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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30 09:24 수정 : 2019.05.31 16:20

서울대학교 식물병원에서 외래 임상의인 나용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피목가지마름병에 걸린 소나무의 가지를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정연 기자

커버스토리/반려식물

식물병원 찾아가 보니
나무 외래 임상의만도 4명
외과수술·성형도 해
충북 ‘정이품송’도 살려내
누구나 이용 가능한 무료 병원
지난해 나무 의사 제도 도입

서울대학교 식물병원에서 외래 임상의인 나용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피목가지마름병에 걸린 소나무의 가지를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정연 기자
식물병원, 낯선 공간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다. 식물은 아프지 말란 법 없다. 어디서나 나고 자라는 게 식물 같지만, 식물만큼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된 존재가 없다. 식물, 그중에서도 조경수(정원, 길가, 공원 따위의 경치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심는 나무)가 아프다면 곧장 문을 두드려 볼 만 한 곳을 찾았다.

나무도 아플 때가 있다. 외부 충격으로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해충 때문에 병에 걸리기도 한다. 아픈 나무를 발견했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아픈 나무를 진료하고, 병이 걸리지 않게 예방하고, 심각한 상처가 있으면 수술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식물병원’이다. 지난 24일 오후 더운 날씨에 마주해서인지 관악산의 초록빛이 더욱 시원해 보였다. 관악산 아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203동 301호에 있는 식물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미경이 여러 대 놓인 식물병원. 일반 연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눈에 탁 걸리는 그것을 보고서 ‘역시, 이곳은 식물병원이군!’이라고 생각했다. 현미경 옆에 잘린 ‘나뭇가지’가 있었다. “피목가지마름병에 걸린 소나무다. 지난해 워낙 비가 적게 내려 가물어서 이 병에 걸린 나무들이 많다. 나무를 살리려면 병에 걸린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잘라낸 가지를 땅에 묻거나 태워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해 같은 병에 걸린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다 호기심에 기웃거리는 기자를 보며 말하는 그는 식물병원에서 외래 임상의로 일하고 있는 나용준(87) 서울대 명예교수(농학)다.

일반인에게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울대학교 식물병원은 1999년 설립돼 올해로 20년째 운영되고 있다. 20년 전에는 ‘수목병원’이라는 이름이었다가 2005년 간판을 바꿔 달았다. 1대 식물병원장인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농학)와 나용준 명예교수가 창설 멤버다. 이 명예교수는 “1990년대 말 조경수를 굉장히 많이 심었다. 분당이나 일산 같은 신도시들이 생기면서다. 나무는 많이 심는데, 나무가 아프면 진료할 곳이 없어서 수목병원을 열게 됐다”며 식물병원의 기원을 설명했다.

엄연한 병원이니만큼, 각 분야의 나무 의사들이 이곳에 포진해 있다. 서울대 식물병원에서 일하는 외래 임상의는 모두 4명이다. 이경준 명예교수는 수목생리학, 나용준 명예교수는 수목병리학을 전공했다. 우건석 서울대 명예교수는 계통곤충분류학을 전공해 해충 등에 의한 나무의 피해 등을 다룬다. 가지치기 등을 포함한 수목관리학은 이규화 서울대 박사(농학)가 다루고 있다.

4명의 외래 임상의가 다루는 분야 중 나무의 건강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일반인의 눈에 신기한 분야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외과수술’이다. 나무를 수술한다? 나무가 수술을 받는다? 이경준 명예교수는 “나무도 수술을 받는다. 외과니까 나무에 있는 어떤 상처, 피해를 치료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가 설명하는 나무 외과수술 과정은 이렇다. 먼저 나무의 피해, 상처를 진단한다. 큰 나무의 일부가 썩어 구멍이 생겼고, 살아날 가망이 있다면 수술을 진행한다. 수술의 첫 단계는 썩은 구멍을 긁어내고 도려내는 것이다. 긁어낸 자리에 살충·살균·방부·방수 처리를 한다. 그 뒤 우레탄을 이용해 구멍을 메운다. 가장 겉면에 인공 수피(나무껍질)를 씌워 마감한다. 이 교수는 “외과수술이 제대로만 이뤄지면 나무가 수십 년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무에 공동(썩은 구멍)이 생기면 외과수술을 하기도 한다. 사진은 나무에 수술부위를 표시하고 있는 모습. 사진 서울대학교 식물병원 제공

나무에 공동(썩은 구멍)이 생기면 외과수술을 하기도 한다. 사진은 공동을 도려내고 있는 모습. 사진 서울대학교 식물병원 제공
나무에 공동(썩은 구멍)이 생기면 외과수술을 하기도 한다. 사진은 나무에 생긴 공동을 긁어낸 자리에 살충, 살균, 방부 처리 등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서울대학교 식물병원 제공
인간의 수술에 쓰이는 인공 피부와 같은 인공 수피가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기자가 두 눈을 더 동그랗게 뜨자 이 교수는 뒷이야기 하나를 더 알려줬다. “기존의 인공 수피는 그 재질이 딱딱한 데다 10년이 지나면 산화하는 문제가 있었다. 실리콘을 봉합재로 쓰면서 갈색이나 회색 염료를 더해 나무껍질 색을 낼 수 있게 됐다. 외과수술뿐만 아니라 성형까지 가능해졌다. 실리콘 인공 수피를 도입한 게 나용준 교수님이다.” 옆에 있던 나 명예교수는 코팅한 특허 관련 문서를 기자에게 보여주며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미국에서 실리콘 인공 수피 관련 특허를 따냈다”고 말했다.

