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12 21:39 수정 : 2019.06.13 00:53

식품 전문가 박준우씨와 이수정 디림대학교 겸임교수가 시음한 블루보틀의 여러 가지 커피들. 박미향 기자

지난달 초 문 연 미국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2시간 대기 시간은 기본···화제 만발
진짜 맛 분위기 궁금해
식품 전문가 박준우, 이수정 방문 시음해 보니“
“커피에 독특한 문화 얹어 인기”

식품 전문가 박준우씨와 이수정 디림대학교 겸임교수가 시음한 블루보틀의 여러 가지 커피들. 박미향 기자
4. 이 숫자는 미국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1호점의 개업 첫날 기록 중 하나다. 사람들은 4시간 줄 서서 블루보틀 커피를 마셨다. 지난 7일에도 긴 줄이 건물 한쪽을 꽁꽁 싸맨 듯 붙어있었다. 오전 10시30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지만, 궂은 날씨는 사람들의 ‘블루보틀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2시간30분이 지나서야 겨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 앞에 있는 빨간 건물 블루보틀 위로 영화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처럼 지하철이 몇 십분 마다 지나갔다.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에스엔에스를 뜨겁게 달군 블루보틀은 해시테크 ‘#블루보틀’만 수천개다. 다시 찾은 지난 9일에도 줄은 여전히 길었다. “서울숲 온 김에 사진 찍으러 왔다. 일본에서 경험한 적 있어 관심이 갔다.” 40대 김유라씨는 외관만 찍고 떠났다. 20대 직장인 장아무개씨는 블루보틀의 메뉴 ‘뉴올리언스’ 한 잔을 들고 건물 앞에서 사진 찍기 바빴다. “유명하다고 해서 왔어요.”

도대체 ‘파란병 다방’ 블루보틀의 매력이 뭐기에 이런 소란이 벌어졌을까? 지난 9일 요리사 박준우씨와 대림대학교 이수정 겸임교수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박준우씨는 방송 등에서 깊이 있는 음식 얘기로 팬층을 확보한 요리사다. 프랑스 등에서 수학한 소믈리에 출신 이수정 교수는 15년 경력의 커피와 와인 교육가다.

기자 두 분 모두 뉴욕과 일본에 있는 블루보틀 매장을 경험하셨다.

박준우(이하 박) 뉴욕에 있는 매장 두 곳을 갔다. 매우 작았고, 아기자기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2인용 테이블 몇 개와 브루잉 바가 있었다.

이수정(이하 이) 도쿄의 아오야마와 신주쿠 지점을 2~3년 전 다녀왔다. 당시 장인정신에 빛나는 ‘3대 이어 하는 카페’ 등을 탐방 할 때였다. 일본의 20대는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일본 블루보틀은 명가와 글로벌 브랜드를 합친 느낌이었다. 모던하고 밝은 분위기가 좋았다.

기자 우선 드립 커피부터 마셔보자. 이곳의 바리스타는 25명이다. ‘자이언트 스텝’①(5200원)은 원산지가 우간다, 파푸아뉴기니, 수마트라인 원두를 블렌딩 한 것이다. ‘케냐 키’②(6300원)는 케냐 싱글 오리진(단종 커피)이다.

②는 케냐 원두 특유 밝은 산미감이 좋다. 마실수록 부드럽게 다가오는 산미감이다. 자극적인 산미가 아니라서 대중적으로 큰 거부감이 없다. 향도 좋다. 브루잉(Brewing·추출)을 잘한 거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물맛이 느껴진다. 아쉬운 지점이다. ①은 확실히 ②와 다르다. 강배전에서 느껴지는 강한 쓴맛과 스모키 향이 있다.

②는 무난하다. 적당한 산미가 좋다. 둥근 느낌이 있어 자극적이지 않다. ①은 보통 미팅할 때 적당히 고르는 커피와 비슷해 보인다. 강한 쓴맛과 담뱃잎 맛이 조금 난다. 거친 타닌 좋아하는 와인 마니아나 강배전 커피 즐기는 이들이 좋아할 듯하다.

기자 7일엔 ‘스리아프리카’ 블렌딩 드립 커피와 ‘온두라스 산타 비’ 싱글 오리진 커피를 마셨다. 강한 쓴맛은 별로 못 느꼈다.

‘스리아프리카’는 일본에도 있다. 3가지 원두 캐릭터를 녹이겠다는 블루보틀의 철학이 녹아있는 듯하다. 블렌딩 커피는 그 카페의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캐릭터는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거다. 여러 가지 선택지를 주는 점이 좋다.

7일 맛본 그 두 가지는 차이가 확실히 컸다. 하나는 박하 향이, 다른 하나는 계피 향이 났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양한 고객을 흡수하려는 듯하다.

박준우(사진 왼쪽)씨와 대림대학교 이수정 겸임교수. 박미향 기자

기자 우유가 들어간 6개의 커피를 마셔보자. ‘헤이즐넛 블렌딩’(과테말라·브라질·컬럼비아) 라떼③(6100원)와 카푸치노④(5700원), 지브롤터⑤(5500원)와 싱글오리진 라떼⑥(7200원), 카푸치노⑦(6800원), 지브롤터⑧(6600원) 등을 말이다. ‘라떼->카푸치노->지브롤터’로 갈수록 우유의 양이 적다. 지브롤터는 ‘투샷’이라고 한다.

