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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씨는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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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
지금도 롱런 중···비결은 인문학
“패션을 보면 그 사람 알 수 있어”
자세나 태도도 스타일링 영역
은퇴 후 “어슬렁거리는 삶”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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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씨는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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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6일~2019년 6월6일, 23개월의 여정이 끝났다. 스타일리스트 김성일(50)은 인터뷰어가 되어 사람 여행을 시작했다.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눴다. ‘김성일이 만난 완소피플’이 2년의 시간 동안 소개한 팀은 39개. 배우, 코미디언,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 패션 디자이너, 음악가, 운동선수, 정치인, 영화 제작자 등 그가 만난 인터뷰이의 스펙트럼은 양팔을 벌려 가늠해도 닿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김성일, 그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로 20여년 쌓아온 공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ESC는 인터뷰어 김성일과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됐다. 그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박미향 ESC 팀장이 인터뷰어 김성일이 아닌, 인터뷰이 김성일을 만났다. 지난 13일 그와의 한 인터뷰는 따뜻하고 즐거웠던 시간으로의 여행이었다.
박미향(이하 박) 첫 번째, 두 번째 인터뷰는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김성일(이하 김) 첫 번째가 이미숙 배우였지. 오랜 인연인데, 내가 ‘완소피플’ 시작하면서 “누나처럼 파워풀한 사람이 나와서 힘을 실어줘야 해”라고 부탁했더니 바로 “알았어”라고 멋있게 수락해줬어. 정말 고마웠지. 두 번째 만난 완소피플이 박나래, 장도연, 허안나였을걸?
박 맞다. 인터뷰한 뒤에 다들 잘됐다.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면서 워낙 트렌드에 민감하니 뜰 걸 내다본 거 아닌가?(웃음)
김 코미디언들이 무대나 프로그램 밖에서 다 재미있고 밝은 건 아니거든. 그런데 그 친구들은 만나면 정말 유쾌하고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져. 내다봤다고까지 말하기는 좀 그렇고, ‘잘 될 거 같다’고 예측은 했었지. 그런데 그 정도로 잘될 줄을 몰랐어.
박 인터뷰하기 어렵거나 힘든 사람은 없었나?
김 코너 이름이 ‘완소피플’이잖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주로 인터뷰하다 보니 그런 어려움은 크지 않았어. 잘 모르는 사람을 할 때는 좀 힘들긴 했는데, 많지는 않았지. 아! 표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아예 모르는 사람이긴 했는데, 인터뷰가 정말 즐거웠어. 예술과 패션을 사랑하는 그의 면모를 들여다봤는데, 정말 매력 있더라고.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면서 정치인들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어. 실은 스타일링을 해달라는 정치인들 요청이 많았어. 내가 정중히 거절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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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을 얘기할 때 진지한 표정의 김성일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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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왜 거절했나? 좋은 기회 아닌가?
김 나와 작업을 많이 하던 사진작가가 정치인 사진을 찍는데 스타일링을 내게 의뢰했었지. 당시 보수 진영 대선 후보였어. 그런데 조금 부담이 되더라고. 내가 특정 정치인을 스타일링했다고 하면, 그 사람이나 그가 몸담은 정당을 내가 지지한다고 볼 거 같았어. 나는 진보든 보수든, 어떤 한쪽을 지지한다기보다 어떤 사안을 보고 ‘합리적’인 쪽을 따르는 사람이거든. ‘밸런스’(균형)가 내 삶의 모토야. 무엇이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삶이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나’ 위주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소통)을 하면서 ‘나’와 ‘너’(타인)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게 필요해. 소통을 통한 밸런스는 스타일리스트가 갖춰야 할 덕목인데, 이게 나이 들수록 점점 중요해지더라고.
어느새 첫 번째 완소피플 인터뷰에서 정치로 이야기가 옮아갔다. 그와 하는 정치 이야기는 지루하지가 않다. ‘스타일로 보는 정치인’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더욱 빠져든다. 유망 대권 주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에게 있어 ‘스타일링’은 사람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도구다.
박 정치인의 패션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일까?
김 여러 번 봐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보이지. 어떤 정치인은 겨울에 슈트 위에 카멜색 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둘렀던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강한 거지. 또 다른 정치인은 패션이 확실히 과거와 달라졌어. 자신감이 커진 거야. 스스로 노출하고 싶은 생각이 강한 정치인, 자신이 주목받는 줄 정확히 알고 있는 정치인,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는 정치인 등등…. 오래 정치를 한 사람은 정치적 입지에 따라서 스타일링이 변하기도 하지.
박 정치인들 스타일링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거 같나?
김 자세나 태도도 스타일링 영역이야. 패션과 태도가 ‘딱 떨어진다’ 소리 들을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매력이 없으니까, 나는 조금 그 사람의 분위기를 흐트러트릴 거야. 2% 정도는 부족한 모습이 보여야 하거든. 그런 ‘분위기’를 스타일링하고 싶어. 옷이 전부가 아니야. 배우들이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를 하잖아. 드레스 입고 걷는 방법, 옷자락 잡아 올리는 손동작, 손을 흔드는 모양새까지 조언을 해주지. 그게 그를 드러내는 태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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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함과 개성이 함께 어우러진 김성일 스타일리스트 패션.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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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링학(學)’ 강의를 드는 기분이다.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듣게 된다.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에게서 듣는 귀한 스타일링 강의니 놓칠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든 의문. 어쩌다 그는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가 된 걸까? 그가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까지 들으니 그 궁금증이 더욱 커진다.
