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2 09:18
수정 : 2019.08.22 22:04
작은미미의 인도살이
인도에서 육식주의자로 사는 건 무척 고달프고 귀찮은 일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도인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기에 소고기를 구할 수 없다.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도인 인도에서 소는 신성한 동물이다. 특히 암소는 이곳에서 존재 자체로 ‘여신님’이다. 힌두교 신 중에 인기 순위 1위를 다투는 자비의 신 크리슈나가 지켜주는 게 바로 이 암소이기 때문이다. 차도에 소 떼가 길을 건너고 있으면 모든 차가 멈춰 서서 소님이 안전하게 지나가시기를 경건하게 기다린다. 소를 도축하면 종신형이라니, 먹거나 다치게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나라다. 죽어서 갠지스강에 화장할 수 있는 공식적인 동물은 소가 유일하다.
하지만 먹어도 되는 소도 있다. 버펄로라고 불리는 물소다. 아이러니하게 인도는 버펄로 고기의 최대 수출국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도 냉동실에 있던 버펄로 500g을 불고기 양념에 재워두고 나온 터다. 한우에 비하면 육질이 질긴 편(지방이 거의 없다)이라 키위나 파인애플을 섞어 줘야 한다. 버펄로라면 질색을 하는 한국 사람도 있다. 비린내 나고 질기다고 맛 평가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몰래 가져온 고기 떨어지면 이거라도 먹어 한다.
그렇다, ‘몰래’ 가져온 고기. 한국에 갈 때마다 한우를 밀반입해온다. 공식적으로는 반입 금지 품목이라 3년 전 처음 인도 국제공항에 70만원어치의 고기가 든 여행용 가방을 끌고 검색대를 지날 때는 정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인도 거주 외국인에 한해 인도 국제공항 직원들도 너그럽게 편의를 봐주는 걸 알고는 매번 고기를 실어온다.
한국에서 산 소고기의 인도행 여정은 다음과 같다.
① 인도로 돌아가기 며칠 전, 포장 부피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 10㎏ 정도 되는 고깃덩이 몇 개를 사 냉동한다. 바짝 언 고기는 부피가 준다. ② 비행기를 타기 몇 시간 전에 스티로폼 박스에 고깃덩이를 넣는데, 마치 오락게임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차곡차곡 넣는다. ③ 9시간 비행 동안 고기가 녹지 않기를 기도한다. ④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내려 고기가 든 여행용 가방을 최대한 신속하게 집으로 옮긴다. ⑤ 인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본격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해체 작업이 가장 힘든데, 살짝 녹은 고기를 몇 시간 소분하다 보면 손목이 아프다. 며칠 동안 피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정전도 잦아서 냉동실에 있는 고기는 수십번 해동과 냉동을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생기는 미생물들 덕분에 위장은 온갖 내성 강한 균들로 득실득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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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담그는 작은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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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는 어떨까. 인도에 있는 이슬람교도들은 당연히 돼지를 잡지도 먹지도 않는다. 그리고 힌두교도 대부분도 돼지를 먹지 않는데, 이유가 참 인도답다. 보통 돼지고기 도축은 불가촉천민들이 하는데, 불가촉천민이 손댄 돼지는 더러워서라고 못 먹는다는 것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돼지고기는 더운 날씨에도 쉽게 상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안 먹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에 사는 한국인은 꿋꿋하게 돼지고기를 먹는다! 수요가 적긴 하지만, 수입이 가능하기에 일반 마트에서는 베이컨도 판다. 한국 마트에서는 삼겹살과 목살, 심지어 등갈비도 판다. 물론 다 냉동이다. 생돼지고기는 인도에서 꿈꾸기 힘들다.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친구와 수다를 떨게 되었다.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은 그는 김치를 사고 싶어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열정적으로 전했다.
작은미미 다음 달이면 김장용 배추도 나올 거야! 같이 김치 담그자.
일본친구 와, 미미는 김치 잘 만드나 봐.
작은미미 (딱 한 번 ‘미미 이벤트’로 김장한 경력 있음) 하하하, 요즘 인터넷 레시피가 워낙 잘 나오니까. 그날 돼지고기도 삶아 먹자. 김치랑 돼지고기랑 같이 먹으면 정말 환상이거든. 물론 생돼지고기가 없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일본친구 어? 여기도 생돼지 파는 데 있는데?
작은미미 뭐? 인도에?
세상에나! 그때 느꼈던 희열이란!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인도에서는 축하할 일이다. 생돼지 파는 정육점 발견! 플래카드를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장 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인 친구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우리는 정육점으로 향했다. 구글 맵에서 확인해 보니 집에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곳에 있었다. 이름은 ‘잉글리시 미트 숍’(ENGLISH MEAT SHOP).
글·사진 작은미미(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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