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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1 20:20 수정 : 2019.08.21 20:37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전업작가 생활 상상과는 달라
마감에 쫓겨 ‘배달앱’ 노상 클릭

쌓여가는 온갖 플라스틱 용기들
최근 플라스틱 대체 운동 활발

마구 사들인 싼 옷도 문제
반복하는 악순환 해결책은 절제

내가 생각한 전업작가의 이미지란 푸른 새벽녘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히 물세수를 한 뒤 누구보다도 정갈한 모습으로 키보드 앞에 앉아 뜨는 해와 함께 홀짝홀짝 커피나 물을 마시며 다섯 시간 정도 글을 쓴 후, 해가 중천에 뜰 때 즈음 (오븐에 구워 영양소를 보호하면서도 기름기가 쫙 빠진 메뉴의) 간단한 요리를 해 먹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피트니스 센터나 필라테스 센터에 가 두 시간 남짓 척주기립근을 강화하는 근력운동을 한 후, 독서를 하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 간단히 사교활동을 한 후 집에 들어와 오늘 쓴 글을 고치다 잠이 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양념 재료도 구매하고 요리 유튜브를 보며 파기름도 만들고, 브로콜리도 삶아 먹고, 단호박을 굽는 등 생난리를 쳐댔었다. 오후에 꼬박꼬박 피트니스 센터에 나가 설렁설렁 근력운동도 하고 프로틴셰이크도 챙겨 먹는 등 유난을 떨어댔다. 그러나 나의 건강하고도 우아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옥보다 무섭다는 마감 철이 닥쳐왔다. 지난달, 두 번째 소설집이 출간된 이후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도저히 소설을 구상할 만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았다. 마감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인쇄소 앞에서 원고를 넘겨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내 인생에 절대로 펑크는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나는 시간이 남을 때마다 닥치는 대로 원고를 썼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기는커녕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 작업시간이요, 내가 잠드는 시간이 곧 휴식시간이었다. 두 시간씩 세 시간씩 끊어 자고 일어나면 원고를 쓰고, 머리가 띵해지면 다시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 원고를 쓰고 허리가 아프면 잠깐 누워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이렇게 보름 정도를 살다 보니 휴식을 통해 간신히 되살려 놓은 나의 컨디션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암막 커튼을 쳐 놓은 채 사니 언제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고, 머리는 항상 띵하고 마음은 급한데 진도는 더디게만 나갔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배에서 신물이 올라오면 그제야 끼니를 찾게 되었는데, 오븐에 굽기는커녕 음식을 사러 나갈 여유도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다른 모든 한국인이 그렇듯 우주에서 제일 편한 ‘배달앱’이었다.

배달앱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1인 가구를 위한 배달 음식은 많지 않다. 주문을 하기 위한 최소 금액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부분 2인분 이상을 시켜야 한다. 메뉴가 두 개인 만큼 음식의 용량도 두 배이고 맛을 조절하기 위해서 사용된 각종 조미료며 나트륨을 들이켜면 어김없이 소화불량이 오기 마련이다. 두 끼에 나눠서 먹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식은 배달 음식 속에 굳어 있는 지방층을 보면 비로소 내가 먹는 음식에 얼마나 많은 기름이 포함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어찌어찌해서 배불리 먹고 한숨이라도 잘라치면 가뜩이나 큰 얼굴이 두 배가 되어 있기 일쑤다. 몇 주 동안 안간힘을 다해 식단 조절을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들어놔도 한 이틀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마련이다. 신체적인 차원에서의 문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두 끼만 배달 음식으로 때워도 정신을 차려보면 집 안에 엄청나게 많은 일회용 용기들이 쌓인다. 밥그릇에 국그릇, 반찬 용기와 일회용 수저까지. 사흘 정도 칩거한 채 음식을 시켜 먹으면 산더미처럼 용기들이 쌓이기 마련이다. 한창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별생각이 없다가 막상 글이 완성될 때쯤 내가 앉은 자리 주변을 보면 이 한 몸 편하게 살자고 이렇게나 많은 쓰레기를, 그것도 썩지도 않는 쓰레기들을 생산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곤 한다.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 지구 저 너머의 돌고래 뱃속에서 한국산 플라스틱 용기가 나온 일화는 이제 너무 유명해서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무한정으로 우리의 오염을 포용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어김없이 배달앱 결제 버튼을 누르는 나 자신을 멈출 수가 없다.

꼬박 6개월째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카카오톡 대화명은 ‘종이 빨대 너무 싫어요’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를 필두로 현재 많은 커피전문점에서 종이 빨대를 도입하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 종이 빨대의 형태나 질감이 휴지심과 유사하다는 내용의 사진이 유머밈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나 역시도 삼십 분만 커피에 담가 놔도 마법처럼 휘리릭 풀어져 버리는 종이 빨대를 편하게 느끼지는 못하는 처지이지만,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는지라 아예 빨대를 쓰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 입술이나 수염에 커피 조금 묻는다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은 아니니까.

일회용품, 특히 플라스틱 용품 사용을 저감하는 정부의 대책이 시행된 이후 확실히 곳곳에서 플라스틱 용품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윤리적인 소비와 트렌드에 민감하며 내가 속해 있기도 한(?) 출판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춰 각종 ‘에코’ 용품을 굿즈로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에코백, 에코컵, 텀블러 등등.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에코 용품조차도 너무나도 무분별하게 범람해, 당장 나만 해도 출처를 알 수 없는 공짜 에코백과 텀블러가 넘쳐난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다가 다회용품이 일회용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세랑의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의 주인공 한아는 서교동에서 ‘환생’이라는 옷 수선집을 운영하며 오래된 옷을 리폼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한다. 한아는 지구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자기 삶의 철학을 직업 선택에 그대로 반영해 자신의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살아가는, 보기 드물게 심지가 곧은 사람이다. 나는 예전부터 한아와 같은 사람들을 애정해오고 동경해왔는데 실은 내가 그런 삶의 철학이나 기준이 전혀 없고, 설사 있다고 한들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좁은 방 안에는 엠(M)사이즈부터 엑스엑스엘(XXL)사이즈까지 엄청나게 많은 티셔츠가 발 디딜 틈 없이 자리하고 있다. 폭식과 다이어트를 반복하며 족히 100㎏은 찌고 빠진 체중을 감당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싼 옷들이다. 패스트패션의 풍토 속에 함부로 사서 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얼마나 큰 공해인지 이제는 상식으로 모두가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더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싼 옷을 사는 습관도 멈출 수가 없다. 때때로 나는 그저 먹고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한아가 내 방을 본다면 기함을 하며 호통을 칠 것만 같다.

나는 나의 비좁은 원룸이 커다란 죄의식의 전당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마감의 불을 끄고 나니 지금 내 책상 주변에는 온갖 일회용 용기와 눈에 보일 만큼 많은 개체 수의 초파리들, 옷 무덤과 읽지 않은 책들까지. 나 하나 살자고 이렇게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니. 그리고 심지어 그 몸조차도 제대로 건사하고 있지도 못하니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다.

때때로 나는 내 몸에서 지구를 발견한다. 무기질이 부족해 손톱이 잘 부서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건선이나 지루 피부염 같은 만성 질환이 생겨버린 내 몸. 필요하고 쓸모 있는 것은 부족하며, 온갖 쓰레기들이 꾸역꾸역 점령하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구조물을.

이 모든 악순환은 결국 단 하나의 해결책밖에는 없는 것 같다. 절제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어쩌면 세상 가장 어려운 일. 이 때문에 나는 지금도 배달앱을 누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다짐하는 중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 말이다.

글 박상영(작가), 일러스트 윤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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