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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7 20:34 수정 : 2019.07.17 20:41

이정연 기자가 드랙 아티스트 뽀뽀와 소다 캔디팝의 도움을 받아 얼굴의 윤곽, 눈썹 등을 과장해 꾸민 드랙 킹 메이크업을 했다. 사진 김지영 제공

커버스토리/드랙

여러 드랙 아티스트 공연 보고
직접 드랙 메이크업 나선 기자
정비사·농부 선택
과거 내 안에 갇혀 있던 페르소나 발견
드랙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정연 기자가 드랙 아티스트 뽀뽀와 소다 캔디팝의 도움을 받아 얼굴의 윤곽, 눈썹 등을 과장해 꾸민 드랙 킹 메이크업을 했다. 사진 김지영 제공
드랙 아티스트는 성별에 따른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이나 그것을 투영한 분신(페르소나)을 의상과 화장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드랙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며 알 수 없는 흥분감에 휩싸였다. 지난달 29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 드랙 프롬’, 7월6일 서울에서 열린 ‘드랙갱즈×하우스오브허벌’ 설명회에서 펼쳐진 여러 드랙 아티스트들의 공연에서 느낀 이 감정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무대 위 주인공에게서 온전히 전해지는 그 감정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의 몸짓’에서 오는 해방감이었다. 성별이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의상과 화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드랙’. 그렇다면 내가 완전히 드러내지 못한 정체성은 없는 걸까? 기자가 ‘드랙 메이크업’에 도전해 본 이유다.

생물학적 성별 여성, 성 정체성은 이성애자. 기자는 성 소수자가 아니다. 그래서 드랙 메이크업 도전이 조심스러웠다. 성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드랙’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을 스스로 던져봤다. ‘그렇다면 나는 드랙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나는 100%의 여성, 100%의 이성애자인가?’ 얻은 답은 ‘아니다’였다.

자신의 분신을 화장 등을 통해 드러내는 드랙 메이크업은 간단한 과정일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어떤 분신(페르소나)을 표현할까? 내 안에 갇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흘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수없이 기억 여행을 떠났다. “아이고, 남자애가 예쁘장하게 생겼네.” “너는 딱 톰보이(남성스러운 여성 어린이나 청소년)야.” 나의 ‘남성적’인 또는 ‘여성스럽지 못한’ 모습을 두고 하는 어른들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이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예쁜 여자아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는 기억은 선명하다. 그 욕망의 반대편에 있던, 어쩌면 여전히 내 안에 있을지 모르는 ‘남성스러움’을 드러내는 ‘드랙 킹’ 메이크업을 해보기로 한 가장 큰 이유다.

스스로 던지는 질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 남성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질문을 바꾸고서야 비로소 답을 얻었다. ‘남성이라는 옷을 입는다면 어떤 옷을 입어보고 싶은가?’ 그 답은 ‘정비사’ 또는 ‘농부’였다. 키보드나 두드리고 앉아있는 사람이 아닌 실제로 무엇인가를 만지고 만드는 사람을 동경했던 터였다.

지난 12일 저녁 드디어 드랙 아티스트 소다 캔디팝(소다)과 뽀뽀의 도움을 얻어 드랙 킹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첫 단계는 파운데이션으로 원래 피부색을 완전히 감추는 거였다. 피부색만 지울 뿐인데, 거울 속의 나를 깨끗하게 지우는 느낌이다. 참고할 만한 드랙 킹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던 뽀뽀와 소다는 본격적인 드랙 메이크업에 돌입했다.

이정연 기자가 드랙 아티스트 뽀뽀와 소다 캔디팝의 도움을 받아 얼굴의 윤곽, 눈썹 등을 과장해 꾸민 드랙 킹 메이크업을 했다. 사진 김지영 제공
눈썹을 먼저 그렸다. 굵게 그리고 진하게. 얼굴에도 굵은 선이 그어졌다. 광대뼈와 볼의 선, 콧대 등을 깜짝 놀랄 만큼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당연히 이제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얼굴 표현이었다. 항상 그 반대의 것을 추구했다. 화장은 1년에 10번도 하지 않지만, 어쩌다 화장할 할 때 눈썹은 더욱 가지런하고 가늘게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도드라진 얼굴선이 지나치게 ‘남성적’인 거 같아 그걸 감추고자 노력했었다. 끝없이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떨리는 손을 붙잡고 눈썹과 윤곽선을 다듬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화장을 가끔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조차 스스로 몰랐다. 얼굴 곳곳이 도드라지고 짙어지는 과정을 보니 오히려 내 얼굴의 선을 오히려 긍정하게 됐다. ‘그래, 이게 나지!’ 본래 얼굴의 재발견과 긍정. 기자가 느낀 드랙 메이크업의 뜻밖의 효과다.

