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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1 20:18 수정 : 2019.08.21 20:29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퍼니. 사진 블러디퍼니 제공

향이네 식탁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퍼니. 사진 블러디퍼니 제공

우리 집은 딸만 넷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어머니는 나름 노력하셨지만, 남동생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딸만 넷이 된 겁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1970년대는 지동설보다 강력한, 법보다 강한 원칙이었죠.

우리는 판을 자주 벌였어요. 일상이었죠. 마당에 돗자리 깔아 놓고 하는 소꿉놀이는 기본이고, 휴대용 가스버너에 떡볶이도 끓여 먹었어요. 역할극도 했습니다. 상상력이 뛰어난 셋째가 대본 비슷한 낙서를 가져오면, 부지런한 막내가 부엌과 거실을 뒤져 평소엔 보지도 못했던 물건들을 마당에 잔뜩 늘어놓았지요. 둘째가 적당히 진두지휘하면 첫째인 저는 그저 장군처럼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뛰어들었습니다. 우리는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됐습니다. 의사가 됐다가 선생님도 됐지요.

마당 한쪽엔 1m 높이의 돌담이 있었는데, 그 안엔 키 작은 나무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간혹 우리는 그곳에서 주먹 두 개만 한 구멍을 발견하곤 했지요. 수도꼭지에 호수를 꽂고, 그걸 정원으로 끌고 가 짓궂게 구멍에 넣었어요. 그리고 수도꼭지를 돌렸죠. 물이 콸콸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갔는데, 그러면 다른 구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어요. 쥐들이었죠.

이런 추억은 오정희 작가의 단편 <유년의 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쟨 멍청이니까 병자나 시켜. 작은 오빠의 말에 따라 내가 힘없이 드러누우면 작은 오빠는 의사, 언니는 천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 판은 힘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우리만의 판을 벌이곤 했지요.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운다든가, 맛집을 찾아가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의 판은 그렇게 제게 이어졌습니다.

최근에 저 같은 이가 많다는 얘기에 물개 박수부터 쳤습니다. 하지만 제 판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개그콘서트를 하고 함께 글을 쓰고, 운동을 한답니다. 여성들의 ‘판’, 그 무궁무진 놀이에 빠져 보시죠. 이번 주 주말은요!

박미향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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