김 어렸을 때부터 워낙 꾸미는 걸 좋아했어. 그래서 의상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집에서 반대했지. 국어는 워낙 좋아해서, 국문과를 갔는데… 국문과에서 한문이 있는 걸 간과했지 뭐야.(웃음) 3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와서 복학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았어. 그때 아르바이트 정보지를 보다가 패션 디자인 학원 광고를 봤어. 시대에프디에이(FDA) 광고였는데, 그 광고가 계속 머리에 남더라고. 어머니에게 나중에 광고 쪽 일을 하고 싶은데 학원을 다녀야 하니 지원을 해달라고 했지. 거짓말한 거지.(웃음) 시대에프디에이에 ‘패션 코디네이터학과’를 다니고, 대학 졸업하면서 1993년에 의류 브랜드 ‘미치코 런던’에 입사했어. 1995년에는 성도어패럴이라는 패션 회사에서 상품기획자 겸 디자이너로 일했지.
박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한 때랑 좀 차이가 있네?
김 멀쩡하게 일하다가 1995년에도 훌쩍 영국 런던으로 갔어. 성도어패럴서 일하는데 스스로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 거야. 6개월 정도만 있으려다 유럽의 문화를 더 알고 싶어서 조금만 더 있자, 하다가 2년을 보냈지. 정말 좋았는데, 진짜 힘들기도 했어. 하루 1파운드로 버텼거든.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집에 가는 길에 펍에 들러서 1파운드짜리 하프 파인트 맥주 한잔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많았어. 그렇게 힘들었어도, 런던 다녀온 뒤 20년과 런던에서의 2년을 바꾸지 않을 정도로 소중했어. 아마 그 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은 없지 않았을까?
박 영국에서 돌아와서 바로 취업을 한 건가?
김 여러 브랜드에서 제안이 와서 면접도 보고 그랬지. 그러다 패션 사진가 중에 톱을 달리는 도프 김용호 대표한테서 연락이 왔어. 패션 광고 기획하면서 패션 코디네이션도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고. 재미있겠는 거야. 그래서 영국에서 돌아온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을 거기서 일했어. 그때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도 없었지. 그냥 ‘코디’라고 부르던 때였어.
박 그럼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을 처음 쓴 이가 김성일?
김 그렇지. 김용호 대표에게 “영국에서는 스타일리스트라는 게 있던데요?”라고 했더니, “그럼, 명함에다 그렇게 넣어”라고 하셨어. 그래서 명함에 영문 직책 써넣는 곳에 ‘스타일리스트’라고 적었지. 지금은 다 알지만, 그때는 도대체 스타일리스트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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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함과 개성이 함께 어우러진 김성일 스타일리스트 패션.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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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가까이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홈쇼핑 채널에서 진행자로 7년째 롱런하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20년 된 인연이 수두룩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그는 느리고 깊게 관계를 맺는다. 그만의 어떤 비결이 있을 법하다.
박 나도 기자 생활을 오래 했지만, 인연을 길게 유지하기란 쉽지가 않더라.
김 원칙이 있다. 친구로 만난 사람과는 일을 같이 안 해. 인간 대 인간으로 좋은 관계였는데, 사업적인 부분이 얽히면 서로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 그런데 일로 만나서 친구가 된 사람들은 쭉 같이 일해. 이미숙, 김남주, 유호정, 박진희 모두 그런 인연이지.
박 톱의 자리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그 자리에 길게 머무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 아닌가.
김 열심히 했고, 거기에 운도 작용했지. 20년 전이면 스타일리스트가 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는데, 그때 패션잡지가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 여성지에서 패션지로 중심이 옮겨간 거야. 2000년대 초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이어 스타일리스트가 대중매체에서 조명받기 시작했고. 그리고 한 가지 더 꼽자면, 인문학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됐어.
박 인문학?
김 스타일리스트는 광고주, 감독, 배우 등등의 이견을 조율하면서 내 색깔을 집어넣을 줄 알아야 해. 그들 사이에서 소통하면서 은근히 내 의견이 스며들게 해야 일이 수월해지지. 나는 그게 내가 인문학인 국문학을 전공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 인문학은 결국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잖아.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고.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그래서 패션 디자인만 공부하지 말고,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박 트렌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할 텐데, 나이들면서 좇아가기가 힘들지 않나?
김 요즘 힙합은 좀 힘들더라고. (웃음) 끊임없이 예술이나 대중문화 전반을 들여다봐. 뮤직비디오, 노래, 책, 영화, 만화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편이지.
박 최근에 본 영화나 책은?
김 최근 일본 영화 <내 이야기>를 보고 정말 감동했어. 책은 역사서를 많이 보는데 그 시대 복장 등을 살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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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을 얘기할 때 진지한 표정의 김성일씨.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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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치열함은 현재진행형이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를 찾는 전화가 수차례 왔다. 일 중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미래와 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김 은퇴를 하고 나면 아주 평온하게 살고 싶어. 나를 ‘인간 김성일’로 보는 사람들과 함께. 워낙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면서 치열하게 살아서 그런가 봐. 어슬렁거리는 삶, 그게 내 꿈이야.
박 물욕이 참 없어 보여 정말.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한테 값비싼 패션 아이템을 선뜻 선물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지.
김 안 그래도 얼마 전 이사를 하는데 옷 정리를 해야겠더라고. 지인들 불러다 갖고 싶은 거 챙겨 가라고 했더니 어떤 친구는 여섯 보따리를 챙겨가더라.(웃음)
박 마지막으로 ‘김성일이 만난 완소피플’, 어땠나?
김 정말 좋았어. 나는 항상 주인공을 돋보이게 돕는 ‘스태프’ 역할이었잖아. 그런데 ‘김성일의 완소피플’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잖아. 인터뷰이 섭외도 내가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지고…. 이제 마지막이지만 또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연락할지도 몰라!
정리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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