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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1 09:33 수정 : 2019.08.08 06:36

‘마담 타이’의 ’마담매운 국수’. 매운 향신료 화자오 등이 살짝 들어가 독하게 맵진 않다. 박미향 기자

문전성시 레스토랑 문 닫은 요리사 이유석
소박한 국수 두 가지로 인생 2막 시작
30년 넘는 경력 요리 연구가 백지원
은근하게 매운 두 가지 타이 국수 선보여 호평
솜씨 발휘한 한 그릇 국수들···깔끔한 매콤함이 일품

‘마담 타이’의 ’마담매운 국수’. 매운 향신료 화자오 등이 살짝 들어가 독하게 맵진 않다. 박미향 기자
이탈리아에 파스타가 있지만, 국수는 아시아 음식 문화의 중심이다. 국수가 탄생한 중국, 겨울에도 찬 동치미에 면을 말아먹었던 한국, 전국소바협회가 있을 정도로 면 연구에 몰입하는 일본, 쌀국수의 천국 베트남, 각종 신선한 채소와 어우러지는 면 요리의 나라 타이 등 아시아 어디를 가도 독특한 국수를 만날 수 있다. 이런 나라를 여행했다가 맛본 국수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이도 많다. 하지만 희소식이 있다. 최근 실력 있는 ‘선수’ 두 명이 개성을 살린 아시아 국수를 세상에 내놨다.

■ 씹어도 삼켜도 줄지 않아요···유면가의 비앙비앙면

이유석(38)씨는 ‘잘 나가는’ 요리사다. ‘가스트로 펍’(미식을 함께 즐기는 펍)을 모토로 내세운 그의 식당 ‘루이쌍끄’는 공치는 날이 거의 없었다. 자영업자 열에 여덟은 문 닫는다는 요즘 부러움을 사고도 남았다. 배우 배용준, 강동원 등 미식가 연예인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 소개도 됐다. 그는 독특한 수란을 개발해 특허권도 취득했다. 그런 그가 지난 6월초 ‘루이쌍끄’ 문을 닫았다.

“어느 날 보니 6살 아들이 낯설 정도로 몰라보게 자랐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18년 6개월 동안 새벽 2시를 넘겨 들어갔어요.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놓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잔 아들이 안쓰러웠다. 그는 고민 끝에, 단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았다. “본래는 루이쌍끄를 천년만년 운영해 언제나 이곳에 오면 내가 있는, 마치 스시 장인처럼 되고 싶었지요. 하지만 막상 같은 음식을 60살, 70살까지 하려니 재미가 없더군요.”

‘유면가’에 파는 중국의 ‘비앙비앙면’인 ’유포면’. 면이 길어 특이하다. 박미향 기자

그는 밤 8시면 문 닫는 소박한 식당 ‘유면가’를 지난주 열었다. ‘면이 있는 집’, ‘유석이가 면 만드는 집’이란 뜻이다. 메뉴는 두 가지 국수. “좋은 음식을 계속 만드는 게 꿈”이라는 그는 어떤 음식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국수를 선택했다. ‘중식 문화의 밤’을 기획해 손수 만든 짜장면으로 파티를 했을 정도로 그는 국수를 좋아한다. “대중적이고 소박한 국수를 만들어 팔고 싶었다”는 그는 메밀막국수(8500원)와 중국이 고향인 ‘유포면’(1만1000원)를 차림표에 올렸다. 출시 전 그가 한 일은 국수 투어. 일본을 여러 차례 가 100년 넘은 소바 가게를 다녔고, 강원도 일대에 있는 막국수 가게는 빠짐없이 다녔다. “한 명태 막국수 집은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해요. 우리 음식 고수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죠.” 하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내고 싶었던 그는 메밀 함량을 조절하고 흑임자 가루를 조금 섞어 반죽했다.

이유석 요리사. 박미향 기자

탄성이 적당한 메밀막국수는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있다. 260g 면을 가득 덮은 양념은 배, 갖은 채소 등 13가지를 섞어 만들었다. 신기하게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고추장 양념은 잘못 쓰면 텁텁하다. 산뜻한 매운맛은 역시 고춧가루가 제격이다.

‘유포면’. 박미향 기자

중국 산시성의 성도 시안의 전통 국수인 ‘비앙비앙면’인 ‘유포면’(기름을 덮은 면)은 폭이 대략 5~7㎝로 넓적한 모양이다.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니 끝이 안 보인다. 200g인 면은 쌀가루, 밀가루, 양파 등을 섞어 빚었다. 오글거리는 칭찬을 서슴지 않는 매끈한 얼굴의 신사처럼 양념엔 기름 범벅이다. 비비자 은근한 매운맛과 상큼한 신맛, 고소한 맛이 감도는데, 고추, 화자오(마라탕의 재료가 되는 매운 중국 향신료), 마늘, 생강, 흑초, 땅콩가루 등을 버무려진 결과다. 청경채, 콩나물, 셀러리 등이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유면가’의 메밀막국수. 면 위에 올라간 돼지고기 수육을 곧 뺄 계획이라고 한다. 박미향 기자

“베이징에 사는 은둔의 고수에게 조리법을 배웠어요. 잘 재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연마할 생각입니다.” 그는 맛 앞에서 겸손하다. “막국수에 돼지고기 수육을 얹어봤는데, 뺄까도 생각 중”이라고 말한다. 그의 실험은 진행형이다.

