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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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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Q 다른 여자가 있는 남편의 졸혼 요구
3년만 참고 이혼을 미뤄 달라는 자녀
자유로운 삶 위해 이혼하는 게 맞을까
A 이혼과 졸혼 사이 고민하는 이유 ‘남의 이목’
남들의 이야기가 당신을 망치지는 못해
‘덤덤하다’는 당신, 정말 상처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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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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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저는 다른 나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40대 초반 유부녀이고요. 남편은 지난해 제게 졸혼(법률적으로 결혼 상태를 유지하면서 실제는 별거 생활을 하며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것)을 요구했어요. 그는 일로 외국에 갔다가 한 여자를 만났어요. 출장 간 김에 여행을 했는데, 그때 만난 여자와 사귀고 있어요. 처음엔 당황하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담담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 만났지요. 제가 20대 초반일 때요. 그리고 남편은 제가 처음 잠자리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 후 우리는 결혼을 했어요. 벌써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좋을 일도, 나쁜 일도 함께하며 긴 시간 보낸 거죠.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관계였던 거죠. 일찍 결혼해서인지 요즘 사람치고는 아이가 많아요. 세 명입니다. 큰 애는 결혼하자마자 낳았지요. 그래서 곧 대학에 갈 정도로 컸어요. 막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아이들은 다들 독립적이고 성숙한 편입니다.
다시 우리 부부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우리는 8년 전부터 섹스리스 부부랍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지요. 하지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한국에 여느 부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남편도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진 않았어요. 어쩌다 보니 우리는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저는 지난해부터 혼자 돈을 벌어 공부하고 있어요. 남편의 도움을 전혀 안 받고 있습니다. 제 사정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어쨌든 남편은 그녀와 잘 만나고 있어요. 아이들도 그녀를 알아요. 심지어 함께 식사도 하고 잘 지내는 편입니다. 남편의 여자친구는 유치원생인 자녀가 있어요. 남편이 아버지는 아닙니다.
저는 이혼을 하고 싶으나 일단 참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제 삶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저는 이혼을 하지 않았으니 남자를 사귈 생각은 못 하고 있어요. 그런 저를 보고 친정어머니는 바보라고 합니다. 남편은 계속 졸혼을 얘기합니다. 사회적 이목 때문에 이혼은 일단 하지 말자고 해요. 지금 하지는 말자는 거죠. 막내는 우리에게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3년만 참고 살아달라고 해요. 참아달라고 말하죠. 남편은 일단 자기의 의견대로 관계를 유지하다가 나중에 제가 다른 이와 결혼하고 싶을 때 이혼을 해주겠다고 해요. 제가 연애를 해 결혼까지 진도가 나가면 그때야 이혼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몇 가지가 궁금해요.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졸혼의 단점이 궁금해요. 주변을 둘러봐도 졸혼한 이는 별로 없어요. 실제 졸혼하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니 선뜻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우리 부부는 이미 끝난 관계잖아요. 그런데 겉으로 무늬만 부부인 채 지내는 게 맞나요?
하지만 막내의 말이 마음에 많이 걸려요. 어차피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저는 몰입하고 있는 게 있는 상황에서 3년 더 버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결혼하고 싶은 이가 생겨야 이혼이 성립되는 셈인데, 이혼을 안 한 상태에서 남자를 사귀는 게 저는 불편해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이혼소송을 하는 게 맞을까요?
졸혼 요구에 당황스러운 여자
※ 위 사연은 독자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바탕으로 첨삭을 거쳐 재구성한 글입니다.
