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26 21:49 수정 : 2019.06.26 22:06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퇴사 후 집 밖을 못 나간 나
결국 지루성 두피염 때문에 병원행

퇴사 후 꼬박 보름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은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놓은 ‘퇴사 후 버킷리스트(?)’를 바라보기만 하며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도 피곤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배달앱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끼니를 때울 수도 있고, 심지어는 커피를 포함한 디저트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찬란한 정보화시대의 축복이여! 딱히 가야만 할 곳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는지라 집 밖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몇 번이고 가옥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일단은 가장 큰 장벽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그리고 샤워.

결국 내 몸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더러움에 대한 강박도,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도 아닌 ‘통증’이었다. 머리를 오랫동안 안 감으면 가렵다 못해 아플 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젖은 솜보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틀고 따뜻한 물줄기 아래에 서니 나른하게 쑤시던 온몸에 긴장감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샴푸를 잔뜩 짜서 머리에 얹어 놓아도 거품이 잘 나지 않았다. 손끝에 뭔가 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뒤통수를 거울에 비춰 보니 두피 가장자리에 여드름처럼 발진이 나 있는 게 보였다. 두 번이나 샴푸를 하고 구석구석 씻으니 삼십분도 넘게 걸렸다. 밖으로 나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내가 아는 형태의 발진. 지루성 두피염이었다. 혹시나 해서 겨드랑이를 펼쳐보니 작은 건선까지 생겨버렸네.

결국 나는 의학적인 목적을 가지고 보름 만에 집 밖으로 나섰다. 일단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동네의 피부과. 10년 동안 크고 작은 (이라고 해봤자 점을 빼거나 커다란 종기나 사마귀를 레이저로 지진 정도이지만) 치료를 받아온 경력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환부를 보여주며 치료 방법을 물었다. 의사는 예상했던 대로 내가 걸린 두 가지 질환 모두가 완치의 개념이 없는 만성질환이며 그저 증상을 완화하는 차원의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컨디션을 관리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라는, 초등학교 2학년도 알 것 같은 의학 상식을 듣고 나자 나는 조금 심드렁한 기분이 되었다.

건강염려증으로 쇼핑 중독인 부친 생각나
나도 이비인후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다녀

약국에 가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연고를 받아 든 나는 어릴 적 아빠가 종일 온몸을 긁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등에 연고를 발라주던 엄마. 아빠는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연고를 바르고서도 낫지 않아 전국팔도의 온갖 명의를 찾아다니며 피부전문의와 한의학, 중의학까지도 섭렵하는 정성을 보였다. 물론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우리 가정의 재정 상황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요즘은 종편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강프로그램이며 홈쇼핑에 존재하는 그 많은 건강식품을 죄다 사들이고 있으니, 알 만하다. 심지어는 내가 독립한 이후로는 내 방의 모든 가구를 치우고 마트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선반을 두 개나 들여놓고 그 속을 온갖 건강식품으로 가득 채워 놨다. 건강염려증이 쇼핑 중독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고 지난한 여정에 나 역시 동참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려 했다. 일단 나는 핸드폰으로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지 않은 성분의 샴푸를 검색해 구매했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이비인후과. 보름 동안 자는 내내 한쪽 콧구멍이 꽉 막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역시나 비염이라는 흔하디흔한 만성질환의 이름을 대며 코뼈를 바로잡는 수술을 권했다. (이전에도 몇 번이고 권한 적이 있는 수술이었다.) 다시 비염 증상이 돌아오는 사람들을 많이 봐온 터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당도한 곳은 정신건강의학과. 이전에도 감정조절 장애와 불면 증세를 해결하기 위해서 몇 번 들렀던 곳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갔는데,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결국 나는 병원 서가에 꽂힌 정서적 결핍과 관련된 여러 책을 읽었다. 책들의 대부분은 어릴 적의 양육 환경과 유전자를 정서적 결핍의 원인으로 꼽고 있었다. 역시나 모든 것이 부모의 탓이군. 괜히 탓할 구석이 생겨 기뻐진(?) 나였으나, 그 기쁨도 잠시, 꼬박 두 시간 동안이나 병원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결국 간신히 진료실에 들어간 나는 전문의에게 퇴사 후 내가 겪었던 증상을 모조리 쏟아냈다.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그는 그간 너무나도 몸을 혹사해온 탓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반작용일 수 있다며 인생에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전문의다운) 조언을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 동안 나는 단 하루도 쉬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중에는 대개 마감을 하기 위해 글을 썼으며, 주말에는 늘어지게 오후까지 낮잠을 자기는 했으나, 마음만은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단 한순간이라도 내 마음으로부터,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아니 모든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의사에게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는지, 그러니까, 종일 몸을 혹사하면서도 폭식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고, 나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같은 생활 패턴을 반복하다 결국에는 일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생업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며, 결국에는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된 순간조차 자기혐오에 빠져든 채 잠만 자게 되는지, 물었다. 의사는 이런 현상의 원인은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며, 유년기의 정서적 방치나 환경적인 요인, 심지어는 유전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의사 분석 “유전도 한 원인일 수도”
부모와 다른 체중, 다른 유전자 영향인가?