그의 새 터전은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거리에 있다. 성동구가 2017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해 건물주 등과 상생협약을 맺은 지역이다. 고층은 없고, 낮은 벽돌 건물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가 여럿인 거리다. 면을 천천히 올릴 때 드는 기대감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거리의 풍경을 닮았다.

‘마담국수’. 박미향 기자

■ 숨겨진 보물 창고인가? 마담타이

비밀스럽다. 은근하다. 신비하다. 지난 26일 오후 3시에 찾은,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는 ‘마담타이’의 첫인상이다. 내비게이션은 도착을 알렸으나, 도무지 식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디선가 이국적인 향이 날아왔다. 고수 같았다. 달려드는 향을 따라 코를 벌렁거리자 마담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콕 박힌 꽃밭처럼 거리에 숨어 있었다.

문을 열자 널찍한 테이블이 한 개가 보였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 8명이 둘러앉으면 맞춤한 식당이다. ‘예사롭지 않은 위엄을 뿜어내는 작은 거인’이 마담타이의 정체였다. 33㎡(10평) 정도 되는 공간과 몇 가지 안 되는 메뉴는 ‘작지만’, 맛본 이들이 한결같이 ‘특별하다’고 평하기에 ‘거인’이다. 주인이 궁금하다.

‘마담타이’ 실내. 박미향 기자

“지루한 나날에 향신료 같은 생기를 더하고, 재밌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 열었습니다.” 주인 백지원(63) 요리연구가의 말이다. 그는 <이비에스>(EBS)의 요리 프로그램 <최고의 요리 비결> 등 여러 방송에 출연했고, <동남아시아 요리>, <모락모락 밥 한 그릇>, <졸깃졸깃 별미국수>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 관련 책을 출간한 전문가다. 이미 그의 팬인 이들이 귀동냥으로 지날 6월 중순 개업 소식을 듣고 찾는다고 한다.

백지원 요리연구가. 박미향 기자

“‘마담’은 저에요.” 그가 웃으면서 주방으로 안내한다. 30년 넘는 경력의 요리연구가의 부엌은 평범하고 소박했다. 눈에 띄는 건 육수를 우린 냄비. 뚜껑을 열자 시간의 공력이 스며든 달곰한 육수와 잘 익은 소고기 아롱사태가 덩어리째 담겨있었다. 이 집의 국수는 두 가지. ‘마담국수’(9500원)와 ‘마담매운 국수’(1만1000원). 두 개 모두 흥건한 국물 위에 잘 삶은 면이 올라가고 갖은 채소가 균형을 이룬다. 다만 ‘마담국수’는 은근하고 구수한 맛이 특징이라면, ‘마담매운 국수’는 이름 그대로 슬쩍 맵다. 그는 “딱 기분 좋을 만큼 매운맛”이라고 설명한다. 국수에는 얇게 자른 소고기 편육이 황송하게도 5쪽 들어갔고, 매운 국수엔 뭉텅이로 썬 큼지막한 고기가 육수 안에 있다.

‘마담타이’ 소품. 박미향 기자

‘마담국수’는 씹는 내내 면만큼 가닥수가 많은 숙주가 제 실력을 발휘한다. 면은 부드럽고, 숙주는 아삭하다. 죽이 잘 맞는 친구다. 이 국수의 특징 중 하나는 타이 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하는 간식, 돼지껍질 튀김이 면 위에 올라간다는 것. ‘마담매운 국수’는 화자오가 들어가는데, 혀를 꼬집는 듯한 불편한 매운맛이 아니다. 이 집엔 ‘마담 커리’도 있다. 물을 전혀 섞지 않고 양파를 오랫동안 끓여 만든 커리다.

세계음식연구가이기도 한 그가 사랑한 나라는 타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번 넘게 타이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 음식에 매료됐다. 귀국해 타이 음식을 재현하고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했다. 그가 말하는 타이 음식의 매력은 향신료와 과일. “향신료도 매력적이지만, 타이는 열대과일의 천국”이라며 “무엇보다 미식과 디자인의 수준이 높은 나라”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더 늦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은 하고 가자라고 생각했지요. 내 음식을 서빙하고, 그것을 먹은 이들이 위로받는 작은 식당을 여는 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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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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