보다 정교한 과정이 남았다. 눈가 화장이었다. “어떤 색을 써보고 싶어요?” 드랙 아티스트 소다가 물었다. 눈가 화장에 가장 짙은 색을 써본 게 옅은 자주색이나 옅은 갈색이 전부였다. 문득 떠오른 색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소다는 답을 듣고 짙은 초록색 색조 화장품과 다른 색조 화장품 여럿을 섞어 눈가에 올렸다. 드랙 메이크업이 완성되어 갈수록 ‘나’로부터 멀어져가는 느낌이었다. 이마의 윤곽, 턱 중앙과 입가의 선을 더하니 나는 사라지고, 나의 분신이 거울 속에 나타났다.

드랙 메이크업을 한 기자를 본 한 동료는 “또 무슨 체험을 하는 것이냐. 별걸 다한다”며 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어떤 ‘불편함’이었다. 전형적으로 아름답지도 않고, 여성스럽지도 않은 이미지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다른 동료는 아예 기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기분은 묘하고 짜릿했다.

이정연 기자가 드랙 아티스트 뽀뽀와 소다 캔디팝의 도움을 받아 얼굴의 윤곽, 눈썹 등을 과장해 꾸민 드랙 킹 메이크업을 했다. 사진 김지영 제공
정비사가 입을 법한 옷을 골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소매를 걷고, 전완근이 도드라지게 팔뚝을 내보였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 맞지 않아 감추기 급급했던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러내도 될 것 같았다. “여자가 뭐 하러 그렇게 근력 운동을 하냐.” “남자보다도 팔뚝이 굵겠다.” 최근 들었던 외모 평가가 불시에 떠올랐다. 외모 평가를 했던 사람은 눈앞에 없었지만, 나는 그들 보란 듯이 나의 분신을 표현했다. 메이크업과 촬영에 함께 했던 드랙 아티스트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절대 해보지 못했을 표정을 짓고, 자세를 취했다.

드랙 메이크업은 100%의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사이 어쩌면 그 밖에 있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는 어디쯤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단 한 번 ‘드랙 킹’ 메이크업을 해봤다고 나를 다 알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이 막 시작됐다는 거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 말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SC] 드랙 문화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

드랙 문화를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 체험할 기회가 점차 느는 중이다. 드랙 아티스트를 좋아하거나, 관련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눈여겨보면 좋을 정보들을 모았다.

퍼레이드와 콘테스트 성 소수자 축제가 열린지 20년이 넘었지만, 드랙 아티스트들과 드랙 문화의 지지자들이 모이는 자리는 이제 막 생겨나는 중이다. 서울드랙퍼레이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5월 두 번째로 열렸다. 서울드랙퍼레이드를 꾸린 드랙 아티스트 히지양은 올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드랙 퍼레이드는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와 같은 고정관념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의상, 메이크업을 통한 자기 발견이자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는 인권운동”이라고 밝혔다. 드랙 퀸 중심의 국내 드랙 문화에 균열을 가하는 움직임도 여럿이다. 그 중 가장 인기 높은 행사는 ‘드랙킹 콘테스트’다. 드랙 킹들의 데뷔 무대로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드랙킹 콘테스트는 지난 5월 열렸고, 번외 행사가 올해 말 열릴 예정이다.

드랙 메이크업을 배워보는 워크숍? 드랙 공동체 드랙갱즈가 드랙 문화와 볼룸 문화(성 소수자들이 모여 제시된 주제에 맞춰 의상과 춤, 외모 등을 뽐내고 승자를 가리는 경연) 속 요소들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워크숍을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드랙갱즈×하우스 오브 허벌’의 워크숍은 드랙 패션, 드랙 메이크업, 보깅 댄스(패션모델들의 포즈를 본 따 만든 춤) 등의 주제로 진행되며 오는 8월 말에는 워크숍 참가자 등이 모여 실제 경연을 펼치는 자리를 갖기도 한다. 자세한 정보는 트위터(@DragGanz)와 인스타그램(@dragganz)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드랙 아티스트로 데뷔하고 싶은 사람!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는 드랙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여럿이다. 1995년 문을 연 ‘트랜스바’부터 최근 2~3년 새로 문을 연 곳도 있다. 이 가운데 래빗홀 아케이드 펍에서는 신예 드랙 아티스트의 데뷔 무대를 볼 수도 있다. 매달 세 번째 주 금요일, ‘프레시 페이스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의 공연이 열린다. 드랙 아티스트를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이나,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열려있다.

이정연 기자

드랙(Drag) 드래그. 성별이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의상과 화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드랙 문화는 공연 문화, 성 소수자 문화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남성 동성애자가 의상과 화장을 통해 표현한 여성을 ‘드랙 퀸’이라 한다. ‘드랙 퀸’이 등장하는 영화와 뮤지컬이 인기를 얻으며 ‘드랙 문화 = 드랙 퀸 문화’로 여겨지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해다. 드랙 킹, 성별 또는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드랙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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