A 졸혼이란 ‘법률적으로 결혼 상태를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남남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죠. 결혼 아닌 동거라는 관계에 다소의 불안정성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졸혼 역시 그런 불안정성을 갖지요. 더는 상대를 신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가정이라는 시스템만 유지한다는 것이 어떻게 안정적일 수 있겠어요. 법적으로는 결혼한 상태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이혼한 상태이기에, 둘은 서로에 대한 영향을 아예 끊을 수도 없고 또 어떤 것까지 기대해야 하는지도 모호한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서로의 가족(부모)에 대해,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향후 이혼을 진행한다면 졸혼 시점 이후 형성에 기여한 재산의 분할 문제에 대해, 너무 많은 것들이 공중에 붕 떠 버리게 되죠. 물론 이 외에도, 많은 고민거리가 생겨날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세세히 문서화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습니다만, 민법상 졸혼이라는 관계 자체가 존재하질 않는데 이것이 과연 법률적 강제성을 지니기는 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 이제 잠깐 졸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잊고 당신 눈앞의 현실을 봅시다.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이 났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도 없어졌으며, 그 이유가 상대방의 외도이며 그것은 심지어 현재 진행형입니다. 당신은 경제적으로 그에게 종속된 상태도 아니고, 아이들도 이미 클 만큼 컸지요. 여기에 어느 것 하나라도,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당신이 계속 그의 아내인 채로 하루라도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요? 이럴 때 하라고, 이혼이라는 제도가 있는 건데요.
이혼이 아니라 졸혼을 택해야 하나 고민되는 이유는, 결국은 ‘남의 이목’이라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남편도, 아이도 같은 이유를 말하고 있죠. 이혼남이라는 이야기를 듣기가, ‘부모가 이혼했대’라는 이야기를 듣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물론 교포 사회는 더더욱 좁기에 이목 문제는 더욱 신경이 쓰이고, 아이가 한창 예민할 시기인 것도 고려할만한 요소인 것은 맞지요. 하지만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의 중요한 관계가 이미 파탄 상태에 이르렀는데, 남의 이목 때문에 이것을 껍데기 상태에서라도 유지해야 하는 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요. 졸혼을 할 경우 남들 앞에서는 별문제 없는 부부로 행세할 수 있겠지만, 그런 순간에조차 당신은 마음이 명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의 이목을 가장 우선순위로 놓는 삶이 가지는 분명한 단점이자 한계죠. 세상에도, 자기 스스로에게도 명쾌한 마음을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말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죠. 남자 없으면 세상을 못사는 거 아니잖아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그 기분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겁니다.
이혼을 감행한다면, 물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겠죠. 다들 남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이야기하라고 하세요. 그게 당신을 망치지는 못하니까요. 그것은 언제든 한 번은 당신이 치러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며, 그것을 미룬다고 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아이가 마음에 걸리신다고요. 신뢰와 사랑이 사라진 채 남들의 이목을 생각해 법적 관계만 유지하며 아무 문제 없는 척 연기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남을까요? 이 문제는 온전히 당신이 고민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솔직히 씁쓸합니다. 남편도 온통 자기 생각뿐이고, 아이도 온통 자기 생각뿐이라는 것이요. 다들 자기 입장만 이야기하는데, 당신이라도 당신만 좀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존중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허락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과정 그 자체 그리고 그를 통해 무엇을 얻어내는가가 우리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끼치죠. 졸혼은 관계가 파탄 났음에도 법적 관계를 법적으로 정리하지 않는 상태이며, 그래서 당신은 이 관계의 파탄을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될 겁니다. ‘지금은 덤덤하다’고 표현하지만, 그동안 상처가 왜 없었겠습니까? 남의 이목 때문에 선택하는 ‘차선책으로서의 졸혼’은, 당신이 당신의 아픔조차 제대로 진지하게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지 모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 부분이 당신을 더 힘들고 아프게 할 것 같아 걱정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세요. 남들의 입장보다, 나의 인생을 귀하게 여기세요. 새 남자를 만나기에 불편한 것을 신경 쓰기보다, 내가 내 인생에 대해 갖는 태도를 먼저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귀한 경험은 때때로 인생의 불행한 경험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찾아오며, 저는 지금이 어쩌면 그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곽정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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