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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6 21:48 수정 : 2019.06.26 21:58

계림원 누룽지통닭구이. 사진 백문영 제공.

계림원 누룽지통닭구이. 사진 백문영 제공.
술과 함께 먹는 고기야말로 하루에 다섯 번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처럼 더울 때 자신이 없어진다. 뜨거운 불 앞에서 고기를 굽는다는 생각만 해도 등줄기에 땀이 솟구친다. 하지만 더워도 고기가 정말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직접 고기를 굽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향한다.

지하철 2호선과 4호선, 5호선이 연결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낮과 밤을 가릴 것 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렇게 더운 날은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싫다”고 투덜거리는 친구와 함께 향한 곳은 동대문 바로 앞에 있는 ‘계림원 누룽지통닭구이’이다.

“체인점이지만, 동대문지점은 남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친구에게 장담하며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도무지 통닭을 파는 집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시끄러운 거리였다. 간판을 찾아 빙글빙글 헤매다 ‘동북풍미분식’이라는 중식당 옆,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골목 입구에 간판을 발견했다.

메뉴는 무척 단순하다. ‘닭이 모여 있는 숲’이라는 뜻의 상호 ‘계림원’처럼 ‘누룽지 통닭’, ‘치즈와 옥수수가 들어 있는 치즈 콘닭’, ‘매콤한 불닭’ 정도다. “기본 누룽지 통닭부터 한 마리 먹고 시작하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맥주 500cc 두 잔 주세요”라고도 외쳤다. 주인은 주문을 듣자마자 종일 장작불에 빙글빙글 돌려 구운 닭을 뜨겁게 달군 철판에 얹었다. 10여분이 지나서 나온 누룽지 통닭의 위용은 엄청났다. 닭을 반으로 가르자 그 아래 깔린 누룽지가 철판에서 지글거리며 익고 있었다. 소리부터가 남달랐다. “미리 닭을 다 분해하지 말고 먹을 때마다 찢는 게 좋다”는 주인의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닭을 뜯기 시작했다. 바삭하고 촉촉한 닭 껍질, 부드럽게 입안에서 풀어지는 닭고기의 식감은 장작불만이 낼 수 있는 맛이다. 유독 이 지점에서 파는 통닭은 주인의 섬세한 손길이 닿아 맛이 특별했다. 무 역시 남달랐다. 직접 담근 무 맛은 한 업체에서 여러 체인점에 공급하는 무와는 맛이 달랐다. 동치미를 먹는 듯, 피클을 먹는 듯 시원하면서도 새콤했다.

요즘에야 누룽지 통닭을 파는 곳에서 열무김치를 주는 집이 많아졌지만, 사실 닭고기와 열무김치의 조합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번 먹어보면 안다. 아삭하고 청량한 열무김치와 기름지고 쫀득한 닭고기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 맛에 빠지면 열무김치가 없이는 닭고기를 먹을 엄두가 안 난다. 보드라운 닭 다리 한 입, 열무김치 한 입, 기름이 한껏 밴 바삭한 누룽지 한 입을 입안에 털어 넣으면 피서지에서 휴양하는 것 같다. 한껏 부른 배를 두들기며 “고기는 역시 남이 구워주는 것이 제맛이다”이라고 중얼거린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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