식물병원 외래 임상의들이 꼽는 인상적인 환자(?)는 어떤 나무일까? 나용준 교수가 먼저 입을 뗐다. “2002~2003년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150여 그루의 노거수를 전수 조사한 적이 있다. 성한 나무가 거의 없었다. 걔 중 90% 이상의 나무에 크고 작은 외과수술을 했다.” 이경준 교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나무로 충북 보은군에 있는 ‘정이품송’을 꼽았다.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아마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일 테다.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가지가 잘리는 등의 피해도 입어 뭇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런데, 정이품송에 닥친 가장 큰 위기는 태풍만이 아니었다. 37년 전의 일이다. 이 교수는 “나무 건강에 제일 안 좋은 게 막무가내로 흙을 덮는 것이다. 복토라고 하는데, 이걸 하면 뿌리가 제대로 숨을 못 쉰다. 정이품송을 1982년에 진단했는데, 알고 보니 60㎝나 복토를 했던 거였다. 옆에 길을 내는 공사를 하면서 나온 흙을 나무에 덮었고, 그 결과 밑동의 5분의 4가 썩어있었다. 1986년에야 복토한 흙을 걷어냈고, 정이품송을 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식물병원 외래 임상의들은 실내에서 식물을 키울 때 주의해야 할 사항 몇 가지도 알려줬다. 이경준 명예교수는 “아파트에서 식물을 기르는 경우 햇빛 부족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천천히 시드니까 이유를 몰라 진단 요청을 한다. 실내에서 키울 때 적어도 5시간 이상은 햇빛이 드는 게 좋다. 그렇지 않을 때는 음지 식물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규화 박사는 “식물에 관심을 너무 많이 갖다가 물을 많이 줘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흔하다. 실내에서는 증산작용(식물 체내의 수분이 잎의 기공을 통해 빠져나가는 현상)이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지 않아,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식물병원의 환자들이 병원을 제 발로 찾아올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식물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할까? 서울대 식물병원은 수목진단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증상을 적어 수목진단센터 홈페이지에서 진단 의뢰를 할 수 있다. 병이 든 것으로 보이는 나무의 가지를 잘라 진단센터에 보내도 된다. 진단이 시급한 때는 나뭇가지를 잘라 직접 수목진단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왕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다. 전국에 수목진단센터는 서울대 센터를 비롯해 모두 9곳이다. 이경준 교수는 수목진단센터를 찾을 때 주의사항을 한 가지 말했다. “이곳에서는 ‘수목’, 나무를 주로 다룬다. 실내 식물이나 작물 등에 관한 진단이나 문의는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 등 다른 곳에 의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나무의 건강을 위해 일해 온 이들은 앞으로 보다 ‘과학적’인 나무 돌보기가 보편화하길 바라고 있다. “식물도 사람이나 동물과 똑같다. 그런데 의사나 수의사는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는데, 나무 의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나용준 교수는 말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국가자격제도인 나무 의사 제도가 2018년 6월 도입됐다. 이경준 교수는 “이제 4년 뒤부터는 나무 의사 공인자격을 취득한 사람만 나무병원을 개업할 수 있게 제도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나무 의사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먼저 관련 양성기관에서 교육을 이수한 뒤, 산림청장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는 농업과학기술 포털 ‘농사로’에는 가상 공간에 실내정원을 꾸며볼 수 있는 ‘3디 실내정원 꾸미기’ 코너가 있다. 농사로 누리집 갈무리

[ESC] 식물클리닉도 있어요!

▣ 산림청 국립수목원 식물클리닉

식물에 관한 궁금증이 생기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온라인으로 시민들이 질문을 올리면 식물클리닉의 담당자가 답변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식물의 학명을 문의하는 질문이 많지만, 식물 기르기와 관련한 문의에도 친절하게 해결책을 설명해준다. 속 시원한 답변을 원한다면, 식물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도록 사진 등을 첨부하고, 식물이 놓인 환경 등을 구체적으로 적는 게 좋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다양한 분야의 식물 기르기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홈페이지의 ‘치유농업’ 카테고리에 텃밭 가꾸기, 실내정원 꾸미기, 옥상정원, 공기정화 식물 등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정리되어 있다. 공기정화 식물 정보에는 식물 정보뿐만 아니라 식물의 실내 공기정화 원리와 실내정원의 관리 지식도 망라되어 있다.

▣3디(D) 실내정원 꾸미기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는 농업과학기술 포털 ‘농사로’에는 가상 공간에 실내정원을 꾸며볼 수 있는 ‘3디 실내정원 꾸미기’ 코너가 있다. 식물을 키워보고 싶은데, 어떤 식물을 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용해 볼 만 하다. 먼저 아토피 치료, 공기정화, 공간장식 가운데 실내정원의 설치 목적을 선택한 뒤 거주 공간의 넓이, 햇빛양 등을 고르고, 화분과 식물을 배치해보는 식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반려식물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표현. 식물을 잘 돌보는 것을 시작으로, 식물과 교감하고 마음의 평온을 구하며, 식물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가족처럼 지내며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식물 애호가들이 쓰기 시작한 말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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