤 고양이가 있을지, 그 고양이가 나를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친구네 집 냥이를 처음 알현할 때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은 조공이다. 고양이의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츄르’나 습식 캔 모두를 싫어하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보호자에게 섭식장애 등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기호를 파악한 후 취향에 맞는 조공을 준비한다.

일단 집에 들어설 때부터 조심해야 한다. 고양이의 청각은 개보다 예민하다. 아무것도 안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고양이의 귀는 각도를 바꿔가며 여기저기서 나는 소리를 다 포착한다. 모르는 사람의 말소리는 신경을 자극하는 소음이니, 예의를 갖춰 낮은 목소리로 작게 말해야 할 것이다.

숨은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금물이다. 친구가 “괜찮아 만져봐”라고 말해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1.8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한 후 조공을 개봉하라. “먹어봐 캔디야” 따위의 쓸데없는 소리 정보를 전달할 필요는 없다. 눈을 마주치지 말고, 다른 곳을 응시하며 ‘츄르’에 관심을 보일 때까지 무관심한 척, 나는 돌이라는 마음 자세로 동작을 멈춘다. 만약 고양이가 마음의 상처가 심하지 않다면, 조심스럽게 나와 당신이 내민 간식을 맛봐주실 것이다. 속단은 금물. 간식에 마음을 줬다고 해서 당신에게까지 마음을 준 것은 아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엉덩이로 방바닥을 닦아가며 간식을 먹는 고양이와 당신의 거리를 좁힌다. 이때 조금만 다가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녀석들이 있다. 그때는 당황하지 말고 다시 1.8m 정도로 거리를 벌리고 망부석 자세를 취해 만남을 다시 시작한다.

팔을 쭉 뻗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는데도 고양이가 도망가지 않고 계속 간식을 먹는다면 경계가 풀렸는지를 확인한다. 고양이의 경계심은 귀, 꼬리, 수염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양이는 경계심을 느끼면 귀와 수염을 뒤쪽으로 젖힌다. 극도의 공포를 느낄 때는 아예 귀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경계심을 푼 고양이의 귀는 위로 꼿꼿하게 솟구쳐 앞쪽이나 옆을 향한다. 수염이 아래로 쳐졌다면 평안한 상태고, 앞쪽으로 쏠렸다면 호기심이 발동한 거다. 꼬리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꼿꼿하게 꼬리를 세웠는데 꼬리의 끝이 사람을 향해 있다면 이는 일단 호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고양이의 보디랭귀지를 읽는 게 중요하다.

고양이가 어느 정도 긴장감을 풀었다고 생각하면 조심스레 인사를 시도해본다. <이비에스>(EBS)의 〈고양이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나응식 수의사, 일명 ‘냐옹신’은 집게손가락 인사법을 권한다. 고양이들끼리는 처음 만나면 서로 코끝을 살짝 맞대며 인사를 하는데, 사람이 코끝을 들이댈 순 없으므로 집게손가락을 고양이 앞에 내미는 인사법이다. 조공을 흡족하게 맛본 친구의 냥이가 당신에게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다면 수줍게 자신의 코를 집게손가락에 맞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희열을 잊지 못해 평생 고양이 집사가 되는 꿈을 꾸며 살 것이다. 고양이의 인사는 사람을 홀리는 마법이니까.

박세회(허프포스트 뉴스 에디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박세회의 사람 참 어려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