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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9 09:23 수정 : 2019.08.29 20:30

그림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의 고기고기 여행

그림 김태권 만화가
이 모든 고민은 이십여년 전에 시작되었어요. 통닭을 먹으러 갔는데 친구가 먹지 않았죠. 저는 궁금했어요. “왜 먹지 않니?” “저는 통닭 못 먹어요. 살아 있을 때 어떻게 생겼는지 그대로 알아볼 정도의 고기는 차마 못 먹겠어. 대신 잘라놓으면 잘 먹어요.” 예를 들면, 통닭이나 백숙이나 생선구이나 회는 안 되고, 탕수육이나 소시지는 된다는 거죠.

“어라, 이상하다.” 제 생각은 정반대였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누군가를 죽이고 그 살을 먹는다는 사실을 먹는 내내 자각해야 한다는 쪽이었거든요. 이것이 저의 ‘육식의 모럴’입니다. 목숨을 잃은 동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지요.

하지만 그 친구 반응도 일리가 있어요. 그런 행동이 죽은 동물에 예의를 갖추는, 그 친구 나름의 방법이었던 거죠. “이걸 왜 안 먹지, 신기하네”라며 허허 웃던 그때 제 반응이 행여 육식을 강권하는 모습으로 비쳤을까요?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네요.

늦은 저녁 식사로 닭똥집 튀김을 사서 집에 가다가 오롯이 모습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옛날통닭’들 앞에서 떠오른 기억입니다.

전 육식을 좋아해요. 하지만 육식은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아요.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쩌면 고기를 끊는 것이겠지요. 고기를 완전히 끊은 친구가 있어요. 아까 그 친구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아니, 어쩌다? 당신도 나처럼 먹는 것 좋아했잖아요.” “뉴스를 보다가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과 동물들 때문에 괴로웠어요.” 당시는 이라크전쟁 중이었거든요. 전쟁 뉴스 때문에 고기를 끊다니, 논리적 비약처럼 보이시나요? 하지만 저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그 마음을 이해했어요.

육식을 끊자는 주장에는 여러 근거가 있어요. 건강 문제 때문에 육식을 줄이자는 의견도 있고요. 육식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지적은 눈길을 끌어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소를 키우는 바람에 숲이 파괴되고 온실가스가 늘어난다는 것이죠. “집에서 에어컨 끄고 더위를 참는 것보다 사람들이 소고기를 줄이는 쪽이 환경을 위해 나은 선택”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기를 아직 먹어요. 물론 맛도 한 가지 이유고요(지금 와서 아니라고 해봤자 아무도 안 믿겠지요), 제일 중요한 까닭은 음식 문화에 대한 경외심 때문입니다. 다양한 고기 요리에서 여러 세대에 걸친 연구와 노력을 읽을 수 있지요. 또 육식 문명의 흔적이 문학이며 종교며 역사에 배어 있어요. 고기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도, 목숨을 빼앗으며 미안해하는 것도 문화였습니다.

고기의 맛은 즐기지만 고기 먹는 일은 미안해하는, 이런 시선으로 ‘김태권의 고기고기여행’을 썼어요. 살코기를 떼어준 존재들을 잊지 않는 것, 먹히는 생명에 대한 예의. 옛날 옛적 사냥꾼들이 동물을 잡아먹으면서도 그 동물이 되살아나길 바라며 제사 지내던 마음을, 제 딴에는 헤아리는 과정이었어요. “어차피 죽일 거, 미안해한다고 무슨 소용이냐”며 저를 알량하다고 하셔도 반박할 염치는 없습니다만.

연재 중 떠오른 고민 하나 더. 오늘날 ‘공장식 축산’이 잔인한 일이라는 지적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대안으로 거론되는 방식 대부분이 ‘고깃값을 올리는 일’이라는 점은 마음에 걸려요. 부자들만 고기를 먹게 된다면 고기 소비가 줄긴 하겠죠.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도 여기 찬성할까요? 육식과 계급이라는 주제. 육식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이기도 했어요. <끝>

김태권(먹기 좋아하는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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