방울이 보인다. 스티밍(steaming·열처리) 등은 바리스타 기술이다. 스티밍할 때 공기 주입과 롤링(혼합)을 얼마만큼 하느냐가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도 살아있어야 한다. ③은 롤링이 잘 됐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려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기자 맛은 어떤가?

6가지가 다 극명한 차이가 있다. 블렌딩 조화는 좋다. 라떼는 우유량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부드럽다. 중남미 원두 블렌딩이라서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많이 난다. 블렌딩 중에서는 ④이 가장 맛있다. 유리잔인 지브롤터는 빨리 마시라는 안내를 하면 좋겠다. 수다 떨다 시간 가면 온도가 너무 낮아져 제맛을 못 느낄 수 있다. 지브롤터 커피가 블루보틀의 핵심 메뉴다.

블렌딩 3가지 맛은 비슷하다. 우유의 질이 중요할 거 같다. 국내 커피 전문점들은 비슷한 유제품을 써서 맛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원두 향미 더 느끼고 싶다면 드립 커피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게 낫다.

다른 곳과 블루보틀이 다른 점은 ‘우유 들어간 싱글 오리진 마셔봐라’고 제안하는 거다. ⑥, ⑦, ⑧은 캐릭터가 확연히 다르다.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캐릭터가 잘살았다. 재밌고 맛있다.

③, ④, ⑤은 우유에 커피 들어간 거 같고, ⑥, ⑦, ⑧은 커피에 우유가 들어간 것 같다. 커피 향이 받쳐줘서 좋다.

⑥과 ⑦의 차이도 확연하다. ⑥은 부드러운 산미가 느껴진다. ⑦은 신맛이 더 도드라진다. ⑦과 ⑧은 비슷하다.

기자 에스프레소 블렌딩⑨(5000원)과 싱글오리진⑩(6100원), 뉴올리언스⑪(5800원), 콜드브루⑫(5800원) 차례다. 뉴올리언스는 우유와 치커리가 들어간다고 한다.

탄산수로 입을 헹궈 낸 후 시음하는 게 좋다. 입안을 좀 더 청량감 있게 씻어준다. ⑨와 ⑩은 농도 차가 크다. ⑩은 룽고 추출법으로 뽑은 것 같다. ⑨는 일반적인 블렌딩보다 산미가 느껴진다. 좋다. ⑫는 밝고 시원한 느낌이다. 여름날 마시기 좋다. ⑪은 단 커피 좋아하는 이들에게 환영받을 거 같다. 일본에서 팩 제품으로도 판다.

농도 차이 있다. ⑨는 감칠맛이 더 강하고 고소하다. ⑫는 신맛, 쓴맛, 향이 적당히 유지되면서 좋은 편이다. ⑪은 최근 인기인 단 베트남 커피와 비슷하다. 누구나 좋아할 거 같다.

블루보틀 커피. 박미향 기자

기자 분위기는 어떤가? 콘센트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 된다.

블루보틀이 주는 브랜드 이미지가 강하다. 커피계의 애플이라고 하지 않나! 아이폰 신모델이 출시되면 줄 선다. 커피 맛만 보려는 게 아니라 블루보틀이 만든 문화를 느끼고 싶어 온다. 굿즈는 인기다. 대형 브랜드인데 브루잉 바가 있어 좋다. 에스엔에스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인스타 성지’란 말 있지 않나! 요즘은 비주얼 시대다. 일본에서도 블루보틀 영향력은 대단하다. ‘성수동 카페 스타일’이 강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공간에서 매력을 못 느끼겠다. 브랜드 이미지만 너무 살렸다. 다들 사진만 찍고 오래 앉아 즐기다 가는 이는 없다. 개인적인 기준으로 카페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파리형과 뉴욕형이다. 전자는 커피 마시면서 책 읽고 생각하고 수다 떠는 공간이다. 후자는 사무실 없는 이들이 미팅도 하고 회의도 한다. 블루보틀은 이 둘도 아닌 새로운 형태 같다.

기자 총평을 부탁한다.

이 시대 감성을 담았다. 우리와 소통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커서 놀랐다. 힙한 감성을 내세워 상업적으로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진 듯 보인다. 커피 맛만 보자면 대단히 특별한 건 없다. 한국에도 훌륭한 곳이 많다. 우리 바리스타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최근 ‘월드 바리스타챔피언십’ 우승자가 한국인 전주연씨였다. 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인스타그램 기록이 중요한 시대와 잘 조응해 성공한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소비자들의 커피 인식은 높아졌다. 밥이 아니라 커피 마시려고 줄 서는 것을 보면서 우리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카페 운영자들이 이제는 커피 맛만으로 승부할 수 없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커피 맛, 공간, 문화가 같이 어우러져야 인정받는 거다. 커피 맛보다는 블루보틀 특유의 분위기를 경험하러 오는 곳이다. 커피 마니아라면 한 번쯤 올 만하다.

본래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제임스 프리먼이 2002년께 문 연 블루보틀은 현재 미국, 일본, 한국에 지점이 있다. 커피에 독특한 디자인(파란 병)을 얹어 ‘소확행’을 지향하는 20~30대를 확고한 소비자로 잡은 블루보틀은 흔히 커피계의 ‘게임 체인저’라고 불린다. 곧 서울 역삼동, 삼청동에 2,3호점을 낼 예정이다. 4호점까지 내는 게 올해 목표라고 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