또 유전이야?

도대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정해져 있는 걸까. 한 무더기나 되는 약을 타오며 나는 내 어릴 적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부모님은 언제나 열심히 일을 하거나 아니면 집에 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 오후가 되도록 일어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딘가에 미친 듯이 열중하거나 지친 채 누워 있는 모습의 무한 반복. 그것은 내가 지난 십년간 반복해왔던 일상의 패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과 모든 게 닮은 것은 아니다. 기왕에 유전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 억울한 일은 이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둘 다 완벽히 정상체중, 심지어는 나이에 비해 조금 저체중인 분들이시다. 태어나서 한 번도 정상체중의 범주를 벗어나 본 적이 없으며,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 언제나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어릴 적의 나 역시도 덩치가 있는 편이기는 했지만, 이토록 비만한 적은 없었다. 평생 동안 비슷한 체중을 유지하는 삶만을 살아온 그들은 100kg이 넘게 살을 찌고 뺀 나의 현실을, 내 노력이나 내 공포, 나의 절망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살찐 나의 현실,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 때문에 명절이나 가족 행사 날 부모님이나 친척을 마주하는 게 내게는 일종의 공포나 다름없다. 오른손잡이들만 가득한 나라에서 홀로 외로운 양손잡이의 싸움을 하는 기분이랄까.

한번은 본가에 내려갔다가 기이한 일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속옷만 입고 욕실 밖으로 나와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티브이를 보다 내 몸을 흘끔 바라본 엄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스스로를 방치했으면 그 지경(?)이 될 수 있냐며.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며 실은 나를 책망했고, 나는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하던데, 어찌 나를 낳은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반쯤 가진 내 몸을 보고 눈물까지 흘린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울 정도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화를 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남의 몸을 보고 우는 건 실례 아냐?

약 한 줌을 집어삼키고 폭식하지 않은 채 무사히 잠들기를 바라고 있는 지금, 나는 또다시 유전자의 신묘함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아빠의 의존적이고도 중독적인 성향과 엄마의 감정기복과 운동신경 없음이 골고루 섞인 합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아빠에게는 주식이나 투자, 쇼핑 중독으로 발현되었던 의존적 성향이 내게는 ‘폭식’으로 발현되었으며, 엄마의 조울증과 불면이 합쳐져 지금의 고도비만인인 내가 완성된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온몸이 유전자의 증거임을 절감하며 조상 탓을 할 거리가 한 가지 더 늘었다는 사실에 내심 기쁜 마음이다. 그래 봤자 내 돈 주고 산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정말로 굶고 잘 생각인데, 도대체 왜 잠은 오지 않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억지로라도 눈을 감아볼 생각이다.

글 박상영 작가, 일러스트 윤수훈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