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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8 20:16 수정 : 2019.08.28 20:34

관광지 태종대 바닷가에 있는 해녀 포차 ‘태원자갈마당’. 박미향 기자



요즘 부산 세련된 카페 천지
하지만 오래된 식당도 매력 넘쳐
해녀 밥상 신선하고 맛나
문 대통령 단골집의 소박한 맛
슴슴한 만두 백반과 품위 있는 장어구이 등
아삭한 배가 일품인 육회비빔밥도

관광지 태종대 바닷가에 있는 해녀 포차 ‘태원자갈마당’. 박미향 기자
요즘 부산은 카페 천지다. 평범한 카페는 아니다. 짭조름한 바다 향이 바리스타의 비밀병기다. 동해가 코앞인 카페들에선 파도 소리가 문지방을 넘어들어온다. 여행자의 마음을 휘젓는다. 삶의 7부 능선을 억척스럽게 넘긴 이의 심장이 출렁인다. 파도는 속삭인다. “지금이라도 다 던지고 떠나라!” 하지만 여행자가 달곰한 감상에 젖기도 전에 과거로 이끄는 카페도 있다. 1950년대 쌀 창고를 개조한 ‘노티스’, 1940년대 적산가옥을 지금 식으로 바꾼 ‘카페 초량 1941’ 등 최근 몇 년 사이 경쟁하듯 부산엔 특이하고 세련된 카페들이 문을 열었다. 수백개가 넘는다. 2019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WBC) 우승자 전주연씨의 카페 ‘모모스’도 부산에 있다. 하지만 말쑥하고 힙한 카페만 지금 부산의 얼굴은 아니다. 묵묵히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노포(오래된 가게·식당)도 매력이 넘친다. 헌것만이 줄 수 있는 품격이 있다.

부산에도 해녀가 있다고요? 해녀 문화는 제주에만 있는 것 아니었나요? 누구나 ‘부산 해녀’란 말을 처음 들으면 퍼뜩 드는 생각일 게다. 3년 전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해녀의 삶’은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콘텐츠가 됐다.

지난 23일 오후 2시, 늦여름 햇살이 영도구 태종대 일대에 퍼졌다. 태종대 유람차 단우비의 출발지에서 도로를 따라 2~3분 걷자 간판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해녀 직속(즉석) 해삼 멍게 낙지 소라 개불 성게 전복 광어 판매합니다. 계단 밑으로 오세요. 태원자갈마당’ 낙지발 같은, 바닷가 쪽으로 길게 뻗은 계단은 흡입하듯 여행객을 빨아들였다.

3~4분 뒤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승 같지 않다. 오른쪽 바위틈에는 강태공이 도도하게 세월을 낚고, 그들 뒤로 솟은 바위에 박힌 난간엔 치마를 펄럭이는 20대 두 명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까마귀가 그들의 웃음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해변 왼쪽에는 거대한 그늘막이 펄럭인다. 그 아래 청년들이 빨간 개불을 씹어 삼키고 있었다. 바다를 송두리째 품은 듯한 힙한 해변 카페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릴 것 같은 20대들이다. “바로 앞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가 듣기 좋아 멋있는 곳”이라서 여자친구와 찾았다는 김도형(24·인천)씨는 “해녀 분들이 잘라줘서 그런지 멍게가 더 맛있다”고 말했다. 김씨 옆에 있는 이는 해녀 최동식(69)씨. 그가 웃으며 손님을 부른다. “오이소, 빨리 와 드이소!” 10살부터 어머니를 따라 물질한 최씨는 해녀 경력이 40년이다. “돌멍게, 꽃멍게 다 드셔 보이소. 맛이 달라예. (꽃멍게를 들면서) 얘는 덩치만 크지 알은 별로 없어요. 이렇게 먹어보이소. 달큰하죠.” 그가 바로 잘라 입에 넣어 준 멍게는 모눈종이처럼 보드랍다. 외할머니가 제주 사람이었던 최씨. “똥군이라고 들어봤어요? 우리 할매는 똥군이라.”

공기통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숨을 참고 소라, 전복, 문어 등을 따는 해녀는 숨의 길이와 잠수 깊이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잠수 능력이 떨어지는 늙은 해녀를 똥군이라고 부른다. “나는 중군쯤 되나? 이정옥, 그이는 상군이지.” 동료를 칭찬한다. 이정옥(64) 해녀는 “해녀가 있는 어촌계에선 천막 치고 장사하는 해너가 많다”고 말한다. 동삼동, 용호동, 미포동, 송정동. 청사동 등엔 해녀들의 먹거리가 있다.

태원자갈마당. 박미향 기자

태원자갈마당이 생겨난 지는 45년이 훌쩍 넘는다. 요리사 박찬일의 책 <백년식당>에 거론 된 노포만큼 늙었다. “천막 친 게 15년 전이라. 그 전에 고무 다라이에 놓고 팔았지.” 최씨가 전하는 그 시절 풍경이다. 태풍만 안 오면 1년 내내 영업한다는 태원자갈마당.

