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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1 20:20 수정 : 2019.08.21 20:30

경동분식의 백반. 사진 백문영 제공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경동분식의 백반. 사진 백문영 제공
뜨거운 더위는 옅어지고 ‘이제 가을이 왔나’ 싶을 때 온도계를 봤다. 섭씨 29℃를 가리키고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섭씨 30℃ 아래로만 떨어져도 시원하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웃겼다. 이 동네로, 저 동네로 ‘맛 투어’할 마음이 절로 생겼다.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동대문역 사이에는 작고 허름한 식당들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점심시간을 조금 빗겨난 오후에 이 골목을 슬슬 돌아다녔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마다 인쇄 공장과 인력 사무소, 작은 백반집들이 이어져 있었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찾은 간판이 ‘경동분식’이다. ‘배가 이렇게 고픈데 분식 따위로 허기를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범상치 않은 간판 모양새에 끌렸다. 허름한 데도 묘하게 정갈했다.

차림표에 적혀 있는 메뉴는 여러모로 기특했다. 김치찌개, 제육볶음, 오징어 볶음 같은 백반 메뉴부터 두부김치, 뼈 없는 닭발 등 술안주까지 두루두루 갖춘 꼴이 마음에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오이무침, 달걀프라이, 파김치, 생선조림 등 밑반찬이 쭉 깔렸다. ‘아직 주문하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점심에는 백반 메뉴를 판매한다”는 주인 할머니의 말이 들렸다. 두부김치나 닭발은 점심엔 먹기 힘들다는 뜻이다. 반찬은 소담하고 정갈했다.

‘그럼 그렇지, 아직 나의 맛집 촉은 죽지 않았구나.’ 뿌듯함이 몰려왔다. 고봉밥을 덜어 입에 넣었다. 슴슴하고 칼칼하게 끓인 김칫국을 떠먹고, 고등어조림도 밥 위에 얹었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 달걀프라이는 왜 볼 때마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할까. 파김치, 배추김치, 열무김치 등 김치만 3종류가 나오는 식당의 호기로움은 뭘까.

정말 익숙한 한 끼였다. 익숙해서 특별했고, 흔하지만 남다른 식사였다.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계산을 하려고 보니 도대체 이런 식사는 얼마를 지불해야 할지 궁금했다. “두 명이니까 만원.”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1인당 5000원인 셈인데 그저 황송한 기분만 들었다. 서울 시내에서 5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을까. “예약하면 저녁 시간에는 한우 차돌박이를 먹을 수 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말했다. “이따 다시 올게요.” 있어 주기만 해도 고마운 식당이 있다. 경동분식이 그렇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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