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9.25 20:30 수정 : 2019.09.25 20:40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구체적인 꿈을 이뤄주겠다 말하는 사람을 특히 따릅니다. 어느 날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실제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말이 되는지 어떤지를 떠나 우선 믿고 싶어집니다. 좀체 변할 기미가 없는 고단한 현실에 지쳤기 때문인지 꿈같은 미래를 맞이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마음을 내줍니다. 하지만 대개는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실망스러운 결과를 마주하곤 합니다. 아라뱃길에 떠 있는 유람선에서 한강을 바라볼 때의 제 심정이 그랬습니다. 세련된 폐허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는 곳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김포입니다. 그곳에 매년 6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2만5천명의 고용 인력을 창출할 수 있다며 2조7천억원을 들여 만든 아라뱃길이 있습니다. 여객 터미널은 번쩍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친목계로 놀러 온 듯한 몇몇 중년 여성 무리와 기대에 들뜬 표정의 관광객들을 제외하곤 많지 않은 사람들만이 보일 뿐입니다.

한 시간 반의 짧지 않은 운항이었기에 점심 뷔페가 포함된 티켓을 샀습니다. 차림새가 얼마 전 갔던 보리밥 뷔페보다는 나았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무대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마술쇼가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서커스단 같은 사람들이 등장해 오색 조명을 받아가며 장기자랑을 시작할 즈음, 먹은 것이 체할 것 같아 황급히 밖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갑판에 선 채 바라보는 풍경은 실로 가관이었습니다. 전에 없던 물길을 만들어내기 위해 깎아낸 산등성이들은 덜 자란 나무로 덮여 있었고, 수로를 따라 만들어진 길에는 자전거만이 오갈 뿐이었습니다. 모름지기 유람선이란 관광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딱히 눈길을 줄 곳이 없었고 그래서일까 너도나도 새우깡을 손에 든 채 날아든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에만 열중했습니다. 딱 한순간, 대한민국 최대 규모라는 인공폭포가 나타나자 형식적으로 사진들을 찍을 때를 제외하곤 갈매기 먹이 주기 체험 외엔 달리할 것도 볼 것도 없었습니다.

낯설지만은 않은 감정이었습니다. 멋진 신세계를 우리에게 선사하겠다 말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황당한 광경을 이미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그들 모두 처음에는 정말 순수한 의도와 열정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뜻이 모여 힘이 강해지자 덩달아 욕망도 커진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을 맞으며 나아가고 있으면서도 기분이 상쾌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생계 곤란을 겪고 있던 누군가가 아라뱃길에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찾아보니 2012년 개통 뒤 약 90여명이 아라뱃길에서 투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멀쩡한 산을 깎아 수로를 만드는 데 든 돈 2조7천억원에 대해 생각합니다. 현재 아라뱃길의 목표 대비 이용률이 10%가 조금 넘는다는 뉴스를 떠올립니다. 매년 수로의 관리를 위해 70억원의 관리비가 국가 예산에서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항구의 수입이 5백만원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꿈을 말한 누군가에 의해 파괴된 채 수습되지 않는 현실을 바라봅니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김보통의 해 봤습니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