부산제주특별자치도민회 고행섭 총괄 부회장은 “부산 해녀는 제주에서 출가물질(다른 지역에 가 수입을 올리는 물질) 온 제주 해녀들이 정착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제주 해녀의 출가물질이 시작 된 때는 19세기 중반이다. 한국해양대 안미정 교수는 “19세기는 일본이 중국 등에 해산물을 수출하는 등 무역 네트워크가 형성되던 시기”라며 “부산은 그 중심이었다”고 한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부산엔 횟집 등이 꾸준히 늘었는데, 그 점도 부산 해녀의 존재 기반이 됐다.”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당시 부산엔 413명의 해녀가 살고 있었다. 어촌계 등에 신고 안 한 이까지 합치면 그 수는 당시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녀 편의시설을 갖춘 ‘영도 해녀 문화전시관’이 9월 말 개관 예정이다.

원조 삼락할매재첩국집. 박미향 기자

노포가 바닷가에만 있는 건 아니다. 부산의 서쪽인 사상구, 북구 등에도 마흔이 넘은 식당이 수두룩하다. 같은 날 밥때인 낮 12시. ‘원조 삼락할매재첩국집’(사상구 낙동대로 1530번길 20-15)에 낯선 이와 합석을 한 손님이 가득하다.

“우리 할매(시어머니)가 쉰살일 때 내가 맡았지. 옛날(1970년대)엔 할매가 다라이에 조개 팔려 다녔지.” 창업주인 유말임(2017년 작고)의 며느리 권영희(74)씨가 대를 잇고 있다. 그의 아들 신창렬(48)씨도 돕는다. 언뜻 보면 재첩국은 속절없이 무심한 맛이다. 반전이 있다. 먹는 순간 안다. 진하다. 다른 종류의 김치 3종과 고등어조림 포함 반찬이 5개다. “시시하게 장사하몬 어대 손님이 오나. 우리 할매 후했다. 조개 삶을 때 물을 작게 한다.(물을 적게 넣어 끓인다.) 김치, 된장 우리가 다 한다.” 1970년대 창업주는 남편이 낙동강 하구에서 잡은 조개를 수출업체에게 넘기기도 하고, 길에서 끓여 팔기도 했다. 계산대 뒤쪽 벽엔 문재인 대통령의 사인이 걸려있다. 45년 넘게 산 식당. 문 대통령의 젊은 한때를 채워준 소박한 재첩국과 뽀얀 밥이다. 부산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상호가 있지만, 이 집이 유명해지면서 퍼진 이름이다. 원조 격인 이 식당과는 관련이 없다. 가격은 7000원.

원조 삼락할매재첩국집. 박미향 기자

‘평양집’(북구 금곡대로 20번길 21)도 1만원이 넘지 않은 가격에 푸짐하면서 정갈한 밥상을 차린다. “우리는 다 버립니다. 절대 안 되지요.” 손님 중 한 명이 남은 반찬에 젓가락도 안 댔다며 재활용을 권유하자 주인 박승배(49)씨가 손사래 치며 말했다.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동네에서 생뚱맞은 이름의 평양집.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직접 빚는 만두다. 성인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만두 4개가 국에 담겨 나오는 ‘만두 백반’(7000원)이 인기다. 왕만두, 만둣국 육수, 만두피도 판다. 그의 어머니 김경순(79)씨는 30년 전 평양집을 열었다. 17년 전 지금 자리로 이사 왔다.

평양집의 ‘만두 백반’. 박미향 기자

부산에서 장어 한 점 안 먹고 떠나면 섭섭하다. 짚불장어가 명물인 곳이다. 장어촌도 있다. 1872년 문 연 ‘청송집’(사하구 하단동 845-28)은 부산 사람들에게는 꽤 알려진 곳이다. 창업주 황의명(83)·권미대자(5년 전 작고) 부부의 고향이 경북 청송이라 붙인 상호다. 대를 이은 주인 황선재(52)씨는 “어머니는 옛날에 숯불에만 구우셨다. 지금은 숯불과 오븐을 활용한다”고 말한다. 앉자마자 장어 뼈 등을 오랫동안 끓인 국물이 나온다. 애피타이저다. 침샘을 자극한다. 비린맛이 없다. “우리 집만의 양념을 넣어요.” 또 특이한 점은 장어 내장요리다. 묵처럼 만든 손가락 두 마디 폭의 얇은 내장요리는 별미다. 생강 절임엔 강황이 들어간다. 쌈채를 포함한 반찬이 10가지다. 1인분(2만5000원)도 판다. 장어전문 식당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다. 단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맛이다.

청송집. 박미향 기자

곰보식당. 박미향 기자

신선한 배와 양념이 잘 밴 육회가 한 그릇에 나오는 곰보식당(사상구 학감대로 260번길 7)도 가볼 만하다. 창업주가 몇 년 전 지금 주인에게 가게를 넘겼지만, 40년 넘은 역사의 맛은 유지하고 있다. 단정한 반찬 6가지다. 육개장을 닮은 쇠고기 뭇국을 포함한 육회비빔밥이 1만3000원이다.

노포를 돌다 보면 지는 해가 아쉽다. 맛의 여운은 오래 지속된다. 낡은 것의 미학